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레털레 쫄레쫄레솔레솔레
전라도말에 '털레털레'라는 부사가 있다. 이 말은 힘없이 걷는 모양을 가리키는 말로서, '장담허고 가드니 빈걸로 털레털레 온 것 보소.'처럼 쓰인다. '털레털레'에 대응하는 가장 적당한 표준말은 '털털' 정도가 될 것이다.
표준말에서 부사 '털털'은 (1) 먼지 따위를 털기 위하여 잇따라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나 모양 (2) 아무 것도 남지 아니하게 죄다 털어내는 모양 (3) 느른한 걸음걸이로 겨우 걷는 모양 등을 의미한다. '털레털레'에 해당하는 의미는 바로 이 (3)의 경우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2)와 (3)은 서로 무관한 것은 아니다. 느른한 걸음걸이로 겨우 걷는 모양은 곧 그 사람이 기운이 모두 빠진 것이므로, 그 사람이 몸에서 기운을 죄다 털어낸 결과이다. 표준말에서 '그는 지쳤는지 맥없이 털털 걸어간다'처럼 쓰이는 예가 있는데, 여기서 '털털' 대신 '털레털레'를 바꿔 쓸 수 있다.
그러나 '털레털레'는 '털털'의 의미 가운데 오직 (3)만을 대체할 뿐 (1)과 (2)는 바꿔 쓸 수 없다. 대신 전라도말에서는 이 경우에 '탈탈'과 같은 부사가 쓰인다. 이런 점에서 보면 표준말 '털털'이 가리키는 의미를 전라도말은 '탈탈'과 '털레털레'가 나누어 가리키는 셈이다. '털레털레'와 '털털'을 비교하면 접미사 '레'를 찾아낼 수 있는데, 이 접미사가 바로 힘없이 걷는 모양을 가리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털레털레'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전라도말에 '졸레졸레'나 '쫄레쫄레'가 있다. 이 말은 '먼 애기들이 나만 졸레졸레 따라댕긴다냐?'처럼 쓰이는데, 이때의 '졸레졸레'는 표준말의 '졸졸'과 완전히 같은 용법이다. 표준말 '졸졸'은 원래 물 흐르는 소리를 가리켰던 말인데, 작은 동물이나 사람이 자꾸 따라다니는 모양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반면 전라도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는 '졸졸'로, 따라다니는 경우는 '졸레졸레'로 그 형태가 분화되었다. 이 경우에도 접미사 '레'가 첨가됨으로써 따라다니는 모양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전라도말 '솔레솔레'도 같은 경우이다. 이 부사는 '곳간에 숭케 둔 꼿감을 애기들이 솔레솔레 다 갖다 묵었네'처럼 쓰이는데, 이로 보면 그 의미가 '남 모르게 살며시 지속적으로 드나드는 모양'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솔레솔레'에 대응하는 표준말은 '솔솔'이다. 표준말 '솔솔'은 '물이나 가루 따위가 틈이나 구멍으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모양'을 의미하지만 여기서 번진 의미로 '냄새가 가는 연기 따위가 가볍게 풍기거나 피어오르는 모양'을 뜻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면 '남이 모르게 아주 살그머니 빠져 나가는 모양'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래서 '중대는 몇 명씩 소부대로 나뉘어 적들의 우등불 사이로 솔솔 빠져 나갔다'처럼 쓰이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솔솔'은 바로 전라도말의 '솔레솔레'에 그대로 대응한다. '솔레솔레' 역시 냄새가 가볍게 풍기는 모양을 뜻할 수도 있어, 예를 들어 '어서 방구 냄시가 솔레솔레 난다'처럼 쓰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솔레솔레'는 물이나 가루가 틈이나 구멍으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모양을 가리키지는 않으므로, 표준말에서 '밀가루가 바닥에 솔솔 뿌려졌다'를 전라도말로 바꾸어 '밀가리가 땅부닥에 솔레솔레 뿌레졌다'로 하면 어색한 말이 되어 버린다. 물론 '남모르게 뿌려졌다'의 뜻으로는 가능하지만, 표준말처럼 조금씩 새어나오는 경우를 가리키지는 못한다.
이때에는 전라도에서도 '솔레솔레'가 아닌 '솔솔'로 써야 한다. 그렇다면 전라도말에서는 '솔솔'과 '솔레솔레'가 그 담당하는 의미 영역이 분화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표준말의 '솔솔'과 전라도말의 '솔레솔레' 사이의 관계는 앞에서 본 '털털'과 '털레털레'나 '졸졸'과 '졸레졸레'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전라도말에서는 접미사 '레'를 사용하여 원래의 의성어나 의태어인 '털털', '졸졸', '솔솔'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부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부사 '털레털레', '졸레졸레', '솔레솔레' 등은 걷거나, 따라다니거나 아니면 남몰래 움직이는 모양 등, 동작의 양태를 가리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러한 의미적 특성은 순전히 접미사 '레'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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