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옵스큐라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캔버스 위에 투사한 이미지를 스케치 가이드로 활용하기 위해 사용했던 어둠 상자였다. 19세기 초에 접어들면서부터 화학 처리되어 빛에 민감한 표면에 물체의 이미지를 잡아두기 위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세계 최초인 것으로 알려진 사진은 1826년에 프랑스의 화학자인 조셉 니엡스(Joseph Niepce)가 찍은 것으로 부르고뉴(Burgundy)에 있는 그의 다락방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이었다. 니엡스는 극장 간판을 그리던 화가인 루이스 다게르(Louis Daguerre)와 함께 이를 사업화하는 일에 뛰어 들었고, 1839년에는 은판 사진술(daguerreotype)을 도입해서 금속판에 사진을 출력했다.
하지만 은판 사진은 복재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바다 건너편의 영국에서는 윌리엄 폭스 탤벗(William Fox Talbot)이 어떤 용액을 고안해 냈는데, 1840년에는 카메라의 감광성이 있는 요오드화 은(silver iodide) 종이에 노출을 시킨 다음, 은 질산염(silver nitrate)과 갈산(gallic acid)용액으로 음화(nagative image)를 현상하는 과정을 특허 등록했다. 그는 이렇게 만들어진 사진을 티오황산나트륨(sodium thiosulfate)을 이용해서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탤벗은 이렇게 만들어진 희미한 음화의 결과를 가져다가 양화(positive picture), 즉 사진을 클로라이드인화지(紙, silver chloride paper) 위에 여러 차례 출력했다.
1840년대와 50년대에는 향상된 렌즈를 사용해서 좀 더 많은 빛을 모으고 노출 시간을 몇 분이나 줄이면서 더욱 선명하고 살아있는 것 같은 풍경사진과 인물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1851년에는 영국의 조각가 스콧 아처(F. Scott Archer)가 새로운 사진 현상 기술을 발명했는데, 그는 노출 시간을 극적으로 줄였지만 사진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의 습판 사진술(wet collodion process)은 은염(silver salts)과 콜로디온(collodion)이라 불리는 끈끈한 물질을 유리판에 코팅하는 것이다. 습판은 단 몇 초 동안만 노출시킨 후, 바로 사진을 현상할 수 있었다.
유사사례 매튜 브레이디
매튜 브레이디
뉴요커인 매튜 브레이디(Mathew Brady)는 예술가이자 발명가인 사무엘 모스(Samuel F. B. Morse)로부터 은판 사진술을 배웠고, 그가 21살이었던 1844년에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는 이 새로운 사진기술에 관해서만큼은 미국 최초의 전문가였다. 그가 찍은 남북전쟁〔1861-1865〕 사진은 당시의 전투에 대한 가장 생생한 기록물이다. 하지만 그는 시력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촬영을 20명이나 되는 소속 사진가들에게 맡겨야 했다.
그는 이 방대한 프로젝트에 쏟아 부은 비용을 회수할 수 없었고, 마침내 자선병동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가 촬영한 대통령 사진을 비롯한 전쟁보도 사진은 오늘날 귀중한 기록물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