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기적을 울리는 이유 -김현태- 처음에는 행복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반겨주고, 가끔씩 흔들거리는 벼이삭과 눈인사도 나누며..
참새들과 허공을 가르며 달리기시합도 했던 그 때까지만 해도 기차는 참으로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차의 얼굴에 여드름이 몽글몽글 날 즈음, 기차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했던 것이다. 나는 왜 내 길을 벗어날 수 없을까.. ?
새색시 가슴처럼 도톰하게 핀 벚꽃나무를 보면 잠시라도 가던 길을 버리고 꽃망울에 입맞추고 싶고,
창가에 달빛 드리운 그런 밤이 오면 철로에서 한 걸음 뛰쳐나와 당장이라도 그대에게 달려가련만.. 기차는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잠시 스쳐간 이름도 모를 간이역을 기차는 사랑하게 된 것이다.
느끼고 싶어도 만질 수 없고 고백하고 싶어도 이름도 모르는 간이역을.. 그래서 울었던 것이다.
내 마음 알아달라고 시작과 끝을 수 십 번 오가는 이유도 잠시라도 그대를 볼 수 있기에..
내가 늙어 고철이 되어 한 곳에 자리잡고 누워야 한다면 민들레 마당을 갖고 있는 바로 그 간이역임을 알아달라고, 기억해 달라고..
기차는 그렇게 기적소리를 내며 목놓아 울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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