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는 당장 남편의 수술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가진 돈이라고는 한푼 없었다. 그나마 조금 있는 돈마저 아들 대학 입학금으로 낸 지가 바로 어제였다. 경애는 어디 마땅히 돈을 빌릴데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가장 친한 친구인 은숙의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독신인데다 약국을 경영하는 은숙에게 다소 여유 돈이 있을것 같았다. 경애는 은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한 사이일수록 돈을 빌리는 일을 삼가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은숙아, 영우 아빠가 쓰러지셨어. 심장에 이상이 있대.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데....˝ 정작 돈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경애가 머뭇거리자 은숙이 입을 열었다. ˝알았어. 어느 병원이야? 나 지금 곧 갈께.˝ 은숙은 급히 수술비를 마련해 가지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경애는 그런 은숙이 고마웠다. 그러나 경애의 정성과는 아랑곳없이 경애의 남편은 죽었다. 장례를 다 치른 뒤 경애는 은숙을 찾아갔다. ˝은숙아, 고맙다. 네가 돈까지 빌려줬는데, 그만 그런 보람도 없이 그인 가고 말았어. 빌린 돈은 내가 꼭 갚을께.˝
˝갚지 않아도 돼. 난 네가 돈을 빌려 달라고 한 것만 해도 고마워. 경애야, 실은 나도 영우 아빠를 사랑했어. 이제 영우 아빠가 세상을 떠났으니 우리 사이에 굳이 숨길 일도 아닌 것 같아. 네가 여고생때부터 영우 아빠를 사랑하는걸 보고 난 그만 단념하고 말았어.˝ 경애는 놀라 잠시 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말했다간 너랑 나랑 싸움 나게?˝ 경애는 활짝 웃는 은숙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은숙이 지금껏 왜 독신을 고집하고 살아왔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자 그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