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났는데, 그녀는 집에 들어가기 싫었어. 그녀는 요즘 조금 우울했거든. 커피 전문점에 들어선 그녀는 새로 나온 커피를 주문했어. 화이트 초콜릿 라즈베리 블랜디드. 생크림에 라즈베리 시럽을 듬뿍 뿌린, 사랑스러운 커피였지.
커피는 속눈썹이 떨릴 만큼 달콤했어. 하지만 생크림을 맥없이 젓는 모습은 여전히 우울해 보였어. 그런데 그녀가 그만 스트로우를 떨어뜨리고 말았어. 바지와 구두에 커피가 튀어버렸지. 그녀는 묻은 곳을 대충 닦아내고, 커피를 몇 모금 더 마시다가 하릴없이 자리에서 일어났어.
퇴근 시간 직전의 거리는 아직 한산했어. 횡단보도에 서 있던 그녀는 구두 끝을 내려다보다가 웃었어. 미처 다 닦아내지 못한 커피 방울이 점점이 찍혀 있었던 거야. 그 뿌연 물방울 모양이 왠지 천진해보였어. 누군가가 흙탕물이 튀었다고 한다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졌어. 흙탕물이라니요, 이건 화이트 초콜릿 라즈베리 블랜디드라구요.
화이트 초콜릿 라즈베리 블랜디드. 화이트 초콜릿 라즈베리 블랜디드.
그녀는 주문처럼, 그 달콤한 이름을 몇 번이나 되뇌어보았지. 갑자기 자신의 구두가 로맨틱하게 보였어. 그리고 스스로가 꽤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언제라도 웃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누군가가 구두에 뭐 묻었다고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는 사람은 없었고, 어느새 해가 저물어 구두는 이내 어둠에 묻혀 버렸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떠오른 미소를 지울 수는 없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