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가 당시 경찰의 강간 및 실종 사건 수사선상에 올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신발 사이즈가 달라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경찰은 청주에서 처제를 살해한 이씨를 체포하고도 혈액형을 오인하고 공조 수사에 실패하는 등 오락가락하면서 장기미제를 자초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0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경찰 문건에 따르면 이씨는 1986년 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가 구성된 뒤로 87년 88~90년, 91년 세 차례에 걸쳐 강간 및 실종사건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올랐다. 86년 9월 15일부터 같은 해 12월 14일까지 4차례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화성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대대적으로 수사를 나섰다.
이씨가 처음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것은 5차 사건 직후다. 수사본부를 구성하는 등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87년 1월10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황계리(화성시 황계동)에서 홍모(19)양이 잔혹하게 살해되는 다섯 번째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이 이씨를 용의대상에 올려 수사를 벌이는 와중에도 6차(87년 6월 2일)와 7차(88년 9월 9일), 8차(88년 9월 16일) 범행은 계속됐다.
이씨는 8차 사건 이후 유력한 용의자로 압축됐다. 사건 현장에서 DNA를 확보한 경찰은 다른 용의자들과 함께 이씨의 체모를 채취해 비교하는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DNA 대조에서 불일치 판정을 받고 이씨는 용의선상에서 제외됐다. 당시 경찰이 범인을 혈액형이 B형인 남성으로 특정한 상황에서 DNA까지 달랐기에 혈액형이 O형인 이씨는 자연스레 후보군에서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수사 기록에는 이씨 신발 사이즈가 8차 범인과 다르다는 점도 기록됐다.
8차 사건은 공교롭게도 모방범죄로 결론이 났다. 범인 윤모(당시 22세)씨는 사건 발생 1년 만인 89년 7월 검거됐다. 만약 당시 경찰이 현장에서 확보한 증거의 DNA를 이씨의 것과 대조했다면 불일치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셈이다. 최근 DNA대조에서도 이씨는 5차, 7차, 9차 사건의 범인으로만 지목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