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남편은 차남이고, 성실하고 자상한 백점짜리 남편이예요.
문제는 시댁... 남편은 결혼 전 5년간 직장다니며 모은 돈 전부를
시어머니께 맡겼었대요. "장가갈 때 집을 해주겠다" 하셨었대요.
5년간 드린 돈만 합쳐도 1억 5천 정도인데..
막상 결혼할 땐 7500짜리 전세를 4000 대출받게 해서 장가를 보냈어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시어머니는 얘기를 하시는데
확실한 이유는 말씀 안해주시고... 다만 짐작에는
남편의 형님, 그러니까 시아주버님의 빚이 몇천 있었는데
그걸 갚아주신것 같았어요.
저도 어이가 없었지만.. 남편의 충격이 몇배로 컸었고
결혼 준비하면서.. 그렇게 남자답던 사람이 제 앞에서 여러번 울었었어요.
저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제 저축으로 대출금을 몽땅 갚아주겠다고 했었지만.
남편은 자신의 대출이므로 자신이 다 갚겠다고 절대 도와주지 말라 했었고
정말 결혼 후 1년 반 만에 그걸 다 갚더라구요...
자기 쓰고싶은거 안쓰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면서도 어찌나 친정에는 잘하는지
시간 날 때마다 우리 부모님께 전화하고
처남 용돈 꼬박 챙겨주고
우리 언니네 아이들..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마다 책 선물 보내고..
연애때 보다 오히려 결혼하고 나서.. 저는 더 남편을 사랑하게 된것 같아요.
그래서 더 저도 시댁에 잘하려고 노력했었구요.
저는 올해로 10년차 간호사예요.
대학병원이고, 2년 전엔 주임간호사로 승진하면서
연봉이 꽤 높은 편이예요.
남편은 연애때 부터, 자신보다 내가 더 많이 번다는걸 알고는 있었지만
확실한 액수는 몰랐고. 물어보지도 않더군요..
저희 친정 엄마가 워낙 알뜰한 분이라 저도 그렇게 자라서 그런지
거의 대부분을 저축하며 살았네요.
남편은 시어머니께 너무 실망한 터라
시댁에 용돈 드리는걸 강력히 반대했었거든요.
물론 시아버지도 돈을 버시고
아직은 두 분 다 젊으신지라.. 저희 친정도 용돈을 바라지 않으시고
생신이나 명절, 어버이날은 당연히 양가 챙기지만
친정에는 용돈을 줘도, 시댁에는 돈을 못주도록 막더라구요 신랑이..
신랑이 워낙 친정에 잘하는데, 저도 가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
시댁에 자주자주 전화 드리고, 대소사 있을 때마다 돈 부쳐드리고
시댁 갈 때 마다 남편 몰래 30만원씩 어머님께 찔러 드리곤 했었어요..
저는 한다고 했는데.. 우리 어머님은 받으면 받을 수록 더 받고싶어 하셨고
점점 받는게 당연해지고.. 더 큰소리 치시곤 하더군요.
늘 "우리 아들이 능력이 좋아서 잘 먹고 잘 사는거다"
"우리 아들이 잘난건 다 내가 잘 키워서 그런거니 효도해야 한다"
"우리 아들이랑 사는건 로또 당첨된거나 마찬가지니 복받은 줄 알아라"
등등의 말을 입에 달고 사셔서
우리 신랑이.."엄마. 얘가 나보다 훨씬 돈 많이 벌어와. 학벌도 더 좋고. 알면서 말해"
라고 핀잔을 주면.. 그땐 여자랑 남자랑 같냐며..
저보고 얼마나 남편을 잡길래 안그러던 애가 이러냐고 불똥을 튀기시더라구요..
맞벌이라서 우리 신랑은 거의 집안일을 반 이상 해내는데
신랑이 설거지 하는 모습이라도 보시면... 난리도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어요.
우리 형님도 보통 인물이 아니예요.
결혼 전부터 시아주버님과 형님 될 분 얘기를 많이 들어서 짐작은 했었죠.
시아주버님은 일정한 직장 없이 시댁에 얹혀 사는 처지고
지인 통해 직장을 구해도.. 며칠 일하곤
"남 밑에서 일하는 체질이 아니다" 며 뛰쳐 나오곤 했었어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결혼이란걸 했는지..
처음엔 우리 형님이. 정말 불쌍하더군요.
우리 시어머니 성격 다 받아주고 살아야 하는 우리 형님이 안쓰러워서.
명절이나 제사, 김장 등등 시댁 대소사 있을 땐
늘 병원에 미리 리퀘스트 내서 휴일로 잡고 꼭 참석해
두 손 겆어붙이고 열심히 일했구요.
주말엔 가끔 시댁에 가서.. 아주버님 부부 나가서 외식하고 데이트 하시라고
영화권 끊어주거나 부페 식당 예약 잡아드리기도 하고
내 화장품 살 때 형님것도 같이 사고
형님은 딸만 셋인데
조카들 입학식, 생일, 어린이날, 성탄절 마다 꼭꼭
사소한 것이라도 선물을 챙겨주고..
