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심이란? <불교철학에서 펀글>
이것과 저것이 다른 것임을 구별하는 것이다. 무엇이 다른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다만 자신의 착각이나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됐음을 알게도 된다. 만약에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히 잘못된 것을 버리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이 잘못이 되었음을 모르는 사람이 무조건 그러한 분별심을 버린다고 하여도 잘못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하나씩 버리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분별심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분별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분별심의 하나는 아닌가?. 마치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의 몸놀림은 의식적인 마음을 가지고 하나의 동작들이 이루어지지만 그러한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서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운동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고 운동을 하고자 하더라도 많은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도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유연하지 못할 것이고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더라도 잠시라도 쉬게 되면 또 다시 몸이 굳어지게 된다. 근기에 맞게 한다고 하는 것은 운동을 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운동경기를 많이 보아서 아 운동은 재미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일 것이고 그래서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좋은 자세와 나쁜 자세를 알아서 좋은 자세를 열심히 몸에 익히도록 하여야 할 것이고 운동을 많이 하여 잘하게 된 사람은 잠시라도 쉬게 되면 몸이 굳는다는 것을 알아 쉬지 않고 열심히 노력을 하여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분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제는 수행을 하여야 한다 하면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는 격이니 힘만 들뿐 무슨 좋은 결과가 나오겠는가? 보다 좋은 것들을 많이 보고 느껴서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나오게 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고 좋은 것과 나쁜 것들 옳은 것과 그른 것들을 알게 하여 나쁘고 그른 것은 버리고 좋고 옳은 것만을 지키도록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하는 것은 분별심이 없는 마음에서 보는 현상세계요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분별심을 가지고 보니 잘못된 생각을 버리는 것이고 ˝산은 역시 산이고 물은 역시 물이다˝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분별심을 버리고 보니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자유자재하게 본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원칙도 모르는 사람이 있고 원칙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고 원칙을 지키되 원칙에 얶매이지 않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자유자재하게 융통성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절에 가도 불교가 무엇인지 모르겠더니 절밥을 먹다 남은 것을 버렸는데 스님이 그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깨끗이 씻어서 맛있게 드시는 것을 보고는 아 저것이구나 하고 신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믿음과 신심과 발심은 인위적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고 어느 날 문득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면 마음에 와 닫는 것이 있을 때 생기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경전을 읽어도 그 뜻을 모르겠더니 어느 날 다시 보니 그 말이 마음에 절실하게 와 닫게 되었다고도 한다. 경전을 천번 만번 읽는 것보다도 그 한번의 절실한 느낌이 더 소중한 것은 아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