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할머니 댁에 들르면서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를 지나치게 되 었다. 하도 오랜만에 걸어보는 길이라서 그런가, 왠지 무척이나 낯설게 만 느껴졌다. 골목길 블록 사이사이 위로 삐죽이 튀어나온 풀과 돌들.
벽엔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게 제멋대로 휘갈겨진 하얀 그림들. 변함없이 모든 게 내가 어릴 적 그대로였다. 그런데 무엇이 이리도 낯선 걸까, 도 대체 왜 내 추억이 새겨진 이 거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까.
그렇다. 나는 나이를 먹은 것이다. 내가 그 거리를 떠난 건 중학생이 되면서였다. 그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픈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남들과 같이 정해진 길을,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희미하지만 애틋했던 시간의 공간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부터는 사회란 곳에 모가 닳고 틀에 길들여지면서 아늑했던 거리, 추억의 이끼가 낀 이 거리를 난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어릴 적 기억은 항상 밤으로 시작한다. 그만큼 날이 어두컴컴해질 때까지 뛰어놀았던 탓이다. ´얼음 땡´ 하며 뛰던 술 래잡기, 벽에 붙어서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고 외치던 기억. 밥 먹을 시간조차 잊은 내가 밤늦은 시간이 되어 데리러 나온 어머니의 손 에 이끌려 오늘이 마지막인 양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돌아오던 길. 동네 에 개도 몇 마리 있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면 자기도 끼워달라는 듯 쫓아오던 모습.
서서 가만히 눈을 감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는, 그러면서 한편으 로 왠지 가슴 저리는 추억. 골목길을 빠져나오며 다시 돌아보니 그때는 그렇게도 크기만 했던 길들이,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던 그 넓기만 한 길들이 왜 그리도 작고 초라하게만 보이는지. 나이를 먹는 다는 건 무조건 더하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지금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 점 작아져갈 그 길들을 생각하면, 내 기억 속 추억들도 같이 작아져만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