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대원 차녀 순직…생모 "법적 상속인" 주장
전남편·맏딸 "장례식도 안 온 사람이 뻔뻔해"
생모 "두 딸 방치 안해…전남편이 접촉 막아"
"친모로서 애정 변함 없어…청구 부당" 반박
가수 고(故) 구하라씨의 친오빠 구호인씨가 지난 3월 "부양의무를 저버린 친모는 동생 구씨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며 국회에 입법 청원을 올려 10만 명의 동의를 얻은 '구하라법'.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19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이를 논의했지만 '계속 심사' 결론이 나면서 20대 처리는 불발됐다. 구씨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하라법이 만들어져도 우리 가족은 적용받지 못하지만, 평생을 슬프고 아프게 살아갔던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21대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구하라법은 가족을 살해하거나 유언장을 위조하는 등 제한적 경우에만 유산 상속 결격 사유를 인정하는 현행 민법에 '직계존속 또는 직계비속에 대한 보호 내지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자'를 추가하는 것이 골자다. 전북에서 구하라씨 사건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자녀가 어릴 때 남편과 이혼한 생모가 소방관 딸이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나 '법적 상속인'을 주장하며 유족급여 등 1억원가량을 받았다. 이에 전남편과 큰딸 측은 "장례식장조차 오지 않았던 사람이 뻔뻔하게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며 양육비 청구 소송으로 맞섰다.
전북 전주에 사는 A씨(63)는 지난 1월 전 부인 B씨(65)를 상대로 과거 두 딸의 양육비 약 1억9000만원을 청구하는 가사소송을 전주지법 남원지원에 제기했다. 1983년 1월 결혼한 A씨 부부는 1988년 3월 협의 이혼했다. 당시 각각 5살, 2살이던 두 딸은 A씨가 배추·수박 장사 등 30년 넘게 노점상을 하며 키웠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월 2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권 한 소방서 소속 응급구조대원으로 일하던 A씨의 둘째 딸(당시 32세)이 수백 건의 구조 과정에서 얻은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와 우울증을 5년간 앓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의사 소견서에 따르면 소방공무원 생활 중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충동 조절 어려움과 인지 기능 저하 등에 시달리던 그는 휴직 후 지속적인 치료에도 근무 시절 목격한 사고사 장면이 반복해 떠오르는 증상 등이 악화했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1월 18일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 심의 결과 순직이 인정된다"며 A씨가 청구한 순직유족급여 지급을 결정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비슷한 시기 친모인 B씨에게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B씨는 본인 몫으로 나온 유족급여와 둘째 딸 퇴직금 등 약 8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사망 때까지 매달 유족연금 91만원도 받을 예정이다. 이미 수개월분은 지급됐다.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A씨 부녀는 "B씨는 이혼 후 두 딸을 보러 오거나 양육비를 부담한 사실이 없으며 부모로서 어떠한 역할도 없이 전남편에게만 방치했다"며 양육비 소송을 제기했다. 미성년자인 자녀에 대해서는 부모 모두 부양 의무가 있고, "부모의 자녀 양육 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과거의 양육비에 대해서도 상대방이 분담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비용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삼았다.
양육비는 이혼 시점인 1988년 3월 이후를 기준으로 자녀 한 명당 성년이 된 해까지 매달 50만원씩 계산했다. 첫째 딸은 8600만원, 둘째 딸은 1억350만원 등 총 1억8950만원을 청구했다.
이에 B씨는 법원에 낸 답변서를 통해 "양육비 청구는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당시 전업주부로서 아이들을 방치한 사실이 없고, 전남편이 집에서 쫓아내다시피하며 나와 아이들의 물리적 접촉을 막았다"는 게 이유다.
외려 B씨는 "아이들이 엄마를 찾을 때면 전남편이 '엄마를 왜 찾느냐'며 두 딸을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혼 후 친모로서 누구보다 아이들을 보살피고 싶었지만, 내가 다가갈수록 이를 시기하는 전남편이 딸들에게 해를 가할 것을 우려해 만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며 "대신 친정 어머니로 하여금 두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 옆에 집을 얻어 살며 딸들의 안위를 살피도록 했다"고 했다.
B씨는 "시간이 흘러도 딸들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며 "(나에 대한) 큰딸의 적개심은 전남편의 험담에 의해 심어진 잘못된 인식 탓"이라고 강조했다. B씨는 이혼 후 두 딸 앞으로 매달 1만원씩 수년간 든 청약통장 사본과 현직 목사로서 그가 지역 주민을 위해 선행을 베푼다는 주변인의 탄원서를 근거 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A씨의 큰딸(37)은 법정에서 "아버지는 생모가 접근하는 것을 막지 않았으며 저와 동생은 폭행을 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B씨 주장은 거짓"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아버지는 저희를 키우면서 언성을 높이거나 손찌검을 하신 적이 없다. 제가 결혼하기 전까지 저를 '큰 공주', 제 동생을 '작은 공주'라 부르셨던 아버지를 악마처럼 표현하는 생모가 무서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생모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몰래 만나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가 '(엄마와) 함께 살고 싶냐'고 물었고, 저와 동생은 '아빠와 살고 싶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는 "제 동생은 제 모든 것이었다. 동생이 심장이 아팠으면 당연히 제 심장을 줬을 것이고, 눈이 아팠다면 두 눈을 줬을 것"이라며 먼저 떠난 동생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나 "생모는 동생이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동생이 어디에 안치돼 있는지,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제 동생이 얼마나 힘든 고통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구조하고 이송하고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 생모라는 사람은 목사라는 직업을 앞세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다"며 "몸속에 피가 멈추는 듯하고 헛구역질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디 동생의 불쌍한 죽음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 생모에게 인간으로서 도덕적 반성을 할 수 있도록 판결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A씨 큰딸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그 사람(생모)이 인제 와서 '아이를 낳았으니 그만큼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하는데 아이를 낳아 놓고 책임을 안 지면 오히려 피해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사람보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면 아버지가 받던 유족연금마저 생모에게 전부 간다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순직이 인정되면 보훈청에서 주는 유족연금이 있는데 생모는 저희가 신청하기도 전에 먼저 신청했다"며 "보훈청 쪽에서 서류 검토 과정에서 생모가 주로 부양하지 않았는데 왜 신청했는지 저희에게 물어 알게 됐다"고 했다.
A씨 부녀를 대리하는 강신무 변호사는 "실제로 부양의무를 전혀 하지 않은 부모까지 피가 섞였다는 이유만으로 유산을 상속받는 건 현행 국내 사법 제도의 크나큰 맹점"이라며 "이런 점을 보완한 '구하라법'이 21대 국회에서는 꼭 처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전주지법 남원지원 가사1단독 홍승모 판사 심리로 모두 네 차례 재판과 조정이 진행됐다. 선고는 다음 달 10일 변론을 끝으로 오는 7월 이뤄질 예정이다.
전주·남원=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하루 빨리 이런 악법은 개정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부양 의무도 해태 하고서는 권리만 주장하다니 너무 파렴치하고 뻔뻔하네요. 엄마가 목사라니.. 종교인으로서 과연 자질이 있는지 의심스럽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인들의 영혼이 결코 편히 쉬지 못할 것 같아요. 돈이 뭐길래... 만약 소방관 경우도 딸이 빚이 많았다면 과연 상속을 받았을지 의문이 드네요. 권리를 포기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