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 해마다 2월 말이면 둘이서 여행을 했다. 방과후학교도 끝난 시기라 심심해 하는 아이에게 엄마표 ‘일정’을 만들어주기 위해 연차휴가를 모아 쓰기로 한 게 해를 거듭하며 이어졌다. 처음엔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고육지책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여행 지역이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넓어졌고, 간단한 음식 주문에 머물던 아이의 역할이 낯선 나라에서 스스로 길 찾는 데까지 확대됐다.
올 2월에는 이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 올해는 어디로 떠날까 여행지를 물색하다 1월 중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중국 국경을 넘어 확산되기 시작하는 걸 보고 심상치 않다는 짐작에 예약을 포기했다. 아니나다를까, 코로나19는 불과 약 3개월만에 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여행을 포기한 아쉬움은 금세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겨울 여행을 포기한 집은 우리 말고도 많을 터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세계 각국이 속속 여행을 금지하면서 수많은 항공기가 날지 못한 채 주기장에 세워져 있다. 기차도 버스도 승객이 급감했고, 지하철마저 운행시간을 단축했다. 이동 제한에 따른 교통량 감소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인간의 활동을 강제로 멈춰 세웠다. 그랬더니 예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그간 인간의 활동으로 몸살을 앓던 지구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먼저 공기가 깨끗해졌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이 위성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 2월 중국의 대기 중 이산화질소 농도는 지난해와 비교해 10~30% 줄었다. 이산화질소는 공장이나 자동차 등이 화석연료를 소비하면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이다. 3월에는 이탈리아와 영국, 스페인, 독일에서도 이산화질소 농도가 낮아졌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 발병 증가에 따른 사람들의 이동 제한, 공장 가동 중단 등으로 화석연료 소비가 줄어든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3%를 차지한다는 항공기의 운항 중단이 대기 질 향상에 적잖이 기여했을 것이란 예상이다.
국내 미세먼지도 주춤해졌다. 환경부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올 3월까지 전국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7% 감소했다. 산업 각 부문에서 미세먼지 발생량을 줄인 정책 효과, 중국의 경제 활동이 코로나19 때문에 둔화된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미세먼지 감소는 인도에서도 나타났다. 코로나19로 국가 봉쇄령이 내려지자 뿌연 하늘에 가려져 있던 히말라야산맥이 현지에서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인류의 불가피한 ‘잠시 멈춤’이 동식물들에게는 살기 좋은 환경을 되돌려줬을지도 모른다. 애꿎은 새들이 항공기에 부딪혀 목숨을 잃는 일이 줄었을 테고, 바다를 휘젓고 다니는 거대한 크루즈선 때문에 해양생물들이 받던 스트레스 역시 감소했을 것이다. 관광객이 사라진 야생동물 서식지들은 오랜만에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선 도시가 봉쇄되자 수로에 물고기 떼가 돌아왔고, 출입이 통제된 브라질의 한 해변에선 멸종위기 바다거북의 알이 대규모로 부화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 발병이 급감하자 국내에선 사회적 거리두기가 느슨해지면서 여행 수요가 다시 늘고 있다. 외국서도 사람들의 활동이 속속 재개될 터다. 과학자들은 과거 금융위기 때를 떠올린다. 당시에도 인간 활동이 줄고 산업이 멈추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하는 등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났다. 그러나 위기가 지나간 뒤 각국이 경기부양책을 펴면서 온실가스는 되레 크게 늘었다. 결과적으로 금융위기가 환경오염 시계를 잠시 뒤로 돌려놓았을 뿐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는 동안 아파트 단지 한편에 분리수거를 위해 주민들이 수요일마다 내놓는 종이박스가 매주 아이 키만큼 쌓였다. 플라스틱, 스티로폼, 비닐 쓰레기 등도 평소 같으면 명절 전후에나 나왔을 법한 양이 두 달 넘게 배출되고 있다. 모두 코로나19 이후 지구가 감당해야 할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잠시 멈춘 환경오염 시계가 제 속도를 되찾지 못하도록 코로나19가 돌이켜준 지구의 본래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당분간 온라인 쇼핑도, 음식 배달 주문도 자제해야겠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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