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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토크
잔혹연애사(1)
서로 | 2011.08.23 | 조회 9,537 | 추천 11 댓글 0


언니. 위에도 말했지만 난 지랄맞은 승질머리를 가지고 있어.

지랄이 욕인건 아는데...

내 짧은 어휘력으로는 내 성깔에 이보다 적합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었거든..

ㅜㅡㅜ

 

오늘만큼은 욕이 아니라 내 성질을 칭하는 대명사라고 봐주면 안될까...??

 

나는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본디 숭한 성질머리도 통제가 가능한 인격체가 되었다고 믿고 있었어.

 

 이 친구(이하 체육인)를 통해

사회화라는 얇은 껍질 안에 내안의 지랄이고대로 살아숨쉬고 있음을 알게 되고,

사회화니, 통제가능이니 따위는 꼬꼬마적의 자만으로 밝혀지고 말았지만.

 

 

체육인은 내가 20대 중반 무렵에 만났던 남자야.

 

내가 호감을 갖고 있던 우쭈남이 나를 간보며 혼란스럽게 하고 있을 때,

체육인은 지극정성으로 나를 대해줬어.

내가 슝하게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려도,

이쁘다~ 이쁘다~”해주길래,

 

'이렇게 날 많이 아껴주고 이해심이 많은 남자면

사귀면서 점점 더 좋아지겠지..' 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사귀게 되었지 뭐야.

 

하지만 체육인 역시 숭악한 내 성격을 보면서도

그건 일시적인 것이라고 가벼이 넘겼고,

착하게 보이는 내 얼굴

진짜의 나로 믿는 안일함이 있었더라구.

 

그치. 그 역시 함정에 빠진거지.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지랄맞은 성격

착하다 못해 만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을 가졌어.

 

어느 정도로 만만해 보이냐면

난 어딜가든 "도를 아십니까?" "굿하세요."의 단골 먹잇감이야.

코엑스에서도, 대학로에서도,

심지어 우리 집 앞 지하철 역에서도 그 분들이 나를 노릴만큼.

 

나는... 좀 모자라지만 착한 동네언니의 페이스를 가졌어.

 

내 겉모습에 속은 체육인도

나를 착하게 보았는지 자꾸 내 승질을 건드리지 뭐야.

 

에이 씡.


나는 내 안의 지랄이를 감출 수 있을 줄 알았는데. ㅜㅜ

 

 

 

Chapter 1



우리가 사귄 지 얼마 안됐을 때의 일이야
.

 

내가 선물로 그에게 티셔츠를 하나 선물 하기로 하고

동대문 두타에 가서 1시간 가까이를 쇼핑했어.

 

그에게 이뻐 보이려고 하이힐을 신고 1시간을 두타를 휘젓고 다닌거지.

 

하이힐에 한시간 동안 발을 묶어놨으니

발이 욱씬거리기 시작 했지만, 그 정도는 참을만 했었어.

 

그런데 이 체육인이 근처에 청계천이 있다며 그 곳에 가자고 하더라.

그 때는 막 청계천 공사가 막 끝마치고 새로 개장(?)하고 그랬을 때 였었거든.

 

가깝다길래 따라갔어.

두타에서 청계천까지는 정말 가깝더라.

 

체육인이 또 제안을 해.

광화문까지 걸어보자!”

광화문에서 청계천이 끝나는데 거기가 이쁘다면서.

 

여기도 아기자기 어여쁜데 거긴 더 이쁘단 말야?!


꺄아~보고시 퍼!”

 

난 한심한 공간지각능력을 갖고 사는 처지라,

"얼마 안 걸린다."는 그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어.

 

그리고 걸어.

 

 

걸어.

 

 

또 걸었어.

 

 

계속 걷는데 광화문이 안나와.

눈에 청계천이고 뭐고 안 들어온 지도 좀 됐어.

그가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지도 않고

여기서 지금 당장 앉아서 쉬지 않으면 발바닥이 가루가 될 거 같다!’

는 생각만 메아리쳐.

 

 

그래서 도저히 더는 못 걷겠다고 GG를 외쳤지.

벤치에 앉아서 좀 쉬는데 체육인이 이렇게 말했어.

 

"얼마나 걸었다고 벌써 아프다고 못 걸으면 어떻게 해?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넌 못걷겠다 할 정도인 건

너의 체력이 바닥이라 그런 것이다.

내가 네 체력증강을 위해 운동을 좀 시켜야겠다."

 

 

발 아픈거 괜찮아? 많이 아파?”도 아니고,

내 저질체력에 대한 걱정이야.



이건 걱정의 방향이 틀렸잖아
!!

 

심지어 난 초등학교시절 오래달리기 선수생활로

잘 다져진 근육질의 두 무다리를 가진 여자라고.

 

 

"저질 체력 아냐. 하이힐이 원래 발이 잘 아파.

아까부터 거의 두시간 걸었잖아.


 

힐신고 이 정도면 많이 걸은거야."

