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몸 길상호 감자를 깎다 보면 칼이 비켜가는 음푹한 웅덩이와 만난다 그곳이 감자가 세상을 만난 흔적이다 그 홈에 몸 맞췄을 돌멩이의 기억을 감자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벼랑의 억센 뿌리들처럼 마음 단단히 먹으면 돌 하나 깨부수는 것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뜨거운 하지(夏至)의 태양에 잎 시들면서도 작은 돌 하나도 생명이라는 뿌리의 그 마음 마르지 않았다 세상 어떤 자리도 빌려서 살아가는 것일 뿐 자신의 소유는 없다는 것을 감자의 몸은 어두운 땅 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웅덩이 속에 씨눈이 하나 옹글게 맺혀 있다 다시 세상에 탯줄 댈 씨눈이 옛 기억을 간직한 배곱처럼 불거져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독을 가득 품은 것들이라고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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