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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치서든 국민 보호"…정계 진출 암시한 윤석열
지소미 2021-03-04     조회 : 779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2시 사의를 표명했다./이동률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2시 사의를 표명했다./이동률 기자

"검찰에서 할 일은 여기까지"…사실상 선언으로 해석

[더팩트ㅣ박나영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설치를 강도 높게 비판한지 사흘 만의 결단이다. 사퇴 발표에서 그가 "어디에 있든 국민 보호에 힘쓰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사실상 정계 진출을 선언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대검찰청 현관 앞에서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며 사직 의사를 밝혔다. 이날 오전 반차를 쓴 윤 총장은 입장 발표가 예정된 2시 직전에 차량을 타고 청사 앞에 도착했다.

윤 총장은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동안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신 분들, 그리고 제게 날선 비판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윤 총장은 전날까지 거취에 대한 언급을 않다가 갑자기 입장 표명을 한 이유와 사퇴 후 정치 입문 계획, 사퇴가 중대범죄수사청 논의에 효과가 있다고 보는지 등을 묻는 기자들에게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은 채 청사로 들어갔다.

윤 총장은 사의표명 직후 법무부에 사표를 제출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2019년 7월 임명된 그는 1년8개월 만에 검찰을 떠나게 됐다.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시행된 뒤 취임한 22명의 검찰총장 중 임기를 채우지 못한 14번째 검찰 수장이 되는 셈이다.

윤 총장은 이날 오전 반차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전날 대구고검을 방문한 윤 총장은 오후 8시께 현장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지방 출장 뒤에는 늦게 출근하거나 오전 휴가를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직후 낸 연차여서 사퇴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졌다.

일부 언론은 전날 대구고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윤 총장이 "내가 총장직을 지키고 있어서 수사청을 도입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을 망가뜨리려고 하는 것 같다" "내가 그만둬야 멈추는 것 아니냐"며 주변에 사의를 표명할 의사를 내비쳤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윤 총장이 사퇴 발표하는 모습./이동률 기자
윤 총장이 사퇴 발표하는 모습./이동률 기자

윤 총장은 지난 3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권이 추진하는 수사청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히고,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야 100번이라도 걸겠다"는 등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어 전날 대구고검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으로, 헌법정신에 크게 위배되고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또한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윤 총장은 수사청 법안이 강행될 경우 총장직에서 사퇴하겠냐는 질의에는 "지금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정계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 자리에서 드릴 말씀이 아니다"라고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다만 윤 총장의 정계 진출은 시기가 문제일 뿐 사실상 기정사실화 됐다. 그가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라고 선을 그으면서 "어디에 있든 국민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정계 진출을 암시한 대목으로 읽힌다. 당장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야권 후보들은 윤석열 총장을 '반 문재인'의 아이콘으로 부각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은 지난해 2월 여론조사기관들에 대선 후보 조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하면서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앞서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 항명 파동으로 좌천된 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에게 총선 출마를 권유받았으나 거절한 일도 잘 알려졌다.

윤 총장이 정치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 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때다. 대선 주자로 꾸준히 언급돼온 그는 지난해 10월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정치 의향을 묻는 질의에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답한 바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면서 주요 징계사유로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들었다. 최근 정세균 국무총리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총장을 향해 "마치 정치인 같다"며 최근 그가 보인 '여론전'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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