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장기간에 걸친 평균 감정을 지칭하는 용어다. 가끔 불만족스럽다고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은 ‘기분이 좋다’는 느낌을 받는다. 혹자는 이 정도의 소소한 감정을 가지고 어떻게 ‘행복’을 운운하느냐 하겠지만 그게 모여서 행복이 되는 거다. 기분이 좋다는 건 즉각적인 행복감이다. 떨어져 나온 옥수수 낟알과 흘러나온 와인 한 방울이 여전히 옥수수와 와인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기분이 계속 들쭉날쭉한다면 행복의 평균치가 낮아지니 평균치를 높일 수 있도록 행복 호르몬을 계속 방출시키는 게 좋다. BBC 다큐멘터리 <행복>은 행복의 요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감각적 경험에 따른 쾌락, 불쾌감(고통, 불안)의 부재, 그리고 만족감. (감각적 만족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만족감을 의미한다. )” 이 요소들을 충족하려면 행복 호르몬 중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 여러 개가 모두 함께 작용해야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 반대로 쾌락만을 추구하고, 그 쾌락이 없을 때는 극도로 불안하고 우울한 상황에 이르는 것은 행복 호르몬 관리를 잘 못하는 경우다. 행복의 평균치가 낮은 사람은 도파민을 발동시키려고 발버둥친다. 뇌는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것이 들어오면 도파민을 퍼부어 기분이 좋아진다. 당연히 그런 것들을 더 하고 싶게 된다. 도박, 쇼핑, 인터넷, TV, 과식, 섹스, 약물 중독이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이런 반응이 뇌를 완전히 압도하면 뇌는 주도권을 잃게 된다. 물론 쾌락을 무조건 나쁘게 생각할 건 아니다. 성적 쾌락이나 목표를 이뤄서 느끼는 희열도 행복 중 일부다. <행복-행복 전문가 6인이 밝히는 행복의 심리학>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쾌락은 나이트클럽을 전전해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은 좋은 책을 읽거나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나이트클럽에서 행복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니 뇌가 주도권을 잃지 않고 주기적으로 알아서 잘, 많이, 전보다 더 행복 호르몬을 방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다음의 전략들은 당신의 머리에 꽂아줄 충전기다. | | Well ‘잘’하면 잘 나온다 | 취침 시간을 잘 맞춘다면 부부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건 생각해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밥을 같이 먹고 출퇴근을 같이 하기도 하고 공통의 취미를 즐기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지 못하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 바로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서로 어긋나 있는 취침시간을 조정하자. 같이 잠이 들면, 하루를 같이 마감하는 기분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같이 눈을 뜰 필요는 없다. 각자 필요한 수면 시간을 채우고 나면 먼저 일어나서 신문을 보건 아침을 하건 마음대로 시간을 활용해도 된다.)
잠을 충분히 잔다면 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는 행복이고 뭐고 신경을 끄고 싶어진다. 하룻밤만 잠을 못 자도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 수치가 이튿날 저녁 무렵이면 45% 이상 높아진다. 굶기는 고문은 버텨도 잠 못 자게 하는 고문은 간첩도 못 버틴다. 카드빚을 나눠서 갚듯, 누적된 ‘수면 부족’은 휴가 때 오랫동안 푹 자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 그러니 휴일에 집에서 뒹굴기만 했다고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 만약 배고픔과 졸음이 동시에 왔을 땐 잠을 선택하는 것이 행복 호르몬을 자극하는 길이다.
동물과 잘 지낸다면 일찍이 만화 <피너츠>의 작가 찰스 슐츠는 “행복은 따뜻한 강아지다”라는 멋진 어록을 남겼다.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의 뇌가 행복 호르몬을 분비할 기회를 더 자주 얻는다. 동물을 쓰다듬으면 모든 종류의 행복 호르몬이 굉장한 양으로 방출된다. 남이 키우는 동물보다는 자신이 키우는 동물이 더 큰 효과를 주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범죄에 대한 공포를 덜 느끼고, 어린아이의 경우 부모의 죽음 같은 힘든 일도 더 잘 버텨낼 수 있다. 단, 동물을 제대로 키울 형편(돈, 시간, 알레르기 없는 체질)이 안 된다면 반려동물을 들이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일단 붙인 정을 떼는 건 괴로움을 자초하는 짓이다. 일요일 아침에 <TV 동물농장>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길.
