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싸움을 즐겨 하는 사람과 어떤 종류의 갈등도 싫어하는 이들로 그 부류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얼핏 호전적인 사람들은 과격하거나 우락부락한 외모를 갖고 있으리라 상상하지만, 뜻밖에도 아주 내성적이고 섬세해 보이는데 의외로 타인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지니고 기회만 있으면 싸움판을 벌이는 이들이 있다.
반면에 너무나 마음이 약해서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는 요만큼도 못하는 이들 중에는 의외로 남자답고 덩치가 좋은 이들도 적지 않다. 겉모습만 봐서는 하고 싶은 대로 무슨 일이든 저지를 것 같은데 소심해서 남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감히 입에 담지 않는다.
양쪽이 다 싸움을 싫어하는 부부는 얼핏 금슬이 매우 좋아 보이지만 정말로 꼭 해결해야 할 갈등까지도 대충 덮어 버리곤 나중에 딴 소리를 하거나 어느날 갑자기 난데없는 이혼을 결심하여 주위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하기도 한다.
한 쪽이 타고난 싸움꾼이고 한쪽이 평화주의자라면 어느 틈에 싸움꾼은 강자가 되고 평화주의자는 약자로서 구실이 매겨지기도 한다. 둘 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부부는 그야말로 혼란스런 가정생활을 꾸려가다 기어이 폭발해 버려 가정이 깨진다.
물론 이런 성격이 평생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젊어서는 따질 것 안 따질 것 가리지 않으면서 정의감에 불타서 조금이라도 자기 가치관에 맞지 않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판을 벌려 어깨에 힘도 줘 보지만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좀 기운이 딸리기 때문인가 싸움 자체가 시들해진다. 열을 내고 싸워 봐야 상대방이 별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상 체득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 세상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절대적 진리가 과연 있는지, 자신이 신봉하는 가치관이 정말 옳은지 의심이 들기 때문일까. 청년기에는 과격한 행동주의자들도 나이가 들어 성숙이라면 성숙이고, 타협이라면 타협이랄 수 있게 대부분 변하게 된다. 과연 어떤 삶을 살지야 각자 알아서 결정할 문제이지만 정말로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못하고 지극히 사소하고 엉뚱한 문제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끊임없이 싸움을 자꾸 거는 사람들이 있어 주위 사람에게 공해의 원인을 제공한다. 특히 애꿎은 아내나 남편에게 별 일도 아닌 일로 시비를 걸어서 분을 삭히려 한다면 남 보기도 민망하지만 우선 자기 자신이 참으로 불행하다.
그 속에서 당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지만 불구경, 물구경, 싸움구경은 누구나 흥미진진하게 본다. 인산의 심성속에는 야수성이 숨어있단 뜻이다. 가족은 체면과 껍질을 버리고 만나니 만큼 잠재된 야수적 본성이 드러나기 쉬운 것 같다. 미녀가 야수를 만나 사랑의 힘으로 왕자의 모습을 되찾아 주듯, 지극정성만 가지고도 싸움꾼 배우자를 왕자와 공주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어김없이 동화적 상상력을 배반하기 때문에 나같은 정신과 의사도 필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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