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먹은 50대 차량 가로등 충돌 4m 가로등 뽑히며 아이 덮쳐 코로나로 음주 단속 완화 올 상반기 음주운전 사고 11% 증가
보행로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6세 남자 어린이가 낮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50대 남성이 낸 사고로 숨졌다. 아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될까 걱정해 혼자 가게에 들어갔던 엄마는 오열했다.
13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A(6)군은 일요일이던 지난 6일 오후 3시 30분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 앞에서 햄버거를 사러 들어간 엄마가 나오기를 형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가게 앞 도로를 달리던 소형 SUV 차량이 도로를 이탈해 길가 약 4m 높이 철재 가로등을 들이받았다. 그 충격으로 가로등이 땅에 묻힌 부분부터 뽑히면서 쓰러져 A군을 덮쳤다.
사건 현장에서 30여m 떨어진 치킨집 상인은 “가로등이 떨어지는 소리가 가게 내부까지 들릴 정도로 컸다”고 말했다. 가로등과 부딪힌 A군은 의식 없이 쓰러진 채 오른쪽 머리에서 피를 쏟았다. 형의 손에 이끌려 매장 밖으로 나온 어머니는 A군의 이름을 연신 외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신고는 사고를 목격한 상인들이 했다. A군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유족은 A군이 가게 밖에서 기다렸던 이유에 대해 “가게에 들어가면 무조건 출입명부를 작성해야 하는 데다, 마스크를 벗고 음식을 먹는 다른 손님들에게서 아이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옮을까 봐 걱정한 애 엄마가 혼자 잠깐 들어가 햄버거를 주문하던 상황"이라고 했다. 이 유족은 “동생을 눈앞에서 떠나보낸 큰아이가 너무 가슴 아파하고 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를 낸 운전자 B씨는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 관계자는 “B씨는 몰던 차가 가로등과 부딪혔지만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점심에 지인과 근처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고를 냈다”고 진술했다. 음주 측정 결과 B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0.08% 이상)이었다. 경찰은 10일 B씨를 구속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최근 사회적 이목을 끄는 대형 음주운전 참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9일 인천 을왕리에서는 치킨집을 운영하며 음식 배달을 하던 50대 가장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운전자였던 33살 여성은 만취 상태였다.
피해자의 딸은 사고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딸은 “저희 아빠는 가게 시작 후 계속 직접 배달하셨다. 일평생 단 한 번도 열심히 살지 않으신 적이 없다”며 “(사고로 인해) 가족이 한순간에 파탄났다”고 했다. 이어 “중앙선에 시체가 쓰러져있는데 가해자는 술에 취한 와중에 119보다 변호사를 찾았다고 들었다”며 “제발 최고 형량이 떨어지게 부탁드린다”고 엄벌에 처할 것을 촉구했다. 이 청원은 게시 사흘 만에 50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경기 시흥시 평택-파주 고속도로에서 음주운전 차량이 멀쩡히 달리던 앞차를 시속 190㎞로 들이받는 사고도 최근 CCTV 영상이 공개되며 논란이 됐다. 지난 6월 발생한 이 사고에서 피해 차량 운전자는 척추를 크게 다쳐 하반신 마비가 왔고, 동승한 운전자의 아내는 사망했다. 23세 가해 차량 운전자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면허취소 수준이었으며, 심각한 부상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 부부 아들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가해자에게 정당한 법에 의거해 가장 무거운 처벌을 내려달라”며 올린 글에는 13일 기준 25만여 명이 동의 의사를 밝혔다.
올 들어 음주운전 사고는 늘었다. 경찰청이 지난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음주운전 사고 건수는 총 8279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7469건) 대비 10.8% 증가했다. 음주운전 부상자도 작년 1만 2093명에서 올해 1만 3601명으로 12.5% 증가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경찰 음주운전 단속이 완화되면서 음주운전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올해 1월 말 코로나 전파 우려를 이유로 음주운전 단속 방식을 ‘일제 검문식’에서 ‘선별식’으로 바꿨다. 취약 장소, 특정 시간대에 음주운전이 의심되는 차량만 골라 단속하는 방식이다. 그러자 1~3월 음주운전 사고가 작년 동기(3296건) 대비 24.4% 늘어난 4101건까지 치솟았다.
이에 경찰이 4월 들어 운전자에게 ‘후~’ 하고 숨을 내뱉도록 하는 방식의 기존 음주 측정기 대신 차량 내부 공기를 감지해 음주 여부를 판별하는 이른바 ‘비접촉식 감지기’를 도입했지만, 음주 단속이 과거보다 완화됐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