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묵광 사진가가 기록한 탑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산천이 깨어나는 여명 속에서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거나, 자욱한 안개를 온몸에 두르고 신비감을 자아냅니다. 천지간에 흩날리는 낙엽을 무심히 지켜보는 탑도 있고, 세찬 비를 온몸으로 맞고 선 탑도 있습니다. 절 마당에서 고요히 내리는 눈을 맞고 있는 탑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어떤 탑은 든든하고, 어떤 탑은 애틋하며, 또 어떤 탑은 웅장한 위용으로 가슴 벅차게 합니다. 이렇듯 사진가는 탑을 감싸고 흐르는 사계를 우리 앞에 생생히 되살리며 현장감을 더합니다.
오래전 이 땅에 탑을 쌓은 이들은 염원했을 것입니다. 나라와 백성이 두루 평안하기를, 그리고 모두가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 피안에 이르기를. 그래서 “탑은 돌로 지은 것이 아니라 간절함으로 쌓아 올린 마음”이라고 이달균 시인은 말했습니다. 정성과 기원이 층층이 쌓여 이루어진 이 탑으로부터, 이 무념무상의 존재로부터 시인은 지극한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들 속마음이야 끓든 말든 탑은 언제나처럼 말이 없지만, 탑이 있는 풍경 속에서 시인이 그러했듯 우리 또한 탑을 마주하는 동안 마음의 모가 조금씩 깎여가길 기대해봅니다. 듣고 싶지 않은 말도, 잊고 싶은 이름도 탑 앞에서라면 모두 씻고 지울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탑은 말한다. “버려진 날들이 서럽거든 내게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