 

그는 남친과 나잡아봐~~~라 놀이를 하는 저 쪽의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어.

 

"그럼 저 여자들은 어떻게 저렇게 잘 걸어?

저 여자는 뜀박질도 하는데??"

 

"그 여자는 계속 뛰었던 게 아니겠지.

하이힐 신어보면 얼마나 아픈데..

저 여자들도 한 시간 이상 걸으면 아파할거야.

아픈데 이제 그만해. 진짜 아프단 말이야."

 

"! 티비에서도 걸그룹들은 하이힐 신고 춤도 잘만 추더라."

 

 

 

Shit!! 그만하라고!!!

 




"나 지금 아프다고!!

꼭 지금 아파주겠다는 마당에 진실여부를 판단해야겠어?

내가 지금 너랑 말씨름할정도로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고."

 

그래도 그는 한번도 신어보지도 않은 하이힐

TV속 걸그룹의 착장장면으로 미루어보아,

아픈 물건일리 없다며 내 체력이 저질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어.

하이힐이나 운동화나 신발이니까 똑같다.

 

젠장. 군대 안 가본 여자가


군대는 2년짜리 캠프, 보이스카웃이랑 비슷한 거라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달라.

 

약이 바짝 오른 나(가 아니지, 지랄이는 좀전에 Shit을 외치며 출현)는 제안을 해.

 

네가 하이힐 신고 내가 오늘 걸은만큼 걸어보고도

안 아프다고 하면 내 체력이 저질임을 인정하고

네가 시키는대로 운동을 다 하겠다.

대신 네가 못 걸으면 다시는 내 체력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

 

그는 체육인에게 [그깟제안]을 하는 나를 보며 어리석다 혀를 차며

승부욕에 불타올라서 정말 세세한 사항까지 다 정했어.

 

 

시간계산해서 몇 분 동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걷고.

언제 내기할 것인지.

만약 본인이 성공했을 시의 조건도 다시한번 확인하고 말야.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이쯤되니

내 속의 지랄이도 마음놓고 을 내네.

그렇다고 지랄이가 막무가내는 아냐.

그와 지랄이는 조건에 합의했어.

 

하이힐은 처음 신으면 길이 안들어서 불편하니

공평하게 거리를 반으로 줄이겠다.

두타에서 동대문쪽 청계천(종로6가부근)까지 걸은 거리는 포함시키지 않고

종로6가근처에서 광화문을 향해 걸어라.

대신 앉아서 쉬는 건 안된다.

나는 공평하게 운동화를 신겠다.

 

그리고 다음주.

 

나는 그보다 1시간 일찍와서 두타를 샅샅이 뒤진 끝에

그의 발 사이즈에 맞는 샌들을 어렵게 찾아서 구입..

 

그리고 우린 청계천에 가서 실험을 시작했지.

 

그가 하이힐을 신었어.

사람들이 (당연히) 쳐다봐.

부끄럽긴 한데 저 사람들은 오늘 보면 다신 안 볼 사람들이고

얜 앞으로도 볼 사람이잖아.

 

볼 때마다 저질체력이니 뭐니.

딴 여자는 이러니저러니, 걸그룹은 춤만 잘 춘다느니,




 

이런 모지리 취급받고 싶지 않았거든.

잠깐만 저 사람들의 시선을 참으면

난 이 인간 앞에서 정상체력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거잖아.

 

그가 하이힐을 신고 내가 운동화를 신으니,

그렇지 않아도 키 차이가나는데 지금은 아라곤과 프로도.

 




 


 

 

 

 

이제 막 하이힐에 올라간, 아직은 여유가 있는 그가 비웃고 있어.

 

괜찮아.

 

30분 내에 매우 후회할테니까.








그 때 내가 비웃어주마.

음하하하하하하핫
!!

 

 

 

10분 후.

 

그가 이상해.

얼굴로 울고 있어.

 

"그만할래? 너 아파보여. 그러다 다쳐."

 

그는 체육인에겐 이런 것쯤은 이라고 대답했어.

 

 

15분 후.

 

하이힐 신어본 자매들은 다 알잖아?

일단 발이 아파오기 시작하면 5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그는 진짜 보기 안쓰러울 정도였어..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며 하이힐을 벗지는 않았어.

체육인의 긍지를 보여주겠다며.

 

 

25분 후.

 

 

 

포기.

 

 

 

우린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어.

 

난... 실의에 빠진 그에게서 하이힐을 벗겨주고

발이 까진 데에는 준비해간 소독약과 연고를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었지.

 

사실 그가 걸은 거리는

그 전주에 내가 걸은 거리의 절반미만이었지만,

 

하이힐을 처음 신어본 그였기에,

난 그가 이만큼이라도 걸은 게 존경스럽기도 했고,

굳이 상처받은 체육인의 긍지를 더 할퀼 마음은 없었거든...

 

우린 꽤 쉬었다가 택시를 타고 귀가.

 

그는 나에게 다시는 체력을 운운하지 않았고

나 역시 이 날의 일을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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