골고루 잘 챙겨 먹는다면 영양소를 골고루 챙겨야 행복 호르몬이 철철 넘친다. 항우울제의 효과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자연에서 비롯된 재료로 만들었으니 약보다 훨씬 몸에 좋은 것은 당연하다. 세로토닌은 아미노산, 즉 단백질인 트립토판으로 만들어지며 트립토판은 음식으로만 섭취할 수 있다. 공복 상태이거나 오랫동안 굶으면 아무리 세로토닌을 만들고 싶어도 재료가 없어서 만들지 못한다. 또 트립토판은 탄수화물과 함께 섭취할 때 흡수가 가장 잘된다. 트립토판은 닭, 참치, 연어, 각종 콩류, 씨앗, 바나나 등에 많이 들어 있으며 엔도르핀도 증가시킨다. 또 비타민과 미네랄의 힘을 얕보았다가는 큰일 난다. 비타민 B군은 활력을 이끌어내고, 엽산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마그네슘이 부족하면 불안, 짜증, 긴장이 발생하고, 아연은 격렬한 감정을 차분하게 다독이고 세로토닌의 생산을 촉진한다.
늙어서 뭘 할지 잘 준비한다면 많은 이들이 젊어서 고생하고 늙으면 놀 생각을 한다. 그러나 할 일이 없다는 고통은 당신을 정말 ‘풀 죽은 노인’으로 만들 것이다. 형편도 넉넉한 동네 할아버지가 폐지를 줍고 다니는 이유는 ‘심심해서’다. 지하철에서 신문을 모으는 노인들이 민폐를 끼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탑골공원에서 서성이는 동년배보다 훨씬 힘도 세고, 생기 넘치는 것도 진실이다. 그렇게 모아봤자 1㎏에 몇천 원 받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그들의 뇌는 행복 호르몬을 뿜어낸다. 물론 그 누구도 생계를 위해 폐지를 모으는 노년을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늙어서 할 일 정도는 만들라는 말이다. “노인의 삶은 상실의 삶이다. 늙어가면서 건강과 돈, 일과 친구, 그리고 꿈을 상실하니까”라는 괴테의 말처럼, 성취감 없이 놀러 다니는 노후가 편안하기는 할지언정 재미는 없을 것이다. 화단을 가꾸고 죽기 직전까지 글을 썼던 소설가 박완서나 병든 사람들을 돌봤던 마더 테레사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무료하지 않은 노후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잘 지낸다’고 잘 거짓말할 수 있다면 “주말 잘 보냈어?”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 대답은 “쉬었는데 안 쉰 것 같아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잘 지내냐고 물으면 한숨부터 푹푹 쉬며 “뭐 그럭저럭.” “죽지 못해 살지.” 일부러라도 아주 잘 지낸다고 말해라. 웃음이 나오고, 등이 펴지고, 근육이 팽팽해진다. 그 말을 입에 담는 짧은 순간에 행복 호르몬이 발현된다. 반대로 “다음 주는 완전히 피곤할 거야”라는 말을 하는 순간, 육체는 당장 이번 주부터 피곤해진다. 약간의 사기도 좋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외향적인 사람인 척해라. 그렇게 즐거운 척하면 정말로 즐거워진다.
돈을 향한 욕심을 잘 조절한다면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쓸 수 있으면 더 행복할까? 어차피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은 각각 다르다. 세 식구 사는데 50평 아파트에 들어가서 대출금 이자에 허덕이는 것보다 작은 빌라에 살면서 여행을 즐기는 편이 더 행복하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전자의 경우를 행복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증가한 어떤 나라도 인생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지수는 전혀 증가하지 않았으며, 옛날보다 살기 편해진 현대에 자살률이 더욱 급증하고 있다. 돈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고 느낄 일이 많겠지만, 있다고 무조건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내가 버는 돈이 내가 원하는 만큼의 돈보다 많으면 행복감은 커진다. 즉, 돈 욕심과 소비 욕구를 줄이면 행복감은 자동적으로 높아진다.
아침밥을 잘 먹는다면 아침밥을 굶으면 오전에 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짜증이 나기 쉽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리 몸이 개운하더라도 웃음이 나진 않는다. 유머감각이 통째로 사라지는 기분이랄까? 그 이유는 저(低)세로토닌 상태이기 때문. 이 상황에 아침밥을 굶으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특히 남성의 경우 저(低)세로토닌 상태가 되면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도 가능하다. 짜증내는 그 입에 먹거리를 물려줘라.
