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죽 한 그릇 -고영민- 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감격스러울 때는 비싼 정찬을 먹을 때가 아니라 그냥 흰죽 한 그릇을 먹을 때 말갛게 밥물이 퍼진, 간장 한 종지를 곁들여 내온 흰죽 한 그릇 늙은 어머니가 흰쌀을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이는
가스레인지 앞에 오래 서서 조금씩, 조금씩 물을 부어 저어주고
다시 끓어오르면 물을 부어주는, 좀 더 퍼지게 할까
쌀알이 투명해졌으니 이제 그만 불을 끌까 오직 그런 생각만 하면서 죽만 내려다보며 죽만 생각하며 끓인 호로록, 숟가락 끝으로 간장을 떠 죽 위에 쓰윽, 그림을 그리며 먹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