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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합동 금강산 세존봉 개척등반대
옹알이 | 2011.09.15 | 조회 11,878 | 추천 0 댓글 0







지난 6월 10~12일, (사)대한산악연맹 산악구조대원들과 북한의 명승지종합개발 지도국의 금강산 산악구급봉사대원들로 구성된 남북 금강산 암벽코스 개척 등반대가 합동으로 금강산 세존봉에 ‘평화의길’과 ‘통일의길’, 구룡대에 ‘대명길’ 루트를 개척했다. 남북의 산악인들이 한 팀을 이뤄 금강산에 암벽루트를 개척하기는 이번이 최초다. 특히 세존봉 코스는 광복 후 개척된 루트 중 남북 통틀어 최대 규모다.


세존봉 동북릉의 한 수직벽을 오르는 구은수 대원


금강산 내에서도 거침없는 기치창검으로 수려하기 짝이 없는 집선봉 일대, 그곳 동북릉 2봉 중앙벽을 김정태씨 일행이 초등한지 67여년 만에 남북 의 산악인들이 함께 개척등반으로 오르겠다는 커다란 포부는 북측에 도착한 즉시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금강산이 뚫린 지 어연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은 “가봐야 안다”는 게 왕래가 잦은 이들에게는 정석으로 통한다.


6월 9일, 집선봉 개척등반 허가를 기다리며, 일단 A, B조로 나눠 김남일 대장을 비롯한 일부가 집선봉 개척루트 정찰에, 나머지 대원들은 금강산 바위 맛보기로 2005년 9월 개척된 구룡대 우측벽 등반에 나섰다. 당시 구룡폭포 우측 120여 미터의 벽에 ‘아산길’과 ‘독립문길’이 개척된 바 있다.


산악구조대원들이 2개조로 나눠 오르는 도중, 독립문길로 들어서던 유상범 대원이 첫 피치 슬랩 구간을 5-6미터 오른 상태에서 추락하다 천만다행 멈춰 섰다. 낙석 하나가 깊은 협곡으로 사라진다. 섬뜩한 순간이었다. 어프로치 도중 잡목 숲의 작은 슬랩에서도 미끄러지더니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왜 이리 길게 끊었냐?”


선등을 교대한 유경수 대원이 1, 2피치를 한 번에 등반한 모양이다. 그렇게 마저 3, 4피치도 한 번에 올라 구룡대에 섰다.


 


세존봉에 녹아든 남북 악우의 정


구룡대 대명길 개척 중인 등반가 뒤편으로 상팔담이 보인다정상의 조망은 역시 금강산답다. 옥류동을 따라 에워싸고 늘어뜨린 세존연봉과 관음연봉 암릉은 비단 보자기를 씌워 놓은 듯 광택이 곱디곱다. 그때 구룡대 정상의 침봉을 지난 해 탈레이사가르 등정의 주역인 구은수씨가 올라서자 사람과 자연이 빚어내는 기가 막힌 조화에 대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이튿날 아침, 결국 우려한 대로 집선봉 등반은 허가가 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석동 세존봉 개척 등반이 가능하다는 소식이었다. 이날에서야 비로소 남북의 합동 구조대원들은 세존봉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동석동 들머리에서 2시간 산행 끝에 세존봉 동북릉의 한 수직벽 아래 당도했다. 이미 11시가 다 됐다.


계곡에서부터 솟구친 300여 미터 폭에 200여 미터의 수직벽의 위용은 모두를 압도할 듯하다. 맨눈으로는 루트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될 정도다. 비디오카메라로 최대한 주밍을 한 상태에서 개척할 루트를 분석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워낙에 수직벽이라 루트의 등반 가능성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할 뿐이다.


“저기 물길 있는 데가 까다로워 보여.”


“그 정도면 누웠어.”


“위로 선 것이 아니라 거꾸로 선 것이라니까요.”


“은수야, 그대로 우선 가봐, 괜찮다.”


“아, 밑에서 보는 거하고 위에서 서는 것하고….”


“그거야 당연하지!”


김남일 부대장과 구은수 대원 사이에 무수한 설전이 오간다. 그럴 만도 한 게 남측에서는 전혀 느껴보지 못한 이때껏 최대 규모의 벽이 아닌가. 벽 자체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 수는 없는 현실이었다. 오후 4시면 하산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반만 하기도 벅찬 200여 미터의 수직벽을 제한시간 내에 개척해야하는 사명이 대원들에게 떨어졌다. B조는 중앙벽 직상, A조는 그 우측의 크랙과 슬랩 혼합 루트다. 정상조는 우회하여 세존연봉 정상에 오른 다음 하강하면서 A, B조의 원활한 개척 등반을 돕기로 했다.


