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을 촉구하는 자유한국당의 ‘삭발 릴레이’가 멈출 줄 모르고 연일 계속되고 있다. 제1야당의 결기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은 황교안 대표 삭발 이후 중진의원은 물론 원외인사까지 너도나도 가세하면서 19일까지 삭발한 인사만 줄잡아 17명에 이른다.
삭발 카드는 나름 성공했다는 게 한국당 자평이다. 내부적으로는 ‘맹탕 조국 청문회’를 둘러싼 지도부 책임론과 당내 잡음을 일시에 차단시켰고, 대외적으로는 당 지지율 상승을 견인했다. 19일 공개된 리얼미터-tbs 여론조사(16~18일 실시) 결과에 따르면 한국당 지지율은 전주 대비 2%포인트 오른 32.1%였다. 특히 황 대표가 삭발을 단행한 16일 하루 집계된 지지율은 36.1%로 한국당 창당 이래 최고치였다.
문제는 삭발에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강효상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 5선 중진인 이주영ㆍ심재철 의원에 이어 원외인사까지 줄줄이 삭발에 가세하면서 갈수록 관심이 떨어지고 있다. 이날도 송석준(경기 이천), 최교일(경북 영주ㆍ문경ㆍ예천), 이만희(경북 영천ㆍ청도), 김석기(경북 경주), 장석춘(경북 구미을) 등 현역 의원 5명이 한꺼번에 삭발 이벤트를 가졌다.
현재 당 차원에서 삭발 신청을 받거나 일정을 조율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당 관계자는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하기 때문에 만류하거나 일정을 조율하기도 여의치 않다”며 “삭발은 황 대표까지로 끝내고 다음 투쟁단계로 넘어갔어야 했다”고 말했다.
삭발은 단식과 비교해 시각 효과는 뚜렷하지만 시간과 노력은 덜 든다. 이학재 의원이 지난 15일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갔지만 현재까지 동참자가 한 명도 없는 것과 비교된다. 때문에 일각에선 삭발 동참을 내년 총선 공천을 의식한 ‘눈도장용’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실제로 이날 삭발에 동참한 의원들의 지역구는 공교롭게도 한국당 깃발만 꽂아도 당선되는 곳으로 꼽힌다.
한국당이 ‘삭발의 굴레’에 갇힐수록 정책 행보로 대안정당 면모를 부각하려던 황 대표의 전략이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황 대표는 원래 22일 경제정책 대안정책인 ‘민부론’을 직접 발표하며 정책 분야로 투쟁 범위를 확대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삭발 릴레이가 계속되자 이슈화가 쉽지 않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처음에 터미네이터ㆍ최민수 합성 사진 등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긴 했지만, 삭발 릴레이가 갈수록 희화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황 대표는 지난 17일 당 행사에서 “옛날에 율 브리너라는 분이 있었는데 누가 더 멋있나. 제가 머리가 있었으면 훨씬 더 멋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당 대표가 비장한 결의로 삭발까지 했는데 이를 희화화하고 ‘게리 올드먼’ ‘율 브리너’ 운운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고 했다. 무소속 박지원 의원도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해 “율 브리너 얘긴 하면 안 됐다”며 “이게 잘못하면 국회가 아니라 국회 조계사가 되게 생겼다”고 비꼬았다.
이번 조사는 리얼미터가 지난 16~18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007명을 대상(응답률 6.1%)으로 한 전화조사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2%포인트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mailto:choni@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