TV를 적당히 같이 본다면 방마다 TV가 있고, 각자의 방에서 각자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는 요즘의 집 안 풍경. TV가 가족과 대화하고 접촉할 기회를 빼앗아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보지 말라고 한다고 안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애들이 어릴 때야 TV를 없애면 얘기할 게 많지만, 애들이 좀 크면 각자 자기 방에서 컴퓨터와 휴대전화 갖고 노느라 등짝만 보게 된다. 오히려 TV를 같이 본다면 대화를 할 기회가 늘어난다.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우기지 말고 적당히 타협해가면서 보면 어떨지.
잘 만지고 더 더듬는다면 수동적인 촉각과 능동적인 촉각은 다르다. 둘 다 중요하지만 내가 능동적으로 느낀 감각이 행복 호르몬을 더 많이 자극한다.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어머니의 손길처럼 외부에서 오는 자극보다 내가 쥐었던 남편의 손, 내가 베어 물었던 사과의 맛, 내가 맨발로 걸은 모래사장이 더 크게 기억된다. 한마디로 남이 나를 만지는 것보다 내가 남을 만지는 게 더 큰 행복으로 남는다. 남편이 뭔가 해주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어깨를 주물러줘라. 수줍음은 남자 옷깃만 스쳐도 얼굴 붉어지던 스무 살 때나 타는 거다. 아이가 달려오기 전에 먼저 가서 껴안아라. 많이 안아주는 것이 아이의 정서에 분명 도움이 되지만, 그보다 더 큰 행복 호르몬의 물결이 당신을 둘러싼다. | | Much ‘많이’ 하면 많이 나온다 | 행복한 친구의 친구 얘기를 자주 듣는다면 앓는 소리 하는 사람 옆에서 ‘그래, 난 얘보다는 행복하지’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마음속으로 경계하는 사람이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명예를 가진 사람의 불행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지 모든 이들이 베스트 프렌드의 불행을 즐거워하진 않는다. 행복하고 긍정적인 사람 옆에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한 느낌을 받게 된다. 심지어 전혀 만난 적이 없는 ‘친구의 친구’가 행복하더라는 얘기를 들어도 행복지수는 올라간다. 친구가 기쁘면 같이 기쁘고 슬프면 같이 슬픈 것처럼 행복 호르몬도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이다. cf. 그러나 부자 동네로 이사 간다고 해서 부자가 되어 행복해질 가능성은 턱없이 낮다. 예전 동네에선 떵떵거리며 살았는데 이 동네에 와보니 꼴등. 아파트 평수와 차종으로 아이부터 엄마까지 또래집단에서 차별받는다.
친구와 농담을 많이 한다면 오랜 친구들과 서로 놀리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잠시 근심 걱정과 시간을 잊고 우정에 몰입하는 시간은 행복 호르몬이 솟아나기 좋은 환경이다.
추억의 절대량이 많아진다면 추억의 힘은 대단해서 배우자나 부모, 자식의 죽음까지도 뛰어넘는다. 시간이 지나면 죽은 가족을 회상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 슬픔보다는 기쁨, 쾌감으로 넘어간다. 기억은 미화되어 긍정적인 순간이 선별적으로 더 많이 떠오른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고 다양한 기록 행위를 즐기자.
지인에게 자주 연락한다면 시간이 없다면 오프라인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연락을 취하라.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안부를 묻고 자신의 근황도 지속적으로 알려라. 혼자만 외롭게 잘살면 뭐 하나. 혼자만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 호르몬은 친밀한 유대와 사회적 격려, 쉽게 말해 ‘사람들이 내 걱정을 해주는구나, 나 잘되길 기도해주는구나’란 기분이 들 때 분비된다.
햇볕을 많이 쬔다면 실험쥐를 6일 동안 어두운 곳에 넣어두면 사람이 우울할 때 활동이 저하되는 뇌 부위와 같은 곳에 손상이 오고 세로토닌, 도파민 등 감정과 기쁨 호르몬을 만드는 뉴런이 죽는다. 다행히 다시 햇볕을 많이 쬐면 부작용 없이 회복된다.
