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하고 개운한 오이지오이는 상큼한 향기와 아삭아삭한 맛에 누구나 좋아하는 채소이다. 주로 나물, 생채를 만들어 먹지만 김치와 장아찌도 다양하게 담글 수 있다. 오이는 워낙 수분이 많고 조직이 연해 오래 저장하기는 어려우나 통째로 소금에 절여서 물기를 뺀 오이지나 간장(진간장)을 부어 담근 오이장아찌는 오랫동안 두고 먹을 수 있다.
오이지는 담백하고 개운해서 식욕을 잃기 쉬운 여름철에 입맛을 돋워준다. 오이를 소금물에 담가 두면 시간이 지나면서 젖산균이 생겨 새큼한 맛이 나고 아삭아삭해진다. 짜게 담그는 편이라 먹을 때는 얇게 썰거나 막대 모양으로 썰어서 맹물에 담갔다가 송송 썬 파를 넣고 섞은 다음 실고추나 고춧가루를 약간 뿌린다.
오이지나 장아찌를 담글 오이는 다대기라고 하는, 연두색의 통통하고 짧은 재래종이 적당하다. 예전에는 오이지를 담그려면 한 접, 두 접이라 하여 100개, 200개씩 담가 여름 내내 먹고, 남으면 고추장에 박아서 장아찌를 만들곤 하였으나 요즘은 그렇게 많이 담그는 집은 드물다.
오이지는 무엇보다 염도가 알맞아야 맛있다. 씻은 오이를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짭짤한 소금물을 붓기만 하면 되는데 이 때 소금물의 농도는 10% 정도가 알맞다. 더 짜면 오래 두어도 무르지는 않지만 맛이 없고, 이보다 싱거우면 익기도 전에 물러져 버린다.
『조선요리제법』에 담그는 법이 자세히 나온다. “외를 냉수에 깨끗이 씻어 채반에 건져 놓아 물기가 다 빠지면 항아리에 담는다. 담을 때에 외 한 켜 놓고 소금을 뿌리는데 외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씩 뿌린다. 이러기를 몇 차례 반복한 후에 무거운 돌로 단단히 눌러 놓고 물 한 동이에 소금 석 되를 풀어 펄펄 끓여서 더운 그대로 붓고 즉시 망사로 봉해서 식힌 다음 뚜껑을 덮어 익힌다. 십 일쯤 지나면 먹을 수 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나오는 오이지는 “외를 씻지 말고 그대로 항아리에 담되 매 켜에 소금을 뿌리고 다 담은 후 무거운 돌로 눌러 놓고 물을 붓는다. 물 한 동이에 소금 두 되 가량을 풀어서 끓여 가지고 더울 때 붓고 식으면 뚜껑을 덮어 둔다. 처서(處暑)가 지나면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예전에는 겨울철에 오이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철에 짜게 절여 두었다가 김장 때 꺼내 먹곤 하였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겨울 김치에 넣으려면 자잘한 꽃맺이 외를 구하여 짜게 절이는데 놋그릇이나 그릇 닦던 수세미 또는 약방에서 파는 삼록을 함께 넣고 옥수수잎이나 강아지풀을 덮어서 돌로 눌러 둔다. 가을이 되면 외를 열흘쯤 물에 우렸다가 먹는다. 외를 따서 바로 담그지 말고 볕을 쪼인 후에 담가야 물러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녹색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녹청이 붙은 수세미나 삼록을 넣고, 물 위로 떠오르는 것을 막으려고 옥수수 잎이나 강아지풀로 덮었다는 생활의 지혜도 새겨둘 만하다. 필자도 어릴 적에 오이지를 담글 때 짚을 씻어서 몇 가닥 넣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또 오이지 비슷한 외짠지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소개되어 있다. “비 올 때 매치치 않은, 자잘한 외로 골라서 소금에 절였다가 보에 싸서 꼭 눌러 가지고 진장에 넣고 돌로 눌렀다가 꺼내 먹으면 좋다. 외장아찌와 비슷하나 굵게 썰어 먹으므로 짠지라 한다.” 하였으니 오이지와 장아찌의 중간쯤 된다. 푸짐한 오이소박이오이소박이는 소를 채워 넣는 일이 귀찮기는 하지만 맛이 산뜻해 여름에 많이 담근다. 지금은 오이소박이라고 하지만 옛 음식책에서는 ‘외소김치’라고 하였다. 연한 재래종 오이로 담갔는데, 소금으로 문질러 씻어서 토막을 내고 칼집을 넣어 절여서 소를 넣는다. 재래종 오이를 잘라 보면 단면이 삼각형인데 양끝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칼집을 넣되 가운데까지 서로 통하도록 하여 절인다. 굵고 둥근 오이는 열십자로 넣어야 소가 고루 들어간다. 오이김치는 담가서 2~3일 안에 먹어야지 오래두면 물러져서 맛도 없고 색도 흉해진다고 하였다.
오이소박이를 담그려면 오이를 5cm 정도로 토막내어 양끝이 끊어지지 않게 칼집을 내어 절였다가 잘게 썬 부추와 다진 양념을 합하여 조금씩 넣고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돌이나 접시로 누르고 소금물을 부어서 익힌다. 요즘은 큼직하고 푸짐하게 만들고 부추와 무채로 소를 만들어 넣으며 아주 빨갛게 담그지만 옛날에는 다진 파, 마늘, 생강 등을 다져서 고추로 버무려 조금씩 넣고 담가 색이 연하다. 절인 열무를 버무려서 켜켜로 담아 익히기도 하였다.
예전에 운현궁에 있는 한 찬모는 부추나 무를 전혀 넣지 않고 양념과 절인 오이를 다져서 소로 넣었다. 오이를 토막내고 남은 짧은 조각을 버리지 않고 오이 토막과 같이 절였다가 물기를 없애고 곱게 다진 것으로, 부추를 넣었을 때보다 순하고 상큼하다.
상에 낼 때는 갈래를 마저 끊어서 막대 모양으로 가지런히 놓거나 세로로 반 잘라 보시기나 접시에 세워서 담고 국물을 자작하게 붓는다. 그 밖의 오이김치오이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김치로 오이깍두기가 있다. 오이를 3cm 정도로 짧게 토막내어 네 갈래로 갈라서 절였다가 다진 양념으로 버무려 다음날 먹는다.
또 옛 음식책에 ‘닭김치’가 나오는데 내용을 보면 아주 독특하다. 외깍두기에 이긴 고춧가루를 넣어서 익으면 닭을 삶아서 살을 뜯어 깍두기에 버무려서 얼음에 채웠다가 먹는다고 하였다.
오이비늘김치는 자주 만들지는 않지만 만드는 법이 재미있다. 오이를 통째로 절여서 비늘처럼 칼집을 내어 무채 양념을 소로 넣고 절인 배춧잎으로 싸서 익힌 김치로 김장 때 배추 통김치나 섞박지에 섞어서 담근다.
요즘 고깃집에서는 달고 신맛의 오이김치를 많이 내주는데 물에 인공 감미료와 식초를 타서 만든 단촛물에 가른 오이를 담갔다 꺼낸 것으로 서양의 오이 피클을 응용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전통적인 우리 음식은 아니다. 손이 덜 가고 빨리 만들 수 있고 보기에 화려한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주부도 물론이지만 조리사들이 우리 전통 음식의 좋은 점을 배우고 깨달아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오이나 배추김치를 접시에 길게 담아 먹는 사람 앞에서 가위로 잘라 주는 것이 마치 특별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결코 품위 있는 행동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