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지는 직업을, 요즘 자라나는 세대들은 선망한다지만 나는 얼굴이 알려지는 내 직업에 익숙해지는 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 한 번 맛있게 먹을 수 없고 물건 값도 야박하게 깎지 못하고 택시 타고 졸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보고 흘끔흘끔 뜯어 보는 듯한 시선을 느낄 땐 더욱더 불편했다. ˝혹시, 아무게 아니냐˝며 말까지 걸어오는 사람들에게는 뾰로통해서 대답을 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던 ´83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택시 운전수 아저씨가 반색을 하며 나를 반기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나는 ˝그 사라은 우리 친척˝이라고 대답을 해 버렸다. 그러나 아저씨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아니 그런데 목소리가 어쩜 그렇게 똑같으냐˝는 것이다. ˝친척이라서 그런가 보죠˝ ˝아닌데, 분명한데˝ 하며 아저씨는 계속해서 백미러로 나의 요모조모를 살펴 보는 것이었다.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 택시 운전수 아저씨는, ˝아마 대학을 갓 졸업한 나이라 남의 시선을 받는 게 어색한 모양인데,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 때는 반갑게 인사해 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며 내게 일침을 가했다. 이후 나를 알아보는 사람에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마음속 어색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95년 LA특파원 시절, 할리웃의 잘나가는 스타들을 취재하게 외었다. 로버트 드니로, 알파치노, 소피아 로렌에서부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스타들을 인터뷰하면서 연륜이 쌓인 스타일수록 다정다감하고 겸손하다는 것을 느겼다. 연륜이 짧은 젊은 스타들은 대부분 쌀쌀맞고 여유롭지 못했고 인터뷰 후에도 왠지 기분이 썩 유쾌하지 못했다. 만약 10여 년 전 그 택시 운전수 아저씨의 따끔한 한마디가 없었다면 나는 아주 뒤늦게서야 따뜻한 미소를 가질 수 있었을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