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비누와 합성비누동물성 기름이든 식물성 기름이든 기름이 없던 가난했던 시절, 시골 가정에서는 쌀겨에 양잿물을 넣고 가열해서 "검정비누"를 만들어 썼었다. 비누가 되는 원리는 쌀겨 속에 미강유란 기름이 원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검정비누 표면에는 모래 같은 알맹이가 있었고, 손바닥에 문지르면 이 알맹이가 만져졌던 촉감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당시는 비누를 만들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현대시대를 웰빙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유기농산물이나 천연세제가 TV 보도에서 인기가 높다. 그런데 TV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 종종 천연세제가 대두유, 올리브유, 팜유 등의 천연 식물성 기름에 수산화칼륨(KOH)을 반응시켜,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란 인상을 심어 주고 있어 오해의 소지가 크다.
우선 합성비누와 천연비누를 구분해서 소개하고, 천연비누를 집에서 직접 만들 필요도 없고, 만들고 싶다면 그 때의 주의사항을 강조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은 물론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진 사람들도 충분한 시설을 갖추지 않았다면, 가능한 한 비누를 집에서 만들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공업적으로 비누를 만들 때 원료로는 동물성 또는 식물성 천연기름을 쓰는데, 동물성으로는 소기름을 소량 트랜스(수소화)시키거나, 그대로 쓴다. 식물성 기름을 그대로 써서 비누를 만들면 너무 물러서 고체상으로 포장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상당히 트랜스(수소화, 경화)시켜야 비누제조의 원료로 쓸 수 있을 정도의 경도가 보장된다.
이제 그림에 나타낸 공업적인 비누 제조반응을 보자. 지방에 양잿물(NaOH)을 가하고 가열하면 지방이 분해되어 글리세린과 지방산 나트륨 염으로 된다. 이 화학반응을 비누화라 일컫는다. 이 반응에서 비누가 얻어지기 때문이다. 지방의 비누화에 의한 공업적 비누 제조 이 화학반응을 완결하여 품질이 좋은 비누를 만들기 위해서는, 1) 원료 첨가 비율을 정확히 맞춰야 하고, 2) 반응에 의해서 생긴 부산물을 완전히 제거해야 하고, 3) 반응물인 비누를 잘 정제해야 한다. 특히 비누에 함유된 수분을 제거해야 한다. 수분이 많게 되면 쉽게 물러진다.
원료 첨가 비율을 맞추기 위해서는 모든 원료들의 분자무게비를 알아야 된다. 양잿물(NaOH)의 분자무게는 40인데, 기름의 분자무게는 x, y, z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소기름의 경우 약 900~950의 범위이다. 900이라고 가정하면 기름/NaOH 무게비는 900/40으로 조절되어야 한다.
기름/NaOH 무게비율을 벗어나 어느 한쪽이 많아지면 반응하지 못해 남게 된다. 기름이 남게 되면 비누가 물에 잘 녹지 않게 되고, 녹더라도 뿌옇게 된다. 이런 비누로 씻으면 피부에 기름이 남아 기름냄새와 더불어 미끈거리게 된다. 양잿물은 강한 알칼리성이므로 과잉으로 투입해서 남게 되면, 피부 자극성이 심해져서 비누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합성 제품인 양잿물의 경우 고체와 물에 묽게 한 수용액 두 가지로 판매되는데, 실제 순도는 판매업자가 표시한 순도보다 조금 낮다. 유통 중에 항상 수분이 흡수되고, 탄산나트륨(Na2CO3)이 생기기 때문이다. Na2CO3는 NaOH가 CO2를 흡수하여 생성된다. 그래서 순도를 정확히 측정해야 900/40의 비율을 제대로 맞출 수 있는 것이다.
기름의 순도를 측정하는 일은 더 어렵다. 그림의 구조식에서 변수가 x, y, z 세 개나 되고, 기름이 아닌 것도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비누화가를 정확하게 측정해야 된다. 한마디로 말해 이런 분석은 공장의 전문가들이 할 일이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은 아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비누를 만들 때 결코 기름/NaOH 무게비율을 정확히 지킬 수 없다.
하지만 글리세린을 제거하여 잘 정제된 비누를 얻는 일은 가정에서도 할 수 있다. 약 60℃의 물에 비누를 녹이고 여기에 과량의 소금물을 가하면서 휘저어 주면 비누만 고체로 뜬다. 이를 실온에서 24시간 방치해 두면 위의 비누층과 아래의 염수층으로 확실히 분리된다. 이런 공정을 염석이라 부른다. 이때 아래 층의 염수를 따라내면 정제된 비누가 얻어진다. 원료기름으로 불포화도가 높은 식물유를 쓰면 비누가 고체가 아닌 액체로 얻어진다.
글리세린을 제거하지 않은 비누는 융점이 낮아 고체로 만들 수 없고, 그럴 경우 종이에 포장해서 상품화할 수 없게 된다. 샴푸처럼 용기에 담아 펌프로 짜서 써야 한다. 그렇지만 글리세린이 피부에 악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가정에서 비누를 만들어 쓴다면 사용상 약간 불편하더라도 글리세린을 제거하지 말고 그대로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림의 방법으로 화학공장에서 만든 비누를 많은 주부들은 합성비누로 여기고, 공장에서 만드는 방법보다 더 엉성하게 만들었어도 가정에서 직접 만든 것을 천연비누로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천연이란 천연 원료만을 써서 만든 것이라야지 누가 만들었는가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가정에서 비누를 만드는 사람의 설명을 들으면 양잿물(NaOH)을 쓴다고 하지만, 사실은 KOH인 수산화칼륨을 쓰고 있다. 왜 수산화나트륨(NaOH)을 안 쓰고 수산화칼륨(KOH)을 쓰는 것일까? 우선 KOH는 분자무게가 56이므로 NaOH 40에 비해서 40%나 무겁다. 분자가 40% 더 무겁다는 것은 원료첨가 시 무게비율을 맞출 때 40% 더 많이 넣어야 된다는 뜻이다. 더구나 KOH는 NaOH보다 단가도 훨씬 비싸다. NaOH는 바닷물 표면에 많은 염화나트륨(소금, NaCl)을 전기분해해서 만들지만, KOH는 심층에서 뽑아 올린 해수에서 얻을 수 있는 염화칼륨(KCl)을 전기분해해서 만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KCl은 NaCl보다 훨씬 비싸다. 비싼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서 KOH를 쓰는지 모르지만, 비누에서는 KOH로 만든 것이 NaOH로 만든 비누보다 더 좋을 이유는 거의 없다. 차이점이라면 양잿물 비누보다 물에 더 잘 녹는다는 것뿐이다. 비누의 공업 제품에서는 KOH를 쓰는 제품은 하나도 없다.
공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비누를 천연 원료기름을 써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100%는 천연비누라고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첨가물인 양잿물이 우선 합성 제품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비누를 만들 때에도 합성 제품인 양잿물을 쓰지 않고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양잿물은 소금을 전기분해해서 만든 합성 제품이다. 그러므로 천연기름을 원료로 해도 천연비누를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석유를 원료로 해서 합성되는 기름은 보통 광유라고 부르는데, 광유를 원료로 해서 경제성 있게 비누를 만드는 기술은 아직 개발된 것이 없고, 개발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합성기름을 이용해서 만든 합성비누를 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완전히 기우이다. 필자도 비누는 평생 사서 써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