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자유토크 | ||||||
개수작의 재구성 알뜰지기 | 2011.04.17 | 조회 6,500 | 추천 12 댓글 0 |
||||||
|
||||||
때는 2004년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대학교 4학년이었군요.
고시준비를 열심히 해보자 결심하고 있던 저는
과감히 휴학을 하고 학교 도서관 죽순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 안에 '고시반' 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요.
고시반은 공무원시험, 고시, 회계사, 변리사시험등
각종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지정된 자리와 사물함을 제공하고
지도 교수님이 가끔 밥도 사주시고, 같이 스터디도 하고, 정보도 교환하고,
내부 규율도 있어 매일 일정 시간씩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하므로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되고 이래저래 참 좋다고 했어요.
더 이상 도서관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고,
옆에서 손잡고 희희덕거리는 도서관에 놀러온 커플들의 방해를 받지 않아도 되고,
맘 놓고 추리닝에 안경, 맨 얼굴로 다닐 수 있다기에
전 '입실'을 결심하고 '입실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고시반에도 여러 종류와 레벨이 있었는데,
제가 들어간 곳은 우리 학교 안에서 가장 규모도 작고 합격률도 저조한 곳이었습니다.
일단 '입실시험'에 합격해야 했으니 가장 허술한 그곳을 공략했던거죠.
큰 기대를 안고 고시반에 들어가보니 인원은 달랑 10여명 정도.
저보다 5학번 높으신 선배가 실장이었고,
저랑 학번이 같은 몽실이 닮은 여자애 1명, 2학번 위 선배 언니 1명 빼고는
죄다 20대 후반의 남학생들이었습니다.
실장오빠가 매일 출석체크를 했지만,
다들 강의 핑계, 학원 핑계로 잘 안나오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2~3명 정도
그나마 실장오빠와 몽실이는 매일매일 휴게실에서 부모님이 동영상 강의 들으라고 큰맘 먹고 사주셨을 놋북으로 '카트라이더' 랩업삼매경.
그 고시반 합격률이 왜 그렇게 저조한지 입실 3일만에 간파하고,
저는 있는 듯 없는 듯 제 공부에만 전념했습니다.
그 고시반엔 그나마 멀쩡해보이는 고참이 한분 계셨는데,
저보다 무려 '6학번'위 게다가 삼수를 하셨다나 어쨌다나 해서
무려 30대의 나이에 오래된 고시 경력을 자랑하시는 분이였습니다.
실장이 있긴 했지만, 그 고참선배가 실질적인 대빵인거 같았고..
실장오빠는 그 오빠 꼬붕정도?
그 고참선배는 음지에서 고시공부를 오래해서인지
뱀파이어 저리가라 싶은 핏기없이 하얀 얼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고참선배는 게임만 하는 실장오빠와 몽실이를 꾸짖기도 하고,
잦은 결석을 하는 후배들은 다독거려 주기도 하고,
책상에 튀어 나온 못이 있으면 조용히 망치를 가져다가 고치기도 하고,
뭐... 점잖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싶었어요.
But, 정작 자기는 언제 공부를 하는지 잘 모르겠는 그런 분이였습니다.
어쨌든 전 그 고시반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책상외에 모든 것에 신경을 차단하고 공부만 했습니다.
그렇게 3~4달이 지나고.. 2차시험까지 끝난 초여름 어느날.
지도교수님께서 시험보느라 수고했다며,
1차시험도 합격 못한 학생들까지 싹 다 불러서 무려 '회'를 사주셨습니다.
3달 가까이 고시반 생활을 했는데도 입실 환영식 이후로
그들과 함께 뭔가를 먹는 것이 처음이였을 정도로
저는 그들과 소원하게 지냈었더군요.
그 날 저는 셋밖에 안되는 2차생 중 한명이었고,
그 자리에선 뉴페이스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집은 어디냐?”
“학교에서 지하철로 2정거장”
“누구랑 사냐?”
“남동생이랑 둘이 살았는데, 얼마전에 군대가서 혼자 산다.”
“남자친구는 있냐?”
“있는데, 그도 역시 군대 갔다.”
등등등 저에 대해 많은 걸 궁금해 하더군요.
다들 화기애애 기분 좋게 술 마시고 있는데,
밖으로 잠깐 전화 받으러 나갔던 그 서른넘은 고참선배가 들어오더니
갑자기 자기 잔에 쏘주를 쏟아 입에 털어넣는 터프한 행위를 연거푸 3번씩이나 해댑니다.
