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볼일 때문에 중국 북경에 가던 길에, 인천 공항에서 북경까지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 적이 있었다. 정작 광주에서 인천공항까지 버스로 4시간 반 이상 달려온 뒤끝이라 그 놀라움은 더 컸던 것이다. 그런데 옛날 조선 시대 사신들이 북경까지 오고 가기 위해서는 왕복 여섯 달이 걸렸다고 하니, 그때를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좁고 빠른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비록 여섯 달이 더 걸렸던 옛 시절에도 사람들은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꾸준히 중국을 드나들었고, 중국을 통해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여 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 문물과 함께 그들의 언어도 우리 말속에 스며들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숱한 한자어가 모두 이러한 영향 탓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알고 있었던 말조차 그 기원을 따지면 중국말에서 온 경우가 심심찮게 발견되는 것을 보면 우리말에서 중국말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떠한 것인가를 짐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붓글씨를 쓸 때 사용하는 ‘붓’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여겨 왔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붓’이 사실은 한자어 筆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붓으로 찍어 그림이나 글씨를 썼던 ‘먹’도 역시 한자어 墨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뿐인가? 우리가 일상에서 날마다 사용하는 ‘배추’니 ‘김치’니 하는 말도 모두 중국말에서 들어온 것이고, ‘포도’와 같은 말도 사실은 중국 서쪽의 서역(현재의 신장 지역)에서 사용되던 말이라 하니, 이러한 외래적 요소를 빼면 과연 순수한 우리말은 얼마나 남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드는 것이다.
우리말에 들어온 외래어는 중국말뿐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를 통해 들어온 수많은 일본어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말에 숨어 있는 일본어는 흔히 우리말에서 자라는 잡초라 하여 이를 제거하려는 노력이 적지 않게 있어 왔다. ‘벤또’나 ‘쓰리’라는 일본말 대신 새로 만든 ‘도시락’, ‘소매치기’같은 말은 이러한 노력이 성공을 거둔 대표직인 예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말 속에는 우리도 모르게 일본어가 슬며시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필자 자신도 언젠가 ‘빠릿빠릿하다’와 같은 말을 ‘빠르다’라는 형용사에서 파생된 우리말로 생각하고 글을 쓴 적이 있으나, 나중에 <기운찬 행동>을 묘사하는 일본어이었음을 알고 부끄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방언 조사를 하다 보면 마찬가지로 특이한 방언형이라 생각하여 흥분해 있다가 그것이 일본말로 판명되어 실소를 금치 못했던 기억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버선’에 대한 ‘다비’라는 말이다. 과거 이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던 필자로서는 이 말이 특이한 전라도 말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식 버선>을 뜻하는 일본말이었던 것이다.
'나란히’와 같은 말로 쓰이는 ‘나라비’도 사실은 일본말이다. 예를 들어 ‘먼 사람들이 나라비 서 있데’라고 말할 때 사용되는 이 말은 언뜻 보아 우리말 ‘나란히’와 어원이 같은 사투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늘어선 모양’을 뜻하는 일본말 ‘나라비’에서 온 것이다.
어렸을 적 추운 계절이면 털실로 짠 스웨터를 즐겨 입었었는데, 우리는 이것을 흔히 ‘게옷’이라 하였고, ‘게옷’을 짜는 털실을 ‘게실’, 털실로 짠 바지를 ‘게바지’ 등으로 불렀다. 이런 말들을 보면 ‘게’라는 말은 ‘털’에 대응하는 말임을 쉽게 알 수 있고, 이 ‘게’가 전라도에서 쓰이는 사투리의 하나로 생각할 만하다. 그런데 이 ‘게’는 사실 <털이나 머리카락>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이처럼 일본말은 들어온 역사가 한자어에 비해 길지 않지만, 어느새 우리 생활 깊숙이 박혀 있어서, 짐짓 우리말처럼 행세하는 수가 적지 않다. 사투리를 조사할 때에나 사투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주의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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