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 인쇄해 경찰 따돌리고 마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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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5년 전 일이다. 87년은 뜨겁고 바쁜 해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군사독재’라고 일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해 4월 개헌을 바라는 국민을 외면한 채 호헌을 선언했다.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에 이어 전국이 또 한 차례 들끓었다. 그리고 맞이한 6월 항쟁. 그때 쓰려고 만든 손깃발에는 “군사독재 타도하고 민주정부 수립하자”고 적혀 있다. 뒷면에는 노동3권 보장하라, 농가 빚을 탕감하라, 농산물 수입 중단하라, 광주학살 책임져라 등등이 만화로 그려져 있다.
손깃발은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내기위해 만든 것이었다. 손깃발의 배포는 민주화운동의 요구사항을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민중문화운동협의회라고, 당시 수도권에서 문화운동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놓은 것이다.
실제 활용도는 높지 않았다. 수도권에는 뿌려지기까지라도 했지만, 마산.창원에서는 따로 만들어 쓰지는 않았다. 왜냐면 지역에서는 거리에서 대열이 형성되면 곧바로 시위에 들어가 최루탄을 쏘아대는 경찰과 맞붙었기 때문이다.
‘민주쟁취국민운동경남본부’에서 홍보를 총괄해 맡고 있었는데, 대신 지역의 특성을 살린 위에다 손깃발의 내용(사실 어느 지역에서 제기해도 타당한 일반적인 요구다)도 참조해 여러 가지 크기로 홍보물을 만들어 뿌렸었다.
6월 10일부터 시작된 6월항쟁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더욱 뜨거워졌다. ‘투쟁의 대의와 현황’을 알리는 홍보물은 더욱더 필요해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살벌했다. 아는 인쇄소를 찾아가 찍어 달라고 부탁했으나 “좀 봐 달라”는 이야기를 거꾸로 들어야만 했다. 소량은 몰라도 대규모로는 찍어주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대구까지 화물차를 타고 가서 인쇄를 해온 적도 있었다. 대구 인쇄골목에는 경찰이 상주하면서 감시하고 있었다. 한밤중에 인쇄물을 막 싣고 빠져나오는데 경찰이 눈치챈 듯 따라붙었다. 당시로서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상황이었다. 붙잡히면 구속일 뿐 아니라 당장 시위에 필요한 홍보물이 모자라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세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어찌어찌 추격을 따돌리고 국도로 해서 내서를 거쳐 마산으로 돌아왔었다. 오면서는 32절.16절.8절 등 여러 크기 홍보물을 사과 상자에 미리 넣어두었다가 약속 장소에서 은밀히 건네주었는데, 새벽녘까지 서너 차례 계속되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며 깃발과 홍보물을 꺼내어 수없이 아로새겼던 숱한 요구와 구호들을 되새길 때가 있다. 당시 이루려고 했던 민주주의가, 1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과연 이뤄져 있는지 돌이켜 본다.
세상 겉보기는 분명 달라졌다. 하지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농민.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기본권은 아직도 완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각종 게이트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민주주의나 평등 따위는 입에 잘 올리지도 않는다. 15년 전 온몸으로 치열하게 맞섰던 6월항쟁은 이제, 흘러간 지난 날에 얽힌 아련한 추억일 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