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로(그릇에 육고기, 해산물, 채소 등을 함께 끓인 열구자탕), 비빔국수(골동면), 숭어찜(수어증), 편육, 생선전(전육), 전복조림, 누름적(회양적·각종재료 익히고 색을 맞춰 꼬챙이에 꿴 음식)….”
1905년 9월20일 고종 황제는 국빈자격으로 대한제국을 방문한 앨리스 루즈벨트를 위해 덕수궁 중명전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앨리스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대통령(재임 1901~1909년)의 딸(장녀)이었다. 앨리스는 미국의 아시아 사절단 일원으로 필리핀과 일본·중국 등을 방문하는 도중 고종의 초청을 받고 몇몇 일행과 함께 3박4일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고종은 21살의 앨리스를 미국 공주로 여겨 국빈으로 대접했다. 거리거리마다 성조기를 매달고 황실가마에 태워 영접했다.
20일 오찬 역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렸다. 오찬에는 앞서 거론한 음식 외에도 ‘두텁떡(후병), 약밥(악식), 숙실과(과일을 익혀 다시 과일모양으로 또는 다른 형태로 만든 음식), 배(생리), 밤(생율), 포도, 홍시, 정과(과일이나 연근 도라지, 생강 등을 꿀에 조리거나 재어 만든 음식), 원소병(찹쌀반죽으로 경단을 빚은 뒤 끓는 물에 익혀 꿀물 또는 설탕물에 담가먹는 음료) 등과 초장·겨자·꿀까지 17가지 음식과 3개의 양념이 제공됐다.
이날 오찬은 고종의 탄신일(51세)을 기념해 1902년 치른 연회와 고종·순종 생일상에 나온 음식으로 구성됐다. 식단은 대한제국이 외국인에게 서양식 코스 요리를 대접했다는 기존 견해를 뒤집는다.
앨리스의 자서전(<혼잡의 시간들>·1934년)에 따르면 오찬장 헤드테이블에는 고종과 황태자(순종), 그리고 앨리스 등 3명이 앉았다.
“우리는 황실 문양으로 장식한 조선 접시와 그릇에 담긴 조선 음식(Korean food)을 먹었다. 내가 사용한 물건은 내게 선물로 주었고, 작별 인사에서 황제와 황태자는 각각 자신의 사진을 주었다.”
식단표 뒷면에는 황제가 여성과 공식적으로 한 최초의 식사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오찬에는 쇠락해가는 대한제국의 운명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종은 당시 미국을 대양인, 대인배의 나라로 여겼다. 훗날 제2대 주미공사를 지낸 이하영(1858~1929)은 “미국은 조선과 거리가 멀어서 내국 침입이 그다지 심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게다가 미국은 황금의 부국이니 조선은 물질적으로 덕을 볼 것이고, 종교지상주의 국가이니 도덕을 존중할 터라 모욕과 야심도 적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믿음 덕분인지 통상조약을 맺은 첫번째 서양국가가 바로 미국(1882년)이었다. 특히 조·미 통상조약 ‘제1조’는 조선과 고종 임금에게 매우 의미심장했다.
즉 “제3국이 한쪽 정부에 부당하게, 또는 억압적으로 행동할 때는 다른 한쪽 정부가 원만한 타결을 위해 주선한다”는 이른바 ‘거중조정’ 조항이 들어있었다. 고종은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지않으려는 대인배이자 대양인인 미국의 중재자 역할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는 훗날 드러난다. 먼로주의로 대표되는 미국의 외교정책과 제국주의 열강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국제외교의 냉엄한 현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 때(1905년)도 마찬가지였다. 고종은 기울어져가는 대한제국을 살리려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21살 미국 대통령의 딸까지 초정해 융숭하게 대접한 것이다.
그러나 너무 순진했다. 고종은 50여 일 전인 7월29일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일본을 방문한 육군장성 월리엄 태프트(1857~1930·차기 미국 대통령)와 일본수상 가쓰라 타로(桂太郞·1848~1913) 사이에 맺은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까맣게 몰랐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미국과 일본 양국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각각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때 맺은 ‘거중조정’ 조항은 휴지조각이 된지 오래였다. 이 밀약 후 태프트는 귀국했고, 앨리스를 비롯한 남은 일행만 중국을 방문하고 있던 중 고종의 초청으로 대한제국을 방문한 것이다. 고종으로서는 버스 지나간 후 손을 흔든 격이 됐고, ‘앨리스 공주’는 결과적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을 내민 대한제국 황제를 농락한 셈이 됐다.
앨리스는 힘없는 대한제국과 대한제국 황제를 매우 깔본 것 같다.
“황제와 마지막 황제가 된 그의 아들은 우리 공관 근처의 궁궐(덕수궁)에서 남의 눈을 피해 생활했다. 며칠 후 궁궐내 유럽식으로 꾸민 장소(중명전)에서 점심을 먹었다. 위층 방으로 안내받아 (접견한 후) 키 작은 황제는 자신의 팔은 내주지 않은채 내 팔을 잡았고, 같이 서둘러 비틀거리며 매우 좁은 계단을 내려가 평범하고 냄새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기껏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대접을 했더니 ‘키작고 무례한 황제’와 ‘냄새나는 식당’ 운운 하며 ‘디스’해댄 것이다. 앨리스는 오찬 때 사용한 식기와 황제·황태자 사진을 선물로 받은 뒤 ‘고종’을 ‘멍한 존재’로 깎아내렸다.
“그들은 황족의 존재감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며 다소 측은하게 별다른 반응없이 멍하게 지냈다.”
앨리스는 이미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알았던 탓에 곧 ‘망할 나라의 군주’임을 알고 한편으로는 측은하게, 다른 한편으로는 깔보는 심정으로 고종과 황태자를 바라봤던 것이다.
공주 대접을 받으며 서울을 방문했던 앨리스의 무례한 행동거지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평소 거침없는 언행으로 유명했던 앨리스는 서울에서도 승마복 차림에 시거를 피워가며 고종을 알현했고, 명성황후 능에 가서는 능을 지키는 수호상 위에 떡하니 걸터앉아 사진을 찍는 오불관언의 무례를 저질렀다.
‘미국의 거중조정’을 기대하면서 앨리스를 초청한 고종으로서는 이 철부지의 ‘공주 코스프레’에 장단을 맞춰준 격이 됐다. 앨리스가 마음껏 대한제국을 농락하고 돌아간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을사늑약(11월17일)에 의해 대한제국 외교권이 박탈됐다. 미국은 가장 먼저 주한공사관을 철수한 국교단절 국가가 됐다.
‘황제의 식탁’에는 이렇게 쓰러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든 살려보려 애쓴, 그러나 너무 순진했던 고종의 애처러운 심정과, 정글의 법칙이 통하는 냉엄한 외교관계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