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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토크 | ||||||||
마우로부부볼레 설악산 적벽등반기 옹알이 | 2011.09.16 | 조회 13,991 | 추천 0 댓글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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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바람이 그의 온몸을 때린다. 로프는 적벽 최대 고빗사위를 넘어서려는 그의 열정을 타고 끊임없이 휘날린다. ‘온사이트 등반’은 단 한 번의 실수가 영원한 기회를 빼앗는다. 처음이자 마지막 시도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집중력 때문에 충혈된 눈, 거친 호흡 그리고 연신 신음을 토해내는 부부의 본능적인 움직임은 마치 현실과 벽사이의 공간을 넘어서려는 거친 투쟁과도 같아 보인다. 잠시 바람이 멈춘 사이 계곡을 울리던 그의 신음소리가 끊겼다. 자! 이제 시작이다. 적벽에서의 온사이트 자유등반의 실현. 그의 등반 기술은 유산소등반에서 이미 무산소의 영역으로 들어선지 오래다. 다만 꿈틀거리는 그의 근육이 그가 향하는 벽의 난이도를 대변할 뿐이다. 지난 3월 17일 방한한 마우로 부부 볼레(Mauro Bubu Bole·38세)는 인수봉의 ‘취나드A(5.10a)’ 코스를 등반했었다. 하지만 그의 등반엔 무언가 부족함이 묻어났다. 그것은 갑자기 바뀐 시차와 어색한 환경, 그리고 돌로미테의 석회암 바위에서 화강암 바위로의 이동으로 인한 적응력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등반 열정은 ‘미쳤다’ 고 해야 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자신 스스로 ‘크레이지 클라이머(crazy climber)’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더라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Climber盃 2006 버그하우스 아이스클라이밍 최강자전’이 끝난 3월 18일 저녁 느지막이 취재진은 부부의 방한 중 최대 목표로 삼은 설악산의 적벽으로 향했다. 춘삼월이라 하지만 새벽에 도착한 설악산은 달빛 사이로 빛나는 하얀 토왕성의 정수리와 골바람이 묘하게 더해져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있었다. 서둘러 호텔에 들었다. 마우로는 연일 계속되는 빠듯한 일정에도 피곤한 내색 없이 특유의 밝은 얼굴로 내일의 등반을 준비한다.
“나는 크레이지 클라이머” 다음날 잔뜩 찌푸린 하늘이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윙 윙’ 비행기 굉음을 내는 거센 바람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려온다. “오늘 등반하기 힘들겠는데.” 박충길(39세·몬츄라코리아 대표)씨가 거센 바람을 걱정한다. 하지만 회색의 하늘 사이에서도 그의 천진난만한 웃음은 파랗게 빛났다. ‘I like that peak.' 언제나 위협적인 적벽을 첫 대면한 이탈리아 클라이머의 말이다. 늘 최고의 난이도가 자신의 몫인 양 ‘어려움과 곤란함의 추구’를 지향하는 것이 곧 그의 화두였다. 조용한 계곡의 오솔길을 따라 적벽으로 길을 잡아 나선다. 그의 시선이 한참을 벽에 머문다. 모두들 그에게 어떤 답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마우로가 말했다. “혹시 저기 오른쪽 등반 루트를 온사이트 자유등반으로 오른 등반가가 있습니까?” 그의 말을 따라간 곳은 에코길(5.11c) 첫 마디와 독주길 2, 3마디(5.12d)의 크랙과 페이스가 혼합된 등반라인이었다. 2000년 손정준(40세·손정준 클라이밍스쿨 대표)씨에 의해 등반됐지만 온사이트는 아니었다고 설명하자, 그의 눈에는 조금 긴장된 빛이 맴돈다. 이때부터 그의 모든 세포들은 하나둘 깨어나 첫 대면한 ‘붉은 벽’에 실패 없이 오를 준비를 한다. 