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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 ||||||||||||||||||||||||||||||||||||||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세 얼간이(2009) 아우성 | 2011.10.19 | 조회 5,477 | 추천 0 댓글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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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영화 : 세 얼간이 설령 영화자체의 완성도적인 측면은 좀 부족할지 몰라도 여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며, 성공 할 수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영화 속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분명히 인지해야한다.
#사진1#
내가 본 인도 영화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유일한 것 같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아카데미와 골든 글러브에서 여러부분에서 수상했던 작품이라 유명했는데,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다. 지난 설특선 영화 때 봤는지 그랬다. 이번에 자주 들르는 사이트에서 『세 얼간이』의 짧은 동영상과 댓글에 호평이 이어지길레 보게 됬다.
#사진2#
슬럼독 밀리어네어 군무 장면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면서 영화 중 등장하는 뮤지컬 같은 군무가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본 세 얼간이에도 그런 군무가 등장한다. 이러한 인도 영화를 맛살라 영화라고 한다. 맛살라는 온갖 향신료를 집합해 놓았다는 뜻으로 인도 음식에 자주 쓰이는 향신료다. 이러한 이름이 붙은데는 영화 안에 뮤지컬적인 요소 뿐만아니라 영웅, 권선징악, 로맨스 따위의 것들이 총체적으로 들어있다는 의미다. 처음 볼 땐 어리숙해 보이는 인도식 영어와 낯선 피부색과 외모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그런건 금방 사라졌다. 개인적으로 여주인공이 너무 내 스타일이 아니 었음.
#사진3#
예상 가능한 반전이 조금 있다. 이런걸 두고 인도 영화 자체의 수준을 낮게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엔 나의 인도 영화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래도 괜찮았고 전체적인 스토리도 괜찮았다. 인도는 2009년 아바타가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휩쓸 때 도 가장 인기 있는 영화는 자국 영화였다. 그 영화 바로 이 3 Idiot 었다고 한다.
영화를 통해 인도 문화나 인도 사람들의 생각을 볼 수 있다. 인도는 IT 강국이며 엔지니어들이 대접받는 국가란 생각이 든다. 만약 한국에서 이러한 주제로 영화가 제작 되었다면 분명 공대생이 아니라 의대생이 주인공이 었을 것이다. 물론 인도 역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를 가는지 안가는지는 잘 몰라도 현재 한국에서 공대생들 보단 나은 대접을 받고 있으리란 생각이다. 우수한 인도의 학생들은 영어가 가능하므로 미국 기업에 취직하여 부를 가지길 바란다. 아마 이러한 방법이 자국에서 의사로서 일하는 것보다 더 큰 부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우수한 학생들이 무조건 의대로 몰리니 나쁘고 인도는 공대로 몰리니 착하다는 식의 논리는 옳지 못하다. 어느 국가에서든 평균적으로 봤을 때 제도나 사화 환경이 문제지 사람의 성향이 문제는 아니다.
본격적으로 우리는 과연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란 주제에 대해 생각해볼까 한다.
영화의 배경은 인도 최고의 공대이다. 주인공인 란초다스 샤말다스 찬차드(이하 란초)는 사회적 관습이나 경쟁 위주의 교육 자체에 대해 부정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인물이다. 그에겐 두 명의 친구가 있는데 라주와 프라한이다. 라주는 자신의 노력보다 신에게 빌거나 부적이나 미신 같은걸 맹신하는 인물이며, 프라한은 사진을 좋아하고 재능도 있지만 부모님의 강권에 의해 공대에 진학했다. 반면 란초는 어렸을 때 부터, 기계를 좋아했고 공대생이 되었다. 라주의 아버지는 우체국을 다녔으나 전신이 마비된 후 집에 있으며 빈민층이다. 프라한은 보통 수준의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 두명의 친구들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실제로 우리들은 성적에 맞추어 전공을 선택하고, 성적에 맞추어 꿈을 꾼다. 전교 1등을 하는 친구는 당연히 의사가 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진4#
비루 교수는 이 공대의 총장이다. 그는 경쟁심이 매우 강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천재다. 그는 신입생들을 모아두고 이런말을 한다. " 뻐꾸기는 자신의 둥지에 알을 낳지 않는다. ... 뻐꾸기의 삶은 살인으로 시작해. 자연의 이치지 경쟁하거나 죽거나. 너희들도 뻐꾸기와 같다." 그는 수십만 건의 입학원서를 쏟아 부으며 이것들이 너희가 우리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깨트린 알들이라고 한다. "기억해라. 인생은 레이스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짓밟힐거다."
