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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안내원
북기 | 2020.01.31 | 조회 256 | 추천 1 댓글 1

내가 아주 어렸을때 우리집은 동네에서 제일 먼저 전화를 놓은집이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옆 벽에 붙어있던 반질 반질하게 닦은 참나무 전화통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반짝 반짝 빛나는 수화기가 그 통옆에 걸려 있었다.

전화번호까지 생각나는데,우리집은 109번이었다.

나는 워낙 꼬마라서 전화기에 손이 닿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거기대고 말을 할때면

홀린 듯이 귀를 기울이곤 하였다.

한 번은 어머니가 나를 들어 올려 지방에 출장 중인 아버지와 통화하도록 해준 적도

있었다.

이거 참, 요술 같은 일이 아닌가!

이윽고 나는 이 멋진 기계 속 어딘가에 놀라운 인물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

그 사람은 여자였는데, 이름은 ´안내를 부탁합니다´였다.

그 사람은 무엇이든 알고 있었다.

누구네 전화번호라도 어머니가 묻기만 하면 척척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어쩌다 밥을 안 줘 우리집 시계가 멎기라도 하면, ´안내를 부탁합니다.´는

즉시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곤 했다.

내가 이 전화기 속의 요정과 처음으로 직접대화를 나눈것은, 어느날 어머니가 이웃

집을 방문하러 갔을 때였다.

지하실에 꾸며놓은 작업대 앞에서 놀다가, 나는 그만 망치로 손가락을 때렸던것이다.

너무나도 아팠지만 집 안에는 나를 달래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울어봤자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쿡쿡 쑤시는 손가락을 입으로 빨면서 집 안을 헤매다가 어느덧 층계 옆에 이르

렀다.

전화기다! 나는 얼른 응접실로 달려가 발받침 의자를 끌어왔다.

그 위에 올라서서 수화기를 들고는 귀에 갖다댔다.

그리고 전화통에 붙은 송화기를 대고 말했다.

˝안내를 부탁합니다˝

한두 번 짤깍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작지만 또렸한 음성이 귀에 들려왔다.

나는 전화기를 대고 울부 짖었다.

이제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생기자, 눈물이 기다렸다는 듯이 펑펑 쏟아졌다.

˝안냅니다˝

˝손가락을 다쳤어, 잉.....˝

˝엄마 안계시나요?˝

´안내를 부탁합니다´가 물었다.

˝나밖에 아무도 없는 걸, 잉...˝

˝피가 나요?˝

˝아냐, 망치로 때렸는데 막 아파요.˝

˝냉장고를 열 수 있어요?˝

나는 열 수 있다고 했다.

˝그럼 얼음을 조금 꺼내서 손가락에 대고 있어요.

금방 아픔이가실 거예요. 얼음을 꺼낼 때 조심해야 해요.˝

이렇게 가르쳐 준뒤, 그 사람은 상냥하게 덧붙였다.

˝자 이제 그만 울어요. 금방 나을 테니까.˝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나는 무슨 일이든 모르는게 있으면 ´안내를 부탁합니다´를

불러 도움을 청했다.

지리공부를 하다가 전화를 걸면, 그녀는 필라델피아가 어디에 있으며 오리노코강은

또 어디로 흐르는 지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설명만 들어도 멋이 있어서,나는 이담에 커서는 꼭 이 강에 가봐야겠다고 마음 먹을

정도였다.

그녀는 또 내 산수 숙제를 도와 주었고, 내가 공원에서 잡은 다람쥐에게 과일이나

땅콩을 먹이면 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우리들이 애지중지하던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즉시 ´안내를 부탁합니다´를 불러 이 슬픈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조용히 귀를 기울인 뒤 어른들이 흔히 어린애들을 달랠 때 하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토록 아름답게 노래하며 온 가족에게 기쁨을 선사하던 새가 어떻게 한낱 깃털

뭉치로 변해 새장 바닥에 숨질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조용히 말했다.

˝폴, 죽어서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웬지 나는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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