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트콤 ‘더 오피스’(오른쪽)는 지난해 미국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다. NBC에서 2005년 처음 방송됐다. 2위는 같은 방송국이 1994년 처음 방영한 ‘프렌즈’(왼쪽)./NBC 캡처 질문 하나. 지난해 미국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는? 넷플릭스 대표 오리지널 시리즈인 '하우스 오브 카드'? 최근 새 시즌이 방영됐던 '기묘한 이야기'? 모두 아니다. 정답은 '더 오피스'. 더 오피스는 2005년 미국 NBC에서 처음 방송한 시트콤으로, 마지막 시즌이 끝난 지 이미 6년이 지났다.
미 리서치 업체 점프샷에 따르면, '더 오피스'는 넷플릭스 전체 콘텐츠 조회 수의 7.19%를 차지한다. 넷플릭스는 자체 시청률 통계 등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점프샷은 온라인 방문자 수 등을 기반으로 해당 통계를 작성했다.
질문 둘. 둘째로 많이 본 콘텐츠는? 이 콘텐츠 역시 첫 방영일이 1994년으로 올라간다. 종영한 지도 15년이 넘었다. 그렇다. 미국 NBC 시트콤 '프렌즈'(4.13%)다.
요즘 콘텐츠 시장에선 '고인 물이 썩는다'는 속담이 통하지 않는다. 수많은 스타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세상에서, 20년 전 제니퍼 애니스턴(프렌즈 레이철 역)은 여전히 사랑받는다. 애플 광고 삽입곡 주인공이자, 요즘 가장 인기 있는 팝스타인 2001년생 빌리 아일리시는 최근 더 오피스 OST와 대사를 넣은 노래를 발표했다. 그녀는 더 오피스 열혈 팬이라고 한다. 더 오피스는 아일리시가 네 살 때 시작해, 열두 살 때 종방했다. 가히 '고인 물 르네상스'라 할 만하다.
과거 '고인 물'은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퇴보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콘텐츠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가 고인 물 콘텐츠를 새로 흐르게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시청자들은 이제 TV에서 재방송을 해주지 않아도 클릭 한 번으로 과거 콘텐츠를 볼 수 있다"며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과거 콘텐츠에 새 삶을 줬다"고 했다.
시청자의 콘텐츠 선택권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오히려 이전에 잘 알던 콘텐츠로 돌아온다는 분석도 있다. 시청률 조사 업체 닐슨은 "서랍을 열었는데 너무 많은 셔츠가 있을 때, 사람들은 평소 자주 입던 편안한 셔츠를 선택한다"며 "지금 시청자들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유명 TV 비평가인 소니아 사라이야는 "이 시절 콘텐츠를 제작하던 방식을 더는 쓰지 않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 고인 물 콘텐츠를 접한 적 없는 젊은 시청자들은 이를 지금의 콘텐츠와 달라 신선하다고 여긴다.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는 시티팝, '온라인 탑골공원' 등도 고인 물 르네상스 연장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시티팝은 '도시에서 흥하는 음악'을 일컫는 말로, 1970~1980년대 일본에서 떠오른 팝의 한 장르다. 청량한 느낌의 전자 음향으로 낭만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는데, 30년 만에 그 유행이 돌아왔다. 우리나라 시티팝 노래를 엮은 서울시티비트(Seoul City BEAT) 동영상은 조회 수 25만을 기록했다. 해당 영상에선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 윤수일의 '아름다워',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 장필순의 '어느새' 등이 흘러나온다.
시티팝은 1970~1980년대를 겪지 못한 세대가 유행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로 소비되는 복고 열풍과 차별점이 있다. 시티팝을 즐겨 듣는다는 직장인 이수정(28)씨는 "시티팝 믹스 등을 통해 접한 대부분의 노래가 처음 들어보는 것"이라면서도 "요즘 감성에 전혀 뒤처지지 않고 세련된 느낌이 있어 즐겨 듣는다"고 했다. 옛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신기술을 접목하는 '뉴트로(New-tro)'에 가깝다.
고인 물이 환영받는 또 다른 곳은 '온라인 탑골공원'이다. 지난 8월 초 유튜브 채널 'SBS KPOP CLASSIC'은 1990~2000년대 SBS 인기 가요를 실시간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곳에선 24시간 라이브로 당시 인기 가요가 재생된다. 온라인 탑골공원이란 별명처럼, 90년대 가수들과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가 추억에 젖어 찾는 온라인 명소가 됐다. 초창기엔 접속자가 50여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동시 접속자가 최다 2만명에 달한다. 전체 구독자는 17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2일 방송에선 가수 양파가 '애송이의 사랑'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 노래를 같이 듣던 친구들이 생각난다'는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렸다.
잘 흐르는 고인 물 콘텐츠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잘 만들어진 콘텐츠여야 한다는 점이다. 시카고트리뷴은 "더 오피스는 직장인 누구나 봐도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며 "직장 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더 오피스를 볼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