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 도종환-
심지를 내려야겠다. 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 심지만 뽑아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 그으름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하랴. 욕심으로 나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 결국은 심지만 못 쓰게 되고 마는데, 들기름 콩기름 더 많이 넣지 않아서 방안하나 겨우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등잔엔 이 정도 담으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나를 태우고 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 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 분에 넘치지 않으며 법구경 한 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