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0번 버스 고가 기둥 ‘쾅’에 시민들 “결국 터질 일이 터졌다” 지난달 20일 새벽 5시 20분.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던 60번 버스는 그만 고가도로를 떠받치던 기둥을 들이받았다. 운전기사는 사망하고 승객 7명이 다쳤다. 사고 원인은 조사 중이라지만, 이 버스를 아는 사람들은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반응들이다. 60번을 비롯, 60-3번, 88번 등 버스들이 워낙 질주를 해대기 때문이다. 김포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이 버스들은 ‘김포버스’라는 점에 빗대 '킬(Kill)포버스'라 불릴 정도다.
5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에서 만난 60번 버스 기사 A씨는 "노선은 긴데 배차 간격이 짧아 신호에 한 번만 걸려도 뒤차가 따라 붙는다"며 "운행이 늦어지면 다음 배차까지 쉬는 시간이 줄어 과속하는 기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 지난달 20일 오전 5시 30분쯤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고가도로 아래에서 달리던 버스가 기둥을 들이받아 운전자 1명이 숨지고 승객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소방청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배차시간이 짧은 건 노선의 특징이다. 60번 버스는 인천 단봉초등학교에서 출발해 영등포역을 거쳐 되돌아가는데, 50여개 정거장을 거쳐 되돌아가면 2시간 30분쯤 걸린다. 하지만 회사의 배차간격은 약 3시간 정도. 운행을 마치고 차고지에 들어오면 연료를 채우고 간단한 정비를 마친 뒤 거의 쉴 새 없이 다음 버스를 몰고 나가야 한다.
인천, 김포가 서울에 대한 일종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다 보니 원래도 출퇴근 이동인구가 많아 배차 간격이 촘촘하다. 거기다 최근엔 검단신도시 등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면서 거쳐야 할 정류장은 하나 둘씩 자꾸 늘어났다. 이러니 버스가 조금만 늦어도 승객보다 버스기사가 되레 더 발을 동동 구르게 되고, 자연스레 위험천만 운전을 하게 된다. 또 다른 60번 버스 기사 B씨는 “아파트 하나가 들어서면 정류장이 한두 개 더 늘어난다”며 “주말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평일 출퇴근 시간대엔 쉬는 시간조차 없다”고 호소했다.
| [저작권 한국일보]서울버스와 경기버스의 근무형태 등 차이. 그래픽=박구원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는 ‘킬포버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로 경기도민들을 실어 나르는 경기버스에서는 흔한 일이다. 경기 안성 일대에서 10년 이상 버스 운전을 해본 기사 김모씨는 “보통 하루에 여섯 번 정도 버스를 받아 운행에 나가는데 배차 간격이 촉박하니 쉴 틈 없이 계속 버스를 몰아야 한다”며 “그렇게 새벽부터 자정까지 운전을 반복하다 보면 나 스스로도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경기버스 기사들은 보통 16~17시간 운행한 뒤 다음날 쉬는 식으로 근무한다.
이유는 결국 수익성이다. 2004년부터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서울버스는 서울시가 노선을 조정하고 적자가 발생하는 노선에 대해서도 보전해주기 때문에 버스회사들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 하지만 경기버스는 버스를 최대한 운행시켜야 수익이 난다. 주52시간제 도입도 영향을 끼쳤다. 버스기사가 부족해지니 버스회사들은 경험이 적은, 미숙련 기사들까지 채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기버스는 ‘달리는 시한폭탄’이라 불린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경기 버스 교통사고 증가율(2008 ~2014년)은 연평균 9.6%로 같은 기간 전국 평균인 2.8%, 서울 1.1%보다 훨씬 더 크다. 경기도도 지난해 4월 준공영제 도입을 선언하긴 했다. 하지만 도내 31개 지자체 가운데 수원, 성남, 고양, 화성, 안산, 부천 등 대도시 지역 10개 시ㆍ군이 불참했다. 도내 1만2,570대 버스 가운데 준공영제에 참여하는 버스는 불과 589대(4.6%)에 불과하다.
엄도영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 버스지부 사무국장은 "버스 운전은 운전 기술 못지 않게 해당 노선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전임 기사가 후임 기사를 1대1 도제식으로 가르쳐야 한다”며 “지금 같은 방식이라면 버스의 안전성은 그만큼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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