무려 교수님 바로 앞자리에서 말이죠.
“자네 왜 이러나?” 교수님이 말리십니다.
그러자 옆에서 실장오빠가 쫑알쫑알 대답을 합니다.
“이 형의 여자친구가 무려 대기업에 다니는 직딩인데, 오늘 생일이었다.
근데 이형이 2차시험도 끝난 이 마당에 여자친구인 자기 안 만나러오고
이 술자리에서 이러고 있어서 전화로 한판 한 거 같다.”
그런날 왜 이 자리에 굳이 붙어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가운데,
여튼 속상하다며 고참선배는 술을 엄청 마셨고,
자기들 신세가 처량하다며 실장오빠 외 다른 언니, 오빠들도 술을 엄청 마셨고,
자기들만 마시기 싫다며 저와 몽실이에게도 엄청 먹였습니다.
우리 고시반은 교수님이 안계시면 누가 나서서 2차를 쏠 능력이 안되기 때문에
(왜? 다 돈없고 능력없는 고시생이니깐요!)
1차였던 그 자리에서 엄~~청 먹고 다들 취해버렸죠.
그래도 아쉬웠는지 남학생들은 실장오빠네로 2차를 간다고 했어요.
그리고 택시 2대를 잡아
차 한대는 남자들끼리 타고 모두 실장오빠네 집으로 출발.
나머지 한대에는 각자 귀가하려는 저, 몽실이, 선배언니 이렇게 여자셋과
책임감 있(어 보이)는 그 고참선배가 탔습니다.
선배언니 내리고, 몽실이 내리고,
저도 무사히 내리고, 고참선배는 실장오빠네 집으로 고고씽..
무사히 집에 온 저는
'아 고시반 사람들도 친절하고 좋은데 내가 너무 담을 쌓고 지냈구나,
차가운 년 내가 나빴어!’반성하며 깊은 잠에 듭니다
였어야 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옵니다.
늦은밤이라 무서워서 안 받습니다.
계속 옵니다.
무슨 중요한 일인가 싶어 받아봅니다.
“어 00이니? 나 고참오빤데 집에 잘 들어갔니?”
아.. 전 고참오빠 전화번호도 몰랐었네요.
그 고시반에 전화번호 아는 사람이라곤,
제가 결석하게 되면 연락할 실장오빠 뿐이군요.
괜히 또 미안해집니다.
‘내가 너무 무심한 년이었어!!’ 정말로 반성합니다.
“네, 잘 들어왔어요. 오빠도 잘 들어가셨죠?”
“어 그래. 난 실장네 갈려고 하는데 아직 도착 못했네..”
‘아 실장오빠네 집이 우리집에서 엄청 먼가 보네..’
“네~ 조심히 가세요!”
역시 최고참이라 그런지 참 책임감있는 분이십니다.
다시 한번 개인주의 내 자신이 미워집니다.
잠이 설풋 들었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00아 난데!!!” 또 고참선배였어요.
“아.. 내가 택시에선 내렸는데, 실장네 집을 모르겠어. 너 실장네 집 아니?”
허.. 쫌 이상합니다.
자기 꼬붕집을 모른다?
모를 관계가 아닌거 같은데... --a
쩝.. 그래요.. 모를 수도 있단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이 고참선배 혀가 좀 꼬인 거 같습니다.
술이 취해서 잘 못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고참오빠! 제가 실장오빠네 집은 모르구요.
전화번호만 알아요. 전화 함 해보세요.”
“전화해봤지~ 근데 연락이 안돼서.
다른 애들한테 걸어봐도 다 전화를 안 받아. ㅜㅜ”
“아.. 어떡해요.”
“아.. 그러게.. 자는데 미안하다.. 자라. 어떻게 되겠지 모...”
전화는 끊었는데, 걱정이 됩니다.
초여름이긴 하지만.. 밤이라 공기도 차고 술도 엄청 취한 것 같았거든요.
전화 안 받는다고는 했지만...
혹시나 싶어 제가 실장오빠에게 전화를 해봅니다.
엥? 한번에 딱 받는데요?
“실장오빠! 고참선배가 오빠네 집을 모르겠다고 자꾸 전화와요.”'