그가 등반을 준비하고 루트를 다시 살피는 사이 전양준(37세·청악산우회)씨와 박충길씨, 강레아 기자가 그의 등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서둘러 인공등반으로 두 마디에서 오늘의 주인공을 맞을 만반의 준비를 마친다. 등반 파트너로는 2002년 마우로와 함께 이탈리아 쟈르데냐의 거벽등반 루트인 ‘호텔 슈프라몽테(Hotel Supramonte·450m·5.13d)’를 같이 올랐던 고미영(39세·코오롱스포츠)씨가 나섰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첫 마디는 작은 천장을 넘어 핑거 재밍이 가능한 크랙을 올라 페이스 등반으로 끝을 맺는 구간이다. 그의 등반이 마치 물 흐르듯 흘러간다. 첫 마디의 고빗사위인 흐르는 틈새 홀드를 마찰력을 이용해 잡고 오르더니 아름답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마지막 쌍 볼트에 도착한다.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이제 도를 넘어 본격적인 체온 떨어뜨리기에 돌입한 듯 하다. 마우로가 추운지 우모복을 껴입고 고미영씨의 확보를 본다. 얼마 후면 떠날 에베레스트 원정을 잠시 제쳐두고 이곳까지 달려온 그들의 우정이 로프의 길이를 줄이며 같은 테라스에서 끝을 맺는다. 마우로는 다음 마디 루트파인딩에 정신이 없다.
“다음 마디가 아주 어렵나요?” 그의 질문에 모두들 고개를 가로젓는다. “당신이면 쉽게 할 수 있을 걸요.” 이 말에 그가 우모복을 벗지 않고 두 번째 마디 등반에 들어선다. 손가락 반 마디가 걸리는 아주 작은 홀드에서도 그는 여유롭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등반 동작을 연출한다. 그러던 중 루트 중간쯤 좋은 홀드에서 갑자기 등반을 멈춘 마우로는 우모재킷을 벗기 시작한다. ‘왜일까?’ 잠시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잠시 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프로 등산가로 사진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는 그가 우모재킷을 입고 등반하면 사진이 좋지 않다는 것을 고려한 것. 이미 봄 시즌임을 감안해 사진 촬영을 하는 이들을 위해 아찔한 수직벽에서 서커스와 같은 동작으로 우모복을 벗어 카라비너에 걸어놓고 무사히 두 번째 마디 등반을 마친다. 무엇이든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의 세심한 프로정신이 빛나는 대목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세 번째 마디의 등반에 따라 높은 가치의 등반인 적벽 온사이트 등반의 성패가 달렸다. 그의 얼굴에 약간의 긴장감이 묻어난다.
“올 가을 신 루트 내고 싶다” 그는 과감한 동작으로 세 번째 마디의 최대, 아니 오늘 등반의 최대 고빗사위에 들어선다. 길게 뻗은 왼손이 오버행 위의 작은 돌기를 바짝 감싸고 체중 이동을 시작하자 그의 손이 밀리기 시작한다. 삽시간에 긴장이 붉은 벽 위로 퍼진다. 하지만 그는 노련하게 클라이밍 다운으로 내려와 몸을 추스른 후 다시 시도하기를 여러 번, 100도의 오버행에서 강한 근지구력을 선보이며 등반을 음미한다. 다리를 길게 벌린 그가 수직의 낭떠러지 위에서 체조 선수와 같은 유연한 동작으로 고빗사위를 넘어 바위 끝 하늘금 너머로 사라진다. 잠시 후 계곡에 울리는 환호소리가 온 계곡을 메운다. 축하의 박수와 함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상에 모여 어린 아이같이 신나서 취하는 포즈는 매력적이었다. 적벽 등반 역사 중 한 페이지를 장식한 최초의 ‘혼합루트 온사이트’ 자유등반 성공! 축하의 말을 건네자 그는 한국등반가들에게 미안한 지 올 가을에 와서 이곳에 5.14급의 루트를 내겠다고 한다. 하루 종일 추위와 긴장감에 녹초가 된 마우로는 일주일간의 한국등반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본지를 방문하러 편안히 잠든 모습으로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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