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짬뽕 한 그릇!˝ 동물원 얘기가 아니다. 코끼리가 짬뽕을 먹는다는 이야기는 머리에 털 나고 처음 들어본다고 혀을 내 두르실 필요도 없다. 사장은 주문이 밀리는 점심때가 되면 곧잘 주문한 곳의 이름을 재빨리 줄여서 나에게 지시를 내리곤 했다. 이를테면 사장이 ´롯데´라고 하면 나는 롯데 아파트로 오토바이를 몰았고, 사장이 ´대림´ 이라고 하면 공단 입구에 있는 대림 산업으로 철가방을 싣고 달려 갔다. 대림 산업에 간짜장 일곱 그릇을 급히 배달하고 돌아와 숨을 좀 고르고 있는데, 코끼리 편의점에 짬뽕 한 그릇을 배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코끼리 편의점에 배달 가는 것을 좋아 했다. 예쁘장한 점원이 편의점 계산 대에 앉아 웃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계산 대에는 한 40년전에는 분명히 예쁘장한 처녀였을 할머니가 있고, 또 그 옆에는 한 40년전에 분명히 처녀의 애인이었을 할아버지가 그림자처럼 앉아 있을 뿐이다. 마치 연애를 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 노부부는 두 분 다 머리 위에 하얗게 눈을 덮어쓰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기력이 쇠잔한 꼬부랑 노인들은 아니었다. 공무원으로 꽤 높은 자리에서 근무하다가 정년 퇴직했다는 할아버지는 언제나 깨끗하게 면도한 얼굴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걸어 다녔다. 할머니도 이에 못지 않았다. 누군가 편의점에서 손에 들고 갈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을 많이 사게 죄면 할머니는 즉시 계산 대 서랍에 넣어둔 흰 장갑을 꺼냈다. 그리고는 주차장에서 승용차를 끌고 와서 그 사람의 집까지 태워다 주는 서비스를 베풀었다.
편의점의 이 멋쟁이 노부부는 만리장성에 음식을 자주 주문하는 편이 아니었다. 점심은 주로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으로 해결을 했다. 그러다가 날씨가 춥거나 비가 오는 날은 더러 뜨거운 국물을 떠올리며 만리장성 으로 전화를 걸었다. 2002이발관 아저씨가 변함없이 우동 한 그릇 을 시키는 것 처럼 코끼리 편의점도 꼭 짬뽕 한 그릇을 주문했다. 두 노인이 이마를 맞대고 짬뽕 한 그릇을 언제나 함께 드시는 것이다. 그 모습은 지금 상상해도 기분이 뿌듯해진다.
˝귀찮게 해서 미안해˝ 노부부는 두 사람이 한 그릇만 주문 하는 것이 미안했던지 늘 그렇게 말했다. 나한테는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중국집 배달원의 입장에서 한그릇만 달랑 배달하는게 가장 힘이 들지 않는 일이었으니깐.
˝짬뽕 두 그릇을 주문하셨죠?˝ 한번은 편의점을 들어서면서 내가 이렇게 외쳤다. ˝내가 틀림없이 한 그릇만 시켰는데...˝ 할머니의 얼굴로 난감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진열대에서 선물용 사과 상자를 쌓고 있던 할아버지가 돌아보았다. ˝그럼 두 그릇 다 놓고 가지, 그래?˝ ˝네 여기 두 그릇입니다.˝ 나는 철 가방 속에서 짬뽕 한 그릇을 꺼내 놓고 웃으며 말했다.
˝이건 한 그릇이잖아??˝ 할머니가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저한테는 두 그릇으로 보이는 걸요? 두 분이 함께 드실 거니까요!˝ 그제야 할머니가 소녀처럼 깔깔 소리내 웃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도 한 말씀 거두셨다. ˝내 눈에도 두 그릇으로 보이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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