“대원들 빨리빨리….”


“워낙에 수직이라 낙석도 없어.”


김남일 부대장의 개척루트 결정에 구은수 대원이 대원들을 재촉한다. 김 부대장도 맞장구를 치며 대원들을 안심시킨다.


정상조는 서우석, 구은수, 최경호, 유상범, 김원철(북측) 대원, A조는 최원일, 유경수, 김기홍, 김은철(북측) 대원, B조는 박만열, 강태웅, 김형수, 이석희, 황광철(북측) 대원으로 구성됐다. 남과 북이 한 팀을 이뤄 암벽루트 개척에 나서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정상조는 벽을 우측으로 돌아 가파른 협곡을 1시간에 걸쳐 오른 끝에 암릉에 올라섰다. 이후 3번에 걸쳐 잡목을 헤치고 암릉을 하강한 끝에 코스가 개척되고 있는 벽 정상에 닿을 수 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세존봉은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위쪽에 솟구친 연봉만 해도 300여 미터는 족히 넘어 보인다. 거기다가 건너편에는 500-600미터씩 거침없이 솟구친 집선연봉의 침봉들이 병풍을 이루고 있다. 이 엄청난 자연의 위용에 맞서 남북 산악구조대원들은 그들의 혼을 불사르기 위해서 또다시 금강산을 찾게 될 것이다.


“드릴부터 장비 모두 줘.”


“원철이가 무전기 봐주고.”


 


구룡폭과 상팔담 비경 펼쳐지는 ‘대명길’


구룡대 대명길 개척 중인 등반가 뒤편으로 관폭정이 보인다서우석 대원이 드릴로 확보지점을 만들고 하강한다. 뒤늦게 내려간 구은수, 유상범 대원은 벽 상단의 좁은 테라스에 걸터앉아 망중한이다. 서우석 대원이 펜듈럼하며 B조에 접근하는 동안 덧없는 시간이 흐른다. 어느덧 오후 3시가 지났다. 땡볕도 그늘에 자취를 감췄다. 계곡 위로 물소리와 새소리만 우렁차다.


“저기다 박으면 안 될까요?”


“박는 게 문제가 아니라 등반조의 루트를 만들어 줘야지.”


구은수 대원이 우측 벽으로 등반을 시도, B조와 어긋난 루트를 연결해 보려고 등반했지만 결국 시간상 김남일 부대장이 대원 모두 철수를 명한다. 오후 4시 21분. A, B조 모두 2-3피치를 개척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실로 개척이 가능할지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6월 11일, 온정각 휴게소를 떠난 지 1시간 30분 만인 9시 40분에 벽 앞에 당도했다. 전날에 비해 꽤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서우석, 구은수, 유상범 대원이 재빨리 고정해 놓은 로프를 주마링하며 정상에 올라선 다음, 개척 등반조를 향해 하강하며 루트를 연결했다.


전날 선등을 한 최원일, 강태웅 대원을 필두로 각조 등반조도 바위에 붙어 등반 속도를 냈다. 루트파악이 다 된 까닭에 암벽코스 개척은 전날에 비해 순조로 왔다. 각 조의 팀웍 또한 착착 맞아 들어 갔다. 그때였다.


“낙석!”


사람 머리 크기 만한 바위가 4피치 부근에서 떨어져 내렸다. 3피치의 위치한 한 대원을 가까스로 비껴 떨어진 바위는 폭격을 하듯 2피치를 정통으로 치며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2피치나 초입에 사람이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주마링 할 때 떨어진 게 무릎을 스치고, 엉덩이 맞고 떨어졌어.”


개척등반을 성공리에 마치고 하강한 대원들이 기분에 겨워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등반가의 혼을 삼켜버릴 듯한 커다란 벽이 아니었던가. 그런 까닭에 서너 명이 무릎이나 엉덩이, 얼굴 등에 상처를 입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나를 살려준 은수야 한 잔 해라.”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와서….”


“아!, 나는 썩은 동아줄이었는데.”


선등을 한 최원일 대원과 강태웅 대원이 서로 술잔을 권한다.


“동이는 북측 구급봉사대 톱으로 키워야겠다.”


“나이가 많아서 안 됩니다.”


남측 대원들이 등반능력이 탁월한 최동 대원을 한껏 띄워주자 북측 최국성 대장이 아쉽다는 듯이 토로한다. 구급봉사대원들이 보통 28살이면 말년인데, 최동 대원은 벌써 26살이란다.


다음날, 남북합동 팀은 내친김에 루트 하나를 더 내기 위해서 다시 관폭정에 도착했다. 구은수, 유경수 대원과 북측의 최동 대원이 개척조로 나섰다. 나머지 대원들은 두 조로 나눠 다시 아산길과 독립문길을 등반했다.