“우엥? 그럴리가.. 일주일에 5일은 우리집에서 사는데?”
“아 그래요? 많이 취해서 그런 거 같아요. 전화 한번 해보세요.”
“그렇잖아도 안 오길래 전화해봤는데, 형이 전화를 안 받아.”
“네? 아니에요.. 방금 저랑 통화했어요. 다시 해보세요.”
“그래? 그럼 내가 통화해볼께. 걱정말고 자렴.”
연락이 돼서 참 다행입니다.
저는 고시반 사람들에게 뭐라도 하나 도움이 된 거 같아서 뿌듯했어요.
다시 코~~ 깊은 잠을 자려는데
또 전화가 옵니다.
“00아, 나 추워죽겠다.”
고참선배입니다.
시간을 보니 아까 전화통화 한 후로 한시간은 더 지난 거 같은데..
이 사람은 그 사이에 더 취한 거 같습니다.
“어디세요? 실장오빠가 전화 안했어요?”
“몰라 아무도 날 안 찾아. 내 곁엔 아무도 없어.”
“어? 이상하네? 오빠 전화 끊고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전 다시 실장오빠에게 전화합니다.
“실장오빠, 고참오빠랑 연락 안하셨어요?”
“아 전화를 계속 안 받아. 뭐 알아서 했겠지.”
“아녜요. 지금 추워죽겠다고 전화왔어요. 얼른 전화해보세요.”
“알았어. 넌 신경끄고 자렴.”
신경 끌래야 끌 수가 없습니다.
고참오빠는 또 전화해서 횡설수설,
실장오빠는 뭔 소리냐, 그 사람 연락안된다 횡설수설
저는 새벽에 한시간 넘게 이리로 저리로 전화만 해댔습니다.
둘 다 나랑은 연락이 너무너무 잘되는데,
둘이 서로는 연락이 안된답니다.
뭐 이런 그지발싸개같은 경우가..
이성적으로 이해되는 상황은 절대 아니였지만,
너무 졸립고 피곤해서 상황을 끝내고 싶어졌습니다.
내가 둘의 중간에서 연락을 담당하기로 합니다.
실장오빠에게 전화를 해서 집 위치를 물었습니다.
우리집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밖에 안되는 가까운 거리래요.
고참선배한테 전화를 해서,
택시를 타고 그 실장오빠네 집 근처 지하철 역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123역으로 가시면 된대요.”
“뭐? 321역? 그런 역도 있어?"
사오정도 이런 사오정이 없습니다.
답답해 미치고 팔짝 뛰겠습니다.
차라리 정신 멀쩡한 실장오빠가 고참오빠를 찾아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고참오빠의 위치를 묻습니다.
경찰서가 보인 댔다가, 한강 이랬다가 노래방 앞이랬다가...
계속 헛소리만 합니다.
이러다 내가 돌겠다 싶어서
“그럼 혹시 456역은 아세요? 우리집 있는 덴데..”
했더니, “그럼 알지~”
아.. 이 새키.. 촉이 아주 쎄- 합니다. 그래도 일단 해결을 해야겠기에 설명을 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456역 앞에서 내리세요.
4번 출구 앞에 서 있으면 데리러 갈께요.”
좋다고 금방 온답니다.
아까 123역은 죽어도 모르겠다더니
456역은 잘 찾아올 수 있답니다.
실장오빠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고참오빠가 죽어도 123역은 모른데서
우리집 앞으로 오랬으니 와서 데려가세요.”
실장오빠 또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얼른 자라고 해줍니다.
정말로 자려고 다시 누워봅니다.
화가 좀 나려고 하는데 참아봅니다.
그래요.. 술 취한 사람이니깐요.
고시생활하느라 오랜 세월 힘들었을 사람이니깐요.
그런데.. 또 전화가 옵니다.
“나 456역 앞인데 왜 안와?"
아.. 진짜 돌아버리겠습니다.
“실장오빠 안 왔어요? 기다려 보세요 글루 온댔어요.”
아.. 이 사람...
왜 자기를 버리냐며, 추워죽겠는데, 자기 곁엔 아무도 없고, 외롭고,
이게 모두 자기만 남겨 놓고 내려버린 여자 셋 니들 탓이며,
그 중에 니가 제일 나쁘고. 자기는 인제 혼자고 여기서 콱 죽어버리겠답니다.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