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큰 돈’ 쓰면 쓸수록 ‘작은 행복’ 사라져
돈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합리적 경제주체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재테크에 골몰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야 인간은 행복하다고 느낄까? 최근 조사에 의하면 영국인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연소득은 5만 파운드(약 9천만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자산관리사이트인 ‘러브머니닷컴’은 연봉이 1~7만 파운드인 영국인 3000명에게 물은 결과 “5만 파운드를 버는 이들이 가장 행복하다”는 대답을 했다고 10일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조사에서 7만 파운드 이상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5만 파운드 연봉자들보다 덜 행복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돈과 행복이 꼭 비례하지만은 않는다’는 세간의 통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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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돈이 떨어진다면 행복할까? |
물론 막대한 부를 인류를 위해 사용함으로써 행복의 질을 높이는 덕망있는 부자들도 존재한다. 세계 최고의 갑부인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은 수 조원의 재산을 인류를 위해 기부했다. 하지만 게이츠와 버핏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이며 미국의 경우 연 소득 3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자들은 단지 소득의 4%만을 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으로 비싼 재화 소비할수록 일상의 소소한 재미는 사라져
이런 가운데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돼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궁극적으로 행복을 증진시키는지’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벨기에 소재 리에주대(Liege) 조르디 쿼드바흐(Jordi Quoidbach) 박사 연구팀은 과학저널 ‘Psychological Science’ 8월호에 “부는 우리에게 많은 재화를 소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재화소비는 우리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를 게재했다.
연구팀은 벨기에 성인을 대상으로 긍정적인 감정경험을 지속시키고 강화하는 능력인 풍미(Savor) 능력과 소득 수준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이들 대상들은 돈에 대한 강화 지표로써 유로화의 이미지를 노출시키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으로 나눠 각각 연구가 진행됐다.
연구결과, 보다 소득이 많은 집단의 경우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풍미 능력이 더 약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유로화 다발이 그려진 그림에 노출된 그룹 역시 풍미 능력이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또 자기만족도를 알아보기 위해 16~59살 캐나다 성인을 대상으로 초콜릿을 먹을 때 행복을 느끼는 실험을 수행했다. 이 실험은 부유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싼 돈을 줘야 먹을 수 있는 브랜드 초콜릿이 아닌 일반 초콜릿을 먹을 때의 만족도를 알아보는 실험이다. 이 실험 역시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 대해서는 돈에 대한 강화지표로써 캐나다 달러를 노출시켰다.
실험결과 소득이 많은 집단의 경우 충분히 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는 값비싼 브랜드 초콜릿이 아닌 실험에서 제공된 이름 없는 초콜릿을 맛보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캐나다 달러에 노출된 그룹은 초콜릿을 먹는 데 할애하는 시간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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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영화 '21'의 한 장면 |
이 같은 연구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연구팀은 “돈은 사람이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제공하지만, 또 한편 인생의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감소시킨다”고 설명했다. 즉 ‘돈은 행복을 살 수 없다’라는, 다수가 공감하지만 증명되지 않은 일반적 통설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번 아주 값비싼 프랑스산 와인을 마시거나 개인 전용비행기를 탑승한다면, 같은 경험을 다시 한다고 처음 느꼈던 만족도의 행복감을 또 얻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더 비싼 와인과 더 빠른 비행기를 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20~30대 남성들의 관심사인 자동차 오디오 튜닝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동차 오디오 튜닝은 차에 장착된 오리지널 정품 오디오의 성능에 만족하는 못하는 소비자들이 많게는 수천만의 돈을 들여 자신이 원하는 오디오 사운드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비싼 오디오 시스템을 장착하면 좋은 오디오 사운드가 들리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자동차 오디오 튜닝을 경험한 대다수의 인터넷 카페 동호회 회원들은 결국 최상의 오디오는 “있는 그대로의 오리지널 정품 사운드”라며 “비싼 돈을 들여 자동차 오디오 튜닝을 하지 말 것”을 충고한다.
실제로 복권 당첨자에 대한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1970년대를 기준으로 5만 달러에서 10만 달러 상당의 복권이 당첨된 사람들은 복권에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인생의 작은 즐거움에 덜 감동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쿼드바흐 박사팀의 연구결과는 과학적 논박을 불러올 수 있다. 돈에 묻은 균에 대한 거리낌, 돈에 대한 걱정, 초콜릿을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개인적 취향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실험결과가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The how of happiness, A Scientific Approach to Getting the Life You Want (2008, Penguin Press)’의 저자인 소냐 뤼보미르스키(Sonja Lyubomirsky)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쿼드바흐 박사팀의 연구결과를 지지했다. 그녀는 “돈을 많이 갖는 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기대하는 행복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증대시킨다. 이렇게 증대된 갈망은 중독성이 있으며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쉽게 말해, 한 번 비행기의 2등석을 타면 3등석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힘들며 유명 레스토랑에서 한 번 식사를 하면 동네 식당에서 다시 식사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증대된 갈망은 우리가 비싼 재화를 소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만들 뿐더러 우리가 인생의 소소한 일에 기뻐하는 능력을 후퇴시킨다. 또한 우리를 보다 더 소비하게끔 만든다. 때문에 때때로 빚을 지고 도박에 빠지고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담보대출을 받기도 한다.
충격적이게도 미국인들은 2년마다 차를 바꾼다는 통계조사가 있다. 새 차를 사면 물론 들뜨고 운전이 재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은 ‘새 차를 운전하는 즐거움은 새 차가 중고차가 되기도 전에 이미 사라진다’는 것이다.
어떻게 돈을 쓰느냐가 행복의 관건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면 돈에 대한 열망, 행복에 대한 갈망을 멈춰야 옳은 것일까? 사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명제는 돈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다. 돈에 대한 사회과학 연구는 돈으로 우리가 잃는 즐거움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답해준다. 돈이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돈을 쓰느냐’가 관건이라는 얘기다.
친구·회사 동료들과 즐겁게 식사하는 것,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는 것 등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한 번에 비싼 45인치 평면 LED TV를 사는 것보다 작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소소한 것에 돈을 쓰는 것, 내 친구의 차가 얼마나 더 비싼 차인지 비교하는 것보다 폴 매카트니 콘서트에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생각하는 것 등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통해 돈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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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조원대의 재산을 기부한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 |
뤼보미르스키 교수는 “만약 쿼드바흐 박사팀의 연구결과처럼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작은 노력과 배려만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돈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렉서스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돈을 잘못 쓰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광고카피를 사용한다. “인간은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적인 삶을 선택하거나 혹은 인류를 위해 돈을 쓸 줄 아는 현명한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뤼보미르스키 교수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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