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에게 글쓰기란 펜을 들고 쓱쓱 끼적이거나, 키보드를 톡톡 두들기면 되는 간단하기 그지없는 일일 것입니다. 글을 쓰다 고치는 일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눈 깜박임이 유일한 의사 표현 수단인 정태규 작가에겐 매 순간 혼신을 다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입니다. 놀랍게도 그는 정말 눈을 깜박여서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고 한 글자, 한 문장을 완성해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매일매일 조금씩 나빠지는 병. 병세를 늦추는 것이 가장최선인 병.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관망할 수밖에 없는 병…. 그래서 가장 잔인한 병으로 불리는 것이 루게릭병입니다. 병을 앓기 전 저자는 부산의 여러 고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했으며, 소설가로서 꽤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여준 작가입니다.
평소와 다름없던 2011년의 어느 가을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중 그는 처음으로 이상 증세를 느꼈습니다. 손가락에 힘이 없어 와이셔츠 단추를 채우지 못한 것입니다. 그 후로 점점 팔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가벼운 물건조차 들지 못하고, 길을 걷다가도 맥없이 푹 쓰러지는 일들을 겪었습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증상들의 원인을 찾아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1년여 만에 루게릭병임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가혹한 운명의 신을 저주하며 혼돈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새로운 삶의 질서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손을 쓸 수 없게 되자 구술을 해서라도 자신에게 구원과도 같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는 전신이 마비되어 먹지도, 말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호흡기를 달고 숨을 쉽니다. 두 눈을 깜박이는 것 말고는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깜박일 수 있는 두 눈으로 ‘안구 마우스’라는 장치에 의지해 글을 쓰고 세상과 소통하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은 생의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가 안구 마우스로 힘겹게 써내려간 감동적인 생의 기록이자 작가로서 그의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