적당히 질투한다면 부부관계를 해칠 정도로 과도한 질투는 NO. 남편의 외도에 행복할 아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다만 일상생활에서 소녀시대 보며 헤헤거리는 남편 모습에 열불이 나는 아내, <여인의 향기>를 재방 삼방 보며 본부장앓이를 하는 아내 옆에서 툴툴대는 남편 등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행동은 연적에게 자신의 파트너를 빼앗기지 않을 확률을 높인다. 약간의 질투심은 ‘경계경보’ 역할을 하고, 우려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때 안도하면서 행복 호르몬이 자극된다. 실제로 상대방을 너무 신뢰하거나 만만하게 보고 태평한 사람은 배우자의 외도를 겪을 확률이 높다.
사람들과 함께 웃는다면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30배쯤 더 웃는다고 한다. 꼭 웃기는 말을 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연결하는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 웃는 것이다. 어린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순간이 혼자 있을 때보다 친구나 형제와 있을 때 더 많다. 웃음보를 터뜨린다는 말이 있다. 뇌에는 정말로 ‘웃음보’가 존재한다. 고단위 단백질과 도파민으로 이루어진 엄지손가락만 한 이 웃음보를 자극하면 우습지 않아도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웃음보에 의해 웃음을 터뜨리면 각종 행복 호르몬이 터져 나온다. 5분 웃으면 5백만원 상당의 엔도르핀이 몸에서 생산된다. + 배꼽 잡고 웃기: 웃음의 육체적인 효과. 상체 운동을 한 듯(허리가 잘록하고 마른 사람은 배꼽 빠지게 한참 웃고 난 후 순간적인 식스팩이 생기기도 한다) 배가 땅기고, 유산소 운동을 신나게 한 듯 근육의 긴장이 풀리며 모든 장기와 조직이 마사지를 받은 효과가 난다. 폐에 고여 있던 공기가 빠져나가고 신선한 공기가 흡입되며, 혈액순환이 잘 이루어져 심장에 들어가는 혈액양이 증가하면서 혈관 내벽이 튼튼해져 심혈관 질환의 위험도 줄어든다. 또한 백혈구의 생성을 도와 각종 세균 감염 및 전염을 예방해준다.
목표를 작게, 그리고 잘게 나눈다면 ‘헬스클럽에 3개월짜리 등록해놓고 매일 간다’ ‘두 달 안에 테니스 중급으로 올라선다’ 등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면 당연히 행복감은 더 크다. 하지만 그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99% 아닌가? 자동차를 먼 곳에 주차하기, 목적지보다 한 정거장 먼저 내리기처럼 쉬운 방법을 택하라. 생각 없이 걷다가 땀이 나고 그 순간 시원한 바람을 느낄 때, 작은 목표를 성공하고 자축하면서 희열을 느낄 때 당신 몸은 행복 호르몬으로 가득 찬다.
하고 싶은 운동을 자주 한다면 활발한 운동으로 이득을 보는 신체 기관은 근육과 심장만이 아니다. 운동은 뇌의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시켜 우울감을 없애준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 수영장에서 열 번쯤 양쪽을 찍듯 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수영을 한 뒤 자신의 변화를 확인해보라. 무섭도록 쉽게 감정이 정돈된다. 일주일에 다섯 번, 30분씩이면 충분하다. 더 줄여서 일주일에 딱 20분씩 세 번만 해도 이전보다 20%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단, 본인이 싫은 종목을 억지로 하면 엔도르핀이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 ‘러너스 하이’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할 때 온다 : ‘러너스 하이’는 마라톤이나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숨이 넘어갈 듯 힘든 상황을 넘어섰을 때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고통을 잊고 몸이 붕 뜬 기분과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고 기운이 쭉 빠질 때까지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엔도르핀은 적당한 운동에도 쉽게 나오니까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 러너스 하이는 더 쉽게 온다. 일례로, 댄스스포츠나 힙합댄스 등 춤을 즐기는 사람들은 다른 운동 마니아들보다 쉽게 ‘업’되는 느낌을 받는다. | | Less ‘덜’ 하면 더 나온다 | 남을 향한 신경을 끈다면 우린 누가 나보다 어떤 능력이 더 있고, 무엇을 더 갖고 있고, 뭘 더 하는지 너무 신경 쓴다. 금메달은 기뻐서 울고 은메달은 억울해서 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동메달은 메달을 획득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웃는다. 우리가 받은 축복을 헤아리려면 우리의 위보다 우리의 아래를 봐야 한다. 은메달이 행복해지려면 동메달을 봐야 하는 것이다. 영국 BBC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내가 월급 3백만원을 받고 남이 4백50만원을 받는 경우’와 ‘내가 월급 1백50만원을 받고 남이 1백만원을 받는 경우’ 중 후자를 더 많이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보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는 사람을 보며 자학하는 한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좋아하는 일을 ‘일상’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매일 밤 영화를 다운받아 컴퓨터로 보는 것보다는 짬을 내 한 달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즐거운 기분이 든다. 매주 시간을 낼 수 있다면 매번 연극을 보지 말고 중간에 뮤지컬 같은 다른 공연을 섞어 봐야 행복이 극대화된다. 공포물이든 코미디든 집에서 컴퓨터로 보거나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볼 때보다 영화관에서 볼 때 더 무섭고 더 웃기는 것은 단순히 5.1 서라운드 음향과 큰 화면 때문만이 아니다. 영화 관람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특정 장소에서 하는 특별한 행위일 때 행복 호르몬이 증폭된다.
