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90년대 초중반 통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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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분들은 아마 이것이 뭔지조차 모르시는분들도 있을것이다.
요즘도 삐삐를 사용하시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핸드폰에 밀린지 오래다.
삐삐의 기능은 집이나 공중전화를 통해 상대방의 삐삐번호를 누른후,
음성을 남길수도 있고, 또는 숫자로 8282...같은 의미를 남길수도 있었다.
지금의 핸드폰과는 달리 대화는 전혀 불가능한 단순한 호출기일 뿐이었다.
삐삐를 받은 상대방은 음성메세지를 가까운 공중전화나 집전화를 통해 확인할수있었다.
이 메세지를 받게되면, 삐삐가 진동으로 울리거나, 삐리리~~하면서 소리나었는데,
그당시 삐삐를 가진 사람이 몇 안되서 , 자랑하려고 벨트옆에 차고 다니거나,
엉덩이쪽 벨트에 꽂고 다니는게 멋이었고, 유행이었다.
거기에 은색으로된 15cm가량의 쇠사슬 고리를 쭈욱 늘어뜨리면 그야말로 환상적....^^
그당시 삐삐의 대표번호는 012 또는 015 로 시작되었다... 012-000-0000 이런식으로....
그렇다면, 그당시 숫자로 어떤문자를 보낼수있었을까?
010 ㅡㅡ> 응 ! (숫자를 옆으로보면 응 이라는 한글로보인다)
82 ....... 045 ( 빨리 빵사와~ )
075~90 (공치러가자~~당구치러가자 Go go~!!)
505 ㅡㅡ> ( S.O.S ~~~ 도와줘...)
이외에도 수많은 숫자암호들이 존재했었다.
어찌보면 다소 불편한 통신수단이었지만, 그당시 삐삐의 추억은 절대로 잊을수가 없다.
국기하강식/ 국기에대한 경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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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90년대 이후 출생하신 요즘분들은 이광경이 몹시 신기할수도 있겠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이후로, 국기하강식 국기에대한 경례제도를 폐지한걸로 안다.
1993년 이전까지 매일오후 5시만되면, 주위에서 온통 애국가가 울려퍼지면서
국기하강식이 이루어졌다. 이시간이 되면 거리를걷는 사람들이나,
운동하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동작을 멈추고, 태극기를 바라보며 경례를 해야했다.
이것을 어기는건 그사람의 양심에 맡길 일이었지만, 그당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누라도 이렇게 부동자세로 경례를 했었다.
1993년 이후로, 국민투표를 통한 최초의 군인출신이 아닌 정치인출신의
김영삼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독재국가에서나 할것같은 이런제도를 없애버렸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추억거리중에 하나가 되었다.
학창시절 추억의 채변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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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채변봉투.....(일명 똥 봉투)
요즘에는 생활환경이 개선되었고, 너도나도 위생에 신경쓰다보니 더이상 학교에서
채변봉투를 걷지 않는다고한다. 1년에 2번정도 실시를 했던것같은데,
국가에서 학교에 지시하여, 모든학생들의 기생충 관리를위해 변을 수거하여
검사하는 제도였다. 이거 정말 귀찮고 챙피했던 제도였다...^^
자... 생각만해도 지저분하고 식겁했던 채집과정을 떠올려보자...ㅋㅋ
가장먼저 채변봉투에 서기,년,월,일을 기록하고 몇반, 번호,이름등을 적는다.
집에서 신문지를 깔고 변을 본다. 내가 싸 놓은 변...안보려해도 볼수밖에 없다.
코를 막고 눈길을 피하며, 성냥이나 나무젓가락같은것을 이용해 콩알만큼 뜬다.
이후, 채변봉투안에 들어있는 비닐봉투를 열고 그안에 수거한 똥을 담는다.
이후, 비닐봉투에 대고 성냥불로 살짝 지져서 비닐봉투를 밀봉한다.
다시 , 그 비닐봉투를 위에보이는 하얀 봉투에 넣고 , 책가방속에 넣는다...
다음날, 학교에 가기전까지 채변봉투는 내 책가방속에 고이 간직되어있다.
그리고, 아침에 어머니는 도시락을 책가방속에 넣어주신다. ㅠㅠ
아마 , 이날만큼은 모두들 식욕이 떨어졌으리라 추측해본다.
집에서 변을 못본 학생들은 학교에와서 변을 채집하기도했는데, 일부학생들은
채변하는게 싫어서, 친구똥을 빌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어떤 학생들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똥을 넣어오기도..........사실 , 선생님도 이사실은 전혀알수없기에
일단 넘어가게된다.한달후 결과발표지를 들고 선생님께서 발표를 하신다.
"34번 홍길동...너...채변봉투에 뭘 넣은거야? 개똥넣은거냐?
왜..결과발표지에 사람똥이 아니라고 나와있어..이놈아...앞으로 나와... 손바닥 대..."
그리고, 이어지는 발표...."김개똥, 홍길자, 성춘향, 이방자, 너희들 축하한다."
국가에서 약 선물 해주신단다"...약 잘챙겨먹고, 몸속에 애완동물 키우지 말그라잉~~"
이렇게...채변봉투 걷는날은 끝이 나게된다...
학창시절....채변봉투 수거날, 신체검사날, 불주사 맞던날.....왜그렇게 싫던지...
국민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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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국민체조 시간을 기억하시는지.....
매주월요일 아침 조회시간이 끝나면 실시됐었고, 중학교때는 2교시가 끝나면,
국민체조 시간을 가졌었다. 지금은 국민체조를 안하는것 같더라...