구은수 대원이 아산길 좌측의 슬랩을 올라 우측의 사선 크랙에 붙는다. 다시 좌측으로 크게 횡단하며 사라졌던 그가 구룡폭 위쪽에서 한줄기 크랙을 따라 늠름히 버티고 섰다. ‘대명길’을 종횡무진하는 그의 오름짓 아래로 구룡폭포와 시퍼런 물줄기가 층층이 담을 이룬 상팔담의 비경이 펼쳐진다. c


 


INFORMATION


금강산 세존봉에 ‘평화의길’ ‘통일의길’ 구룡대에 ‘대명길’ 개척


구룡대 정상의 한 침봉금강산 동석동계곡 북쪽에 위치한 세존봉 동북릉의 한 벽에 개척된 ‘평화의길’과 ‘통일의길’은 200여 미터의 벽에 등반길이가 250여 미터로 각각 5피치를 이룬다. 루트는 남북 산악인들이 등반을 통해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한걸음씩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남측과 북측에서 각각 ‘평화의길’과 ‘통일의길’로 명명했다. 최고 난이도는 평화의길이 5.11b이고, 통일의길은 5.11a이다.


구룡폭포 우측 벽인 구룡대 전면에 개척된 ‘대명길’은 기존 ‘아산길’과 ‘독립문길’에 이어 세 번째로 개척됐으며, 120여 미터 벽에 5피치를 이룬다. 루트는 이번 남북합동 암벽코스 개척등반을 이끈 대한산악연맹(회장 이인정)과 명승지종합개발 지도국(과장 박명남)의 첫 자씩을 따서 ‘대명길’이라 명명됐다. 최고 난이도는 5.10이다.


특히, 세존봉 동북릉 개척루트는 거의 수직을 이룬 남북 통틀어 최대 규모의 등반루트로 등반기술 측면에서 높은 의의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그 주변으로 300-400미터 급의 수직벽이 즐비하게 솟아 있어 차후 개척 등반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남북합동 금강산 암벽루트 개척에는 남측의 중앙 및 시도 연맹 소속 산악인 17명과 북측의 금강산 산악구급봉사대 7∼8명이 참가했다. 또한 차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합동등반을 위한 논의도 가졌다.


 


MINI INTERVIEW


(사)대한산악연맹 이인정 회장


“남과 북이 한 자리에서 형제의 정을 나눠서 기쁘다. 자주 오다보니 정이 깃들었다. 이런 자리처럼 악우의 정을 느끼며 자연을 통해서 하나가 되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 북측 젊은이들도 남측에 와서 감동을 갖고 가길 바란다. 앞으로 남북 산악계의 교류가 더 활발해지면 백두산을 비롯해서 에베레스트까지, 더 큰 산을 위해서 큰 꿈이 이뤄지게 될 것이다.”


이번 금강산 남북합동 개척등반을 북측 명승지종합개발 지도국과 공동 주최한 대한산악연맹의 이인정 회장은 등반 마지막 날(6월 12일)에 구룡대 아산길 1피치를 선등하기도 했다.


 


금강산 산악구급봉사대 후원한 네파 김형섭 사장


“구룡대 등반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다. 이제 북측 대원들과 친구가 되어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다. 너무 좋은 추억거리를 가져간다. 앞으로 남북이 등반을 통해 하나 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또한 지속적으로 북측 금강산 구급봉사대를 후원하겠다.”


이번 남북 금강산 암벽루트 개척등반은 이태리 명품 아웃도어 브랜드인 네파에서 후원했다. 김형섭 사장은 6월 8일 저녁 7시 산악구급봉사대 하계복 전달식을 겸해 남북 대원들이 함께 한 해금강호텔에서 북측 대원들에게 20여명 분의 바지, 재킷, 모자, 양말 등을 후원했다.


 


금강산 산악구급봉사대 최국성 대장


“남측에서 소중한 꿈 안고 이곳에 왔다. 남과 북이 한마음으로 등반하길 바라며, 뜻을 합해 통일의 길로 가길 바란다. 순 호기심으로 시작한 암벽등반을 지금은 금강산을 찾는 남측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해 의무감을 갖고 배운다. 참 재미있다. 앞으로 에베레스트도 함께 가자.”


산악구급봉사대는 지난 2005년 8월 23일 남측 금강산 관광객들을 안전을 위해 조직됐다. 처음 12명이던 대원은 현재 17명이며, 내금강 관광이 활성화되면 더 증원될 예정이다. 구급봉사대원들은 한 등산코스에 3-4명이 배치되어 관람객들의 사고시 1차 치료를 담당한다. 대원들은 모두 적십자사에서 6개월 동안 구급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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