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먹는 밥
밥을 먹는다
식탁 의자를 물려놓고 서둘러 아침밥을 먹는다
죽은 자의 밥상처럼
국과 밥의 자리가 바뀐 줄도 모르고 먹는다
기도도 하지 않고 먹는다
형장의 이슬이 되어야만 하는 사형수처럼
먹지 않으면 안 될 마지막 이유라도 있는 듯
막무가내로 입에 밀어 넣는다
밥은 오래전 냉동실에 저장해둔 얼음덩어리를 녹인 것
돌멩이 같은 밥이다
밥을 먹다가 울컥 바닥에 주저앉아 시를 써 내려간다
이 밥은 그냥 밥이 아니다 전투식량이다
전쟁터로 나가기 직전 몸속 깊은 곳에 숨겨두는 비상 식량이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날을 더 견뎌야 하는가
쓰던 시 열여섯 번째 행에 이렇게 적는다
식사라는 이름의 밥상을 받는 아침은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가
물음과 물음으로 밥알과 섞인 몇 개의 단어들이
입속에 커다란 물집을 만든다
시간이 되었으므로 먹다 남은 밥을 다시 냉동실에 넣는다
얼음덩어리보다 더 차가운 언어를 불러모아
녹지 않는 빙하 세상 속으로 사내가 걸어 들어가고 있다
너무나도 좋은 시 인것 같네요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