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인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인 현모(53)씨와 공모해 정기고사 시험을 치렀단 의심을 받은 쌍둥이 딸(19)들은 지난 3월 확정된 아버지의 판결을 넘지 못했다. 아버지 현씨는 교무부장 재직 당시 관리하던 시험 답안을 유출해 이를 딸들에게 건네고, 딸들은 이를 외워 1년간 5차례의 정기고사 시험을 쳤다는 의혹을 받았다. 현씨는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3년형을 대법원에서 확정 받고 복역 중이다.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부장판사는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 현모양의 1심에서 각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240시간을 명했다. 송 부장판사는 "똑같은 사실관계로 이미 확정된 형사 판결이 있을 때 그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을 다르게 볼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리를 판결 시작부터 언급했다.
즉 아버지 판결에서 확정된 사실관계가 어떤 것인지 먼저 살펴보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하나하나 따져보는 방식으로 딸들의 재판을 심리했다는 뜻이다. 40여분간 이어진 선고 동안 피고인석에 선 쌍둥이 딸은 줄곧 재판부를 응시했다.
재판부는 아버지 현씨 재판에서 확정된 사실관계를 크게 5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쌍둥이의 내신 시험 성적이 이례적으로 급상승한 점 ▶모의고사와 정기고사 성적 차이가 커 쌍둥이가 진정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답안 유출을 의심할만한 쌍둥이의 행동들 ▶아버지 현씨가 출제 서류에 접근할 수 있었고 시험 전후 특별한 이유 없이 학교에 있었던 점 ▶쌍둥이가 다른 경로로 답안을 입수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아버지 재판에서는 여러 가지 간접사실들을 종합해 직접 증거 없이 현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성적 분석: 이례적 성적 상승ㆍ모의고사와의 차이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재판부가 먼저 들여다본 2가지 사실관계는 쌍둥이의 성적과 관련한 사실관계다. 이들의 성적은 '이례적인 급상승' 사례로 인정됐고, 모의고사와 내신의 급격한 차이는 답안 유출의 근거로 인정됐다. 서울 소재 10여개 여자고등학교의 3년간 재학생 성적 상승 조회 결과 등이 고려됐다. 송 부장판사는 "쌍둥이와 비슷한 또래 여학생 중 1년 내 성적이 급상승한 사례가 분명히 존재하긴 한다"고 사실조회 결과를 설명했다.
하지만 사실조회에서 몇몇 사례가 있다는 것만으로 이를 일반적인 일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결론이다. 즉 성적 급상승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흔하게 발생하는 사례는 분명히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성적 급상승 사례 중에서도 쌍둥이처럼 1년여 만에 각각 문·이과 1등을 차지한 것에 대해 송 부장판사는 "이례적인 사례보다 더 이례적인 사례"라고 표현했다. 모의고사와 내신의 격차를 유출의 간접증거로 인정한 아버지 재판부의 판단도 틀리지 않았다고 봤다.
딸과 아버지의 의심스러운 행적: 깨알 정답, 휴대폰에 적힌 답 등
서울 수서경찰서가 공개한 숙명여고 쌍둥이 문제유출 사건의 압수품인 시험지에 해당 시험 문제의 정답(빨간 원)이 적혀있다.[뉴스1]
‘딸들의 의심스러운 행적’은 6개의 사례로 나눠 다시 봤다. 시험지 여백에 적혀 있는 이른바 ‘깨알정답’이나 시험 일자 며칠 전에 휴대전화에 미리 저장된 영어 구문 답안 등에 대한 판단이다. 깨알정답에 대해 딸들은 “반장이 불러준 답을 적었거나 정답 분포를 알기 위해 적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딸들이 시험 전에 알게 된 답을 외웠다가 시험지에 적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봤다.
서울 수서경찰서가 공개한 숙명여고 쌍둥이 문제유출 사건 압수품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유출 정황. [사진 수서경찰서]
시험 3일 전 휴대폰 암기장에 적힌 영어 구문에 대한 판단도 그대로 인정됐다. 쌍둥이 동생은 2018년 6월 기말고사 영어 시험에서 서술형 9번 정답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저장했다. 현양은 이를 인터넷 심화학습으로 공부해 적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출제교사는 “500개가 넘는 문장 중 1개이고, 중요 문장으로 가르친 적도 없는데 그 문장을 꼽아 답을 저장한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라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동생은 시험 전부터 답을 알았고, 이를 외우려고 휴대폰에 저장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라고 판결했다.
숙명여고 쌍둥이의 메모장에서 발견된 '전 과목 정답' 메모 [연합뉴스]
쌍둥이 집에서 발견된 답이 적힌 수기 메모장과 포스트잇, 유달리 쌍둥이들만 답안지에 정정 전 정답을 쓴 점 등에 대한 판단 역시 그대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풀이과정은 잘못 적고 답은 맞게 쓴 점을 두고 '기묘한 상황'이라고도 칭했다. 답안 유출을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론이란 취지다.
아버지 현씨가 시험 전 특별한 이유 없이 초과근무를 했다는 등의 의심스러운 행적도 근거로 재차 인정됐다. 결국 이런 간접 증거들을 모두 모아볼 때 재판부는 “딸들이 아버지와 함께 숙명여고의 학업 성적 관리를 방해 한 걸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결론 지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답, 거부 못 한다" 주장했지만
변호인들은 이달 초 재판부에 입시 비리와 관련된 한 대법원 판례를 제출했다고 한다. 1966년에 나온 판례다. 시험 응시자가 우연히 시험문제를 알게 돼 답을 외운 뒤 시험을 친 경우 이를 업무방해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부정한 방법으로 안 것이 아니라 우연히 시험문제와 정답을 알았을 때, 응시생이 그 답을 적지 않을 가능성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일반적인 학생이라면 우연히 알게 된 답을 시험지에 적지 않을 ‘기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런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 “이 사건과 사안이 달라 적용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사건에 맞춰 적극적으로 해석해보더라도 쌍둥이들이 이런 상황에서 적법한 행위로 나가는 게 전혀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분명히 했다.
이어 재판부는 “대학입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시험에 학생들의 공정한 경쟁 기회를 박탈하고, 공교육에 대한 다수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뜨렸다”며 쌍둥이들의 죄질이 무겁다고 판결했다. 또 법정에서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점도 짚었다. 다만 딸들이 사건 당시는 물론 지금도 미성년자인 점, 이 사건으로 퇴학 처분을 받은 점, 아버지가 복역 중인 점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했다.
검찰은 지난 7월 결심 공판에서 “딸들이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며 장기 3년과 단기 2년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쌍둥이 딸은 최후 변론에서 “검사가 말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 죄에 비해서 형량이 너무 가벼운것 같아요. 잘못도 반성하지 않고, 이해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