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힐리즘의 새털같이 가벼운 무게가 천근 만근으로 나를 짓누른다. 그러고보면 내가 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내게 있어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은 도처에 만연해 있는 허무감이었다. 얼마 전에 어느 잡지에서 읽자니 나나니벌의 유충은 다른 애벌레의 몸을 먹으면서 성장을 하는데, 본능적으로 결코 그 애벌레의 생명을 빼앗지 않는 방식으로 애벌레의 살을 뜯어먹는다고 하더군. 그러고 보면 내 속에 들어 있는 허무주의는 그 나나니벌의 유충어럼 언제까지고 나를 살아 있는 채로 유지시키려는 노력을 교묘하게 수행하면서 나의 살을 착취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셈이지. 나는 여지껏 이렇듯 죽음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다면 나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 생존해 있는 노모와 내게 딸려 있는 가족들이 나를 살리는 것일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터이고, 그럼 혹시 정말로 차라리 그 허무주의라는 것이야말로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죽음에 대한 의식이 내게 죽음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게끔 하는 것일 수도 있듯이 말이지. 그러고 보면 삶이란 얼마나 남루하고 초라한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삶이란 또한 그 얼마나 진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