아주버님 수술하셨을 때. 우리 병원 교수님 소개시켜 주고
입원비 수술비 다 내주고...
이정도면 저도 꽤 노력한것 같은데
우리 형님의 말은 늘 뭔가 바늘로 찌르듯 날카로워서
한 두번 상처받은게 아녜요..
원래 성격이 그렇겠거니.. 시어머니때문에 스트레스가 많겠거니 넘어갔지만.
신혼 때 우리 시어머니가 이런말을 했었죠.
"결혼하고 3년 정도는 친정에 가는거 아니란다."
저는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웃으면서
"어머님도 참~ 농담도 잘하셔요~^^*"하고 웃고 넘겼는데
그 앞에서 심각한 얼굴로
"동서. 난 5년을 안갔거든? 어머님이 3년이라고 하시는건 많이 봐주는거야"
라더군요.
아.. 말이 길어지네요.
어쨌든 중요한건.
제가 이번에 일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계속 삼교대 생활을 하고 피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태아가.. 유산이 되었거든요.
신랑도 이제 충분히 고생했고
우리 집도 장만했고. 또 한채의 집이 더 있으니
이제 집에서 몸을 좀 추스려서. 아기를 가지자더라구요.
그래서 어머님께 안부전화 하다 말씀 드렸더니
일을 그만두지 말라고, 돈 많이 버는 직장을 왜 그만두냐고
올해 말에 시아버지 수술도 있는데. 아는 사람이 병원에 없으면 어떡하냐네요.
그리고 우리 아들 혼자 벌어 힘들어 어떻게 사냐고
모아놓은 돈이 있어야 애도 키운다고 하시네요.
우리 신랑이 제말을 듣고.. 너무 화가나서 어머님께
우리집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그리고 얘는 모아놓은 돈이 억을 넘는다고
퇴직금 받고 나면 더 되니까 돈걱정 말라고
우리는 잘 먹고 잘 살꺼라고
..... 이렇게 말을 한 게 화근이 될 줄이야....
일주일 전 주말에 어머님이 오라시더군요.
남편이랑 가보니..
웬일로 형님네 부부가 아주 반갑게 우릴 맞이하더라구요.
안방에 모두 모여 앉혀서는..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이
이번에 좋은 가게자리가 났다. 너네 형님도 이제 자리잡고 살아야 안되겠냐.
거기 커피전문점을 차리고 싶어한다. 그런데 자금이 모자란다.
그러니 너네가 1억정도를 투자하면 매달 매출의 10%를 주겠다.
라네요..
형님도 생글생글 웃으시며
아이고.. 내가 돈 잘버는 동서네 때문에 이제 살길이 나는것 같네.
2년만 지나면 아마 1억 다 갚게 될꺼고.. 그 후로는 완전 돈버는거니까
동서네도 좋은 제안 아니야?
라네요.
아주버님은 잔을 돌리고 건배를 외치시며
내가 지금껏 성공을 못한건 기회가 안왔기 때문이다.
내가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타입인거 알지?
너네도 좋은 기회가 될꺼다. 이제 부모님께 효도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안이 모두 부자가 되면 다 좋은거 아니겠냐며
하하하 웃네요.
우리 신랑은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아냐.
얘가 밤잠 안자고 낮잠도 안자고 코피 흘리고
정맥류 생겨가며 일해서 번 돈이다.
그냥 돈이 아니다. 피와 땀이 밴 돈이다.
우리 아기까지 핏덩이로 쏟아내게 한 돈이다.
그걸 내놓으라고? 얘가 준다고 해도 안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된다.
천만원 안쪽으로는 내가 빌려 주겠다.
나도 그만한 돈은 있으니까
준다 셈 치고 그냥 주겠다.
그런데 얘 돈은 안된다.
그건 우리가 손댈 수 있는게 아니다.
더이상 한마디라도 그 돈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날엔
나는 부모도 형제도 없다.
그렇게 알아라.
하면서 제 손을 잡고 뛰쳐 나왔어요...
시댁에선 계속 전화가 오고
남편은 전화선 뽑아버렸고
제 핸드폰엔 우리 형님 문자가..
저도 남편과 생각은 같아요.
우리 시아주버님같은 사람에게 돈을 투자하는건
그냥 길거리에 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글쎄요..
톡톡에서 시댁이랑 인연 끊고 살아 속이 시원하다는 분들의 글을 많이 읽었어요.
저희 친정에서는
돈을 대주는건 안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인연을 끊는건 천륜을 버리는 것이라며
내가 현명하게 대처해서
아닌건 아니라고 하되
그래도 가족간의 연은 끊어지게 하지 말아라 하시네요.
어떻게 하는것이 좋을지..
맘이 편해야 예쁜 아기도 다시 찾아올텐데..
머리가 복잡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