좋아하는 음식을 가끔씩만 먹는다면 카르보나라 파스타라면 눈이 반짝 뜨인다고 해서 그것만 세 끼 먹는다면, 이미 두 번째 식사부터 뇌는 작동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의 즐거움은 그 빈도가 ‘자주’가 아니라 ‘가끔’이어야 최대화된다. 또 먹으면서 죄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고, 오히려 나를 위한 선물이란 생각이 들어 더욱 행복해진다.
보톡스를 덜 맞는다면 보톡스를 맞은 사람은 ‘진짜 미소’를 지을 수 없다.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가고 눈이 작아지지만 그 속의 눈동자는 빛나고 눈가에 주름이 잡히는 웃음 말이다. 이때 사용하는 근육은 사람이 통제하기 어렵다. 억지로 웃기까지 해야 하는데 진짜 웃길 때도 진짜 웃음을 못 웃는다면 뇌는 또다시 혼란이 온다. 아, 근육이 안 움직이는 걸 보니 별로 안 웃기는 상황인가? 행복 호르몬은 분비되려다가 멈추고 만다. 행복 호르몬을 위해서라도 보톡스 중독은 조심할 일이다.
덜 기억한다면 잉그리드 버그만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좋은 건강과 나쁜 기억력에서 온다.” 좋지 않은 사건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두면 행복지수의 평균이 깎인다.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면 굶거나 극단적으로 섭취량을 줄이는 다이어트(특히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하면 저(低)세로토닌 상태가 계속되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치미는 짜증도 통제하기 어렵다. 심지어 항우울제도 효과가 별로 없다. 탄수화물을 원하는 현상(단것이 당기는 현상도 마찬가지)은 세로토닌 수치를 증가시키려는 무의식적인 작용이다.
예측 불가능하게 산다면 각고의 노력 끝에 하버드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허무함을 느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도파민은 그 상황이 흥미롭다고 느끼게 하는 신호다. 그러나 도파민의 신호가 무슨 뜻인지 경험한 후에는 재미가 없어진다. 그러니 목표의 강도와 종류를 매번 다르게 설정하는 것이 좋다. 또 결과를 경험했을 때보다 기대했을 때 도파민이 더 많이 분비된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새로운 상황을 계속 펼쳐라. 예상할 수 있는 상황보다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목표를 이룬 후보다는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행복 호르몬이 더 많이 나온다.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인체의 신비다.
괴로운 목표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목표는 기쁨을 주어야 한다. 그 목표를 생각할 때 괴롭거나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 기분이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목표는 최대한 긍정적인 표현을 쓰는 것이 좋다. ‘월화는 산책을 하고 수목엔 친구들을 만나고 금요일엔 동호회에 나가 인간관계를 넓힌다’는 식으로 말하고, ‘평일에는 TV를 보지 않는다’는 아쉬운 내용은 말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24시간 꼬박 붙어 있지 않는다면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하루를 함께 지내면 조금쯤 괴로운 생각이 든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이라도, 아이라도 24시간 같이 지내는 건 무리다. 중년 여성들이 은퇴한 남편과 틀어지는 건 종일 집 안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자꾸 부딪히게 되기 때문이다. 산후우울증에 걸리는 산모 대부분은 ‘워킹맘’이 아니다. 말 못하는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다 보면 이 녀석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는 기분이 느껴지면서 우울해지는 거다. 최소 몇 시간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애착 관계가 더욱 순조롭게 형성된다. 우울증으로 아이가 싫어지는 것보다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 때문에 울면서 출근하는 쪽이 낫다. 전업맘이라면 자신만의 독자적인 활동을 해야 행복감이 고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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