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이기철-
누군가는 떨어지는 꽃잎에도 가슴을 다쳤다고 하지만
투명하고 아름다운 죄가 있다면 나도 풋순 같은 죄를 지어 보고 싶다
사람이 죽는 날까지 사랑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친 사람이 내겐 없어
무명베 같은 마음 씻어 놓고 섬돌 아래 분꽃 심는다
나는 죄지은 사람을 만나진 못했지만 죄지은 사람의 등도 따뜻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대가 이른 길이, 일생이 무죄여서 그대에게도 통증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대를 사용하는 나는 무통보다 통증이 반가워서
묻는다 이불이여 천부적인 더움이여
나는 언제 그대처럼 가장 낮은 곳에 반듯이 누워 주저 없이 추운 몸을 받을 수 있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