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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박물관 | |||||||||||||||||
일본지에실린 한국 연예인,여대생 포르노(1985년) 니혼징 | 2012.01.05 | 조회 52,594 | 추천 143 댓글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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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이따금 국내 에로배우 등 일부 연예인들이 일본 포르노 비디오에 출연했다는 등의 소식이 스포츠신문에 실리곤 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만도 여배우 J양 등등이 그런 기사들의 주어로 등장하곤 했지요. J양의 경우 일본에서 ‘미스 코리아의 섹스 비디오’라는 걸 촬영했다지요. 일본 사람들이 심심찮게 한국 등 동남아 각국의 여성들을 상품으로 만들어 유통시키는 건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종이 매체가 비디오, 인터넷 매체로 바뀐 정도의 차이랄까요.
1985년 1월 20일자 한국일보에는 <일지日誌 선정 화보 파문-한국 연예인에 여대생 특집>이라는 제목의, 국내 톱클래스 여자 연예인들의 속옷 차림 모습과 여대생들의 프라이버시까지를 악랄하달 수 있는 수법으로 소개한 일본의 외설 대중잡지 <헤이본 펀치> 지의 파문이 커지고 있다.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영화인협회 등 관련 단체들이 자체 진상조사에 나서고 있으며 여대생 문제에 대해서는 문교부에서 우선 학생 여부부터 가린 후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일반 시민들도 “연예인들의 민망한 모습을 컬러 화보에 담은 것은 모른 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여대생 3명의 이름, 학교명, 학년까지 밝혀가며 얼굴 사진과 침실, 내의, 화장실까지 염치없이 소개한 것은 일본 사람들에게는 생활화돼 있는 외설풍속인지 모르나 우리 사회에선 국민감정에까지 치닫는 불쾌감 밖에 없다”고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일부 지식층들은 “일본의 3류 저속잡지를 상대로 해 우리 사회가 너무 흥분할 필요는 없다. 냉정하게 그 잡지의 취재에 응해준 경위 등을 알아본 후 차분하게 뒤처리를 했으면 한다”고 자제론을 펴기도 했다. 네, 이게 사건의 진상입니다. 일반 시민의 반응에는 아마 반일감정도 섞여 있었을 겁니다. 국내 톱클래스 여자 연예인들이 누구인지 궁금하시지요? 바로 뒷부분에 명단이 나옵니다. 문제의 잡지는 1월 14, 21일자 합병 특대호로 2백 페이지 거의 전면을 한국 특집으로 꾸몄다. 특히 오수비 양은 상체의 치부가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대담한 포즈이며 다른 모델들도 선정적인 속옷 차림과 포즈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 실린 연예인 중 금보라 양 등 5명의 모습에는 “부끄러워요” “저는 어때요” “한번 더” “사랑해” “좋아요” 등 선정적인 말들이 일본 글자로 적혀 있으며 김청도 양의 페이지에는 “여러분이 일본으로 돌아가신 후 마음이 대단히 허전했습니다. 사진은 예쁘게 나왔는지요. 멋진 잡지가 되었는지요. 다시 한국에 오실 기회가 있으면 기쁘겠습니다”는 한글 사연과 자필 사인도 소개됐다. 지금도 맹활약중인 연예인들의 이름이 적지 않지요? 오, 신문의 이 무서운 기록성! 시민들은 일본 잡지의 특집에 대해 “학생 등장시킨 건 몰염치한 짓”이라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일본 잡지의 취재진은 이태원의 디스코 클럽에서 한국 여대생들을 만났대요. 자, 이제 이 부분 각론입니다. 모 남녀 공학대학 2년이라는 김모 양(20)의 난에는 침실과 화장대 바구니에 담은 여러 개의 팬티 사진까지 게재하고 “히프와 긴 다리가 자랑인 가계家系”라는 이양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 다음 페이지는 모 여대 다니는 최모 양(21)… 00대 안모 양(19)의 …아파트에서 침대와 책상과 옷장과 화장실 내부까지 소개했다[“…” 부분은 신문이 삭아 보이지 않는군요;저자]. 다른 페이지에는 신촌 일대에서 잡은 6명의 여대생 스냅 사진과 1명의 직장 여성 사진이 소개되고 일본의 여대생 거리인 다께시다 거리보다 수준이 높다고 쓰고 있다. 또 다른 페이지에는 최효숙, 이승미라는 유흥가 여성과 함께 취재진이 용평 스키장과 울진의 덕구 온천까지 동행하는 르포를 컬러 및 흑백사진과 함께 소개했는데, 이 기사에서도 “팬티가 몇 개냐” “처녀인지 아닌지 물어도 좋은가” 등 선정적인 질문이 섞여 있다. 이 잡지는 한국의 가라오케 산업을 초동경적超東京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후략) 이후 매춘 여대생은 80년대 후반 거품경제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는데, 거품이 터져버리면서 일본 풍속업계는 여대생 대신 여고생, 심지어 여중생을 그 자리에 끌어들였습니다.
참으로 ‘평범치 못한’ <헤이본平凡 펀치>라는 1985년도의 잡지기사를 보면서 당시의 일본 풍속산업을 상상해봅니다. 당시 일본 풍속산업 업자들은 여대생 유행이 끝나갈 조짐을 보이지 않자 자국의 여고생과 이국의 젊은 여성들을 끌어들이지 않았나 싶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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