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대가 어느 정도의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는지 전망하고 싶다면 그 시대정신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대정신은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고스란히 지배하기 때문이다.
어떤 개인은 요행에 의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요행에 의존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길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미래를 가늠해 보려면 그가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보면 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머릿속 여기저기를 엿보기 위해 첨단 장비를 동원할 필요는 없다. 그가 어떤 언어를 자주 사용하는가, 그가 어떤 행동을 자주 보이는가를 살펴보면 그의 내면세계를 알 수 있다.
자조와 자립 자존의 정신이 지배하는 시대는 번영을 구가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계획하고 도전하며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시대는 대단한 성장과 발전을 이룬다.
반면 성공은 자신의 공이지만, 불행은 다른 사람이나 사회구조 탓이라고 돌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시대가 있다. 그들은 때로 ‘속죄양’의 범주에 가진 자들, 많이 배운 자들, 기업가들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실업과 해고. 시장 개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기에 앞서 실체가 모호한 신자유주의에만 책임을 돌린다. 툭하면 이런저런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정부를 비난하기 쉽다.
시대정신은 사회를 번영의 길로 달려가게 하는 일종의 인프라스트럭처이다. 도로나 항만이 원활하지 못하면 자유로운 왕래와 물류의 소통에 지장을 받듯이, 시대정신도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서 뛰던 시절은 인권이나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어두운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분명 자조의 정신이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그때는 ‘잘살 수 있다.’거나 ‘할 수 있다.’라는 공감대가 시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하나하나 성취해 가면서 많은 사람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칠 수 있었다. 누구에게든 이런 자각을 경험하는 순간은 무척 중요한데, 당시는 이런 자각이 사회적으로 확산하여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개인적인 자부심을 고양하고, 물질적인 기반도 어느 정도 축적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