국민체조는 1973년 박정희정권때 전국민의 체력향상을 위해 12가지
체조를 만들었다고한다. 그리고, 국민체조하면, 뭐니뭐니해도 구령을 넣으시던
그분의 목소리가 아닐까....국민체조 시작~~ 하나,둘,셋~넷~~ 등배운동~~하나,둘~~
개인적으로 노를 젓는듯한 그 순서가 가장 재밌고 좋았었다.(온몸운동이었던가...)
지금은 국민체조 순서도 가무가물할정도로 기억이 잘안나지만,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아닐수없다.
학창시절 교련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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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교련시간 기억나시는지...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련과목을 필수과목에서 없어버렸다고한다.
요즘분들은 아마 교련이라는 단어자체가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교련이란것은 1993년 이전까지 고등학교의 정규 교과과목이었다.
교련시간에 뭘 하냐면, 남학생들은 군사훈련, 여학생들은 응급처치법 같은 걸 배웠다.
우리나라가 분단국가이다보니, 고등학생들부터 총쏘는 법이라던지,
군인들의 제식훈련, 응급처치법 같은걸 어느정도 가르치는 것이었다.
당시 교련선생님들은 군대를 퇴역한 장교또는 부사관 출신들이었다고..
(교련 선생님들은 정말 무서웠었다....ㅠㅠ)
아마, 교련과목 배워보신분들이라면 이과목이 얼마나 싫었는지 다들 공감하실것이다.
난, 교련시간만 되면, 배아프다고 양호실에 가곤했다.
교련시간에는 군인이 되는시간이기에, 그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총을 겨누고,
입으로 "탕탕탕" 소리를 내기도하고, 운동장을 기어다니기도...
그리고 , 정말 싫었던 제식훈련....4열종대로 모여~~~ 5열횡대로 모여...
뒤로돌아 갔....발바꿔 갔~~~뭐가뭔지...항상 어리버리 했던것같다.
세월이 흐르면 추억이라지만, 지금도 교련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곤로 (80년대의 가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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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곤로....이제는 시골에서조차 볼수없는 골동품이 되어버렸다.
요즘분들은 곤로라는 이름조차 처음들어보는 분들도 있을것같다.
80년대 중후반까지 곤로가 쓰였던걸로 기억된다.
가스렌지의 등장으로 이젠퇴물이 되었지만, 그당시 곤로는
대한민국 가정의 음식을 만들어주는 소중한 주방용품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시절 이 곤로로 라면을 끓여먹었던 기억이 난다.
사용법을 알아보자.... 가스렌지는 벨브열고 ,스위치면 돌리면 불이 켜지지만,
곤로는 정말 수동적인 기계였다. 곤로는 가스가 아닌, 석유로 불을 만든다.
일단 , 가장먼저 할일은 가장밑에 손잡이를 저위치로 옮긴다.
이후, 가운데 보이는 용추철같은것을 들어올리면, 심지같은것이 나온다.
거기에 성냥불를 갖다대면 불이 덩궈진다. 불이 덩궈지는게 확인되면 다시 덮고,
밑에 손잡이를 좌우로 움직여 불의 높이를 맞춰준다.
뭐..석유냄새가 많이 나서 그렇지, 불의 화력도 좋고, 생각보다 사용법이 어렵진않다.
이젠 추억속에서나 찾아볼수있는 사라진것이 되고말았다.
수동 바리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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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머리를 깎는 기계이다. 지금은 충전을 해서 모터로 돌아가는 바리깡이
자리를 채우고있지만, 이 수동바리깡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도 쓰이던 제품이었다.
사용법은 매우 간단하다. 한손에 잡고 손잡이를 꾸욱 눌러주면 머리가 잘린다.
90년대중반이전까지 군대를 갖다오신분들이라면
이 바라깡에 머리를 맡겨본적이 있을것이다.
느낌?.......머리가 뽑힐듯이 아프다...^^
이젠, 추억속에서나 볼수있는 제품이 되어버렸다.
레코드판 / 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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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의 등장과 함께 퇴물이 되어버린 레코드판(LP) 과 테이프.........
80년대 말~90년대 초까지만해도 테이프와 레코드판은
음악시장의 대표적인 저장형태였다. 그당시 레코드판 한장의 가격은 대략 5~6천원선...
정품 테이프는 3천원가량이었다. 그당시엔 오디오의 형태도
일명 전축이라불리는 세탁기만한 크기의 하이파이오디오들이 인기였다.
레코드판으로 들을땐 지직 거리면서도 웅장한 음이 참 듣기좋았던것같다.
요즘의 CD는 음이 너무 맑아서 오히려 거부감이 들곤한다.
그리고 ,테이프얘기를 할때 빼놓을수없는것이 바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녹음하던 광경이다. 그당시엔 라디오가 대단한 인기였다...요즘 TV 시청률로 따지자면
시청률 30%가 되는 라디오프로가 많았을정도였으니까...
그런 라디오프로를 들으며,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버튼을 눌렀었다.
공테이프가 없으면, 부모님들이 사놓은 뽕짝 테이프를 몰래 가져와서 녹음해버리기도...^^
녹음할때면, 노래중간에 멘트를 날리시는 짖굿은 DJ분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분이 2시의 데이트를 진행하셨던, 김기덕씨...
아마..다들 공감하실듯...^^
이젠, 테이프나 레코드판도 추억속으로 사라져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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