우리는 대부분 프라한 처럼 생각한다. 프라한은 부모님의 권유에 의해 공대에 진학했지만 그러한 권유의 바탕에는 사회속에서 그 직업이 가지는 인식에 기인한다. 우리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순서대로 차례차례 선반에 놓여지게 된다. 의사,판검사 등에 의해서 말이다. 세 얼간이는 이러한 사회를 비판한다. 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거나 배우지 않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순서에 따라 직업이나 전공을 선택하고 있는가?
또한 란초는 지나친 경쟁위주의 사회 역시 비판한다. 조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학장에게 받은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하게 된다. 그리고 란초는 학장에게 가서 현재 교육방식이 잘 못됬다고 말한다. "무슨 1위를 말하는 거죠? ... 점수, 취업 그리고 미국내 취업에만 관심이 있죠. 저희는 공학을 배우기보다는 점수 잘 받는 방법만 배우고 있습니다." 이에 화가난 총장은 친구들이 있는 교실로 란초를 대려가 그럼 니가 한번 수업해 보라고 합니다.
#사진5#
이게 65년생의 얼굴이라니..
고민하던 란초는 공학용어사전 중간 엘 펴고 칠판에 두 단어를 적습니다. 그리곤 사람들에게 책을 참조해도 좋고 뭘 해도 좋으니 30초 안에 이 두 단어에 대해 정의를 내려 보라 합니다. 그리고 1등과 꼴지를 체크하겠으며 다 한 사람은 손을 들으라고 합니다. 모두 열심히 하지만 30초가 흐르는 동안 아무도 해당 질문의 답을 해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란초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무도 못 찾았나요? 1분만 돌려 생각해보죠. 제가 질문을 드렸을 때 설렜나요? 호기심이 생겼나요? 새로운 걸 배운다는 사실에 흥분 됐나요? 아무도 없나요? ... 모두들 미친듯이 레이스만 펼쳤죠. 이런 방식이 무슨 소용 있나요? 만약 제일 먼저 풀었다고 해도 그게 지식을 늘게 해주나요? 아니요 스트레스만 주죠. 여기는 대학입니다. 스트레스 공장이 아니죠. 서커스 사자도 채찍의 두려움으로 의자에 앉는걸 배우지만 그런 사자는 잘 조련됐다고 하지 잘 교육됐다고는 안 합니다. ... 저는 단지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말씀드린거에요."
우리는 어떤 공부를 할 때 그것이 필요 할때 보다 열정적으로 공부를 하게 된다. 이를 테면 배가 고픈데 재료와 음식만드는 법만 있다면 우리는 그 음식 만드는 법을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서 하는 공부보다 우리를 가장 열정적으로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이를테면 내가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누군가에 대해 알고자 하는 마음 같은 거라고나 할까? 따라서 우리는 사랑하는 일을 할 때 비로소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이것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처럼 작용하여, 우리가 가장 원하는 일을 했을 때, 사회 전체의 총 효용이 커질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정 부분 (왜 전적이 아니라 일정 부분인지는 뒤에서 설명할 것임)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적으로도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러한 진로선택에 관한 문제는 예전 부터 생각해 왔던 주제인데 여기에는 영화 속 란초가 주장하는 이상과 달리 몇가지 문제가 따른다. 영화는 이상을 표현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이상을 좇되, 현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첫째, 우리가 사랑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의 숫자와 세상이 요구하는 직업의 숫자가 일치하느냐는 문제다. 란초의 주장 처럼 만약 우리 모두가 우리가 사랑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한다면 과연 세상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예를 들어 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굶어 죽고 말 것이다.
우리는 어떤식으로 직업에 대한 꿈을 가지는가? 좋아하는 것,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동경은 우리를 그 직업을 꿈꾸도록 만든다. 마천루에 대한 동경은 건축가로, 남을 치료하는 것을 아름답게 생각한다면 의사로, 만화에 대한 사랑은 만화가로 이끌곤 한다. 그렇다면 경비라는 직업은 어떨까? 우리는 어떤 것을 사랑해야 경비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공장의 단순 노동자들은 어떨까? 우리는 그러한 직업을 수행해 나가는 사람이 필요하다. 모두가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도 누군가는 해야한다.
둘째, 우리는 어렸을 때 부터 모든 직업에 대해 알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의 꿈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얻는다. 병원에 가서 의사를 보기도 하고, 학교를 다니며 선생님을 만나기도 한다. 부모님의 직업으로 부터 배우기도 한다. TV를 보면서 많은 간접경험을 할 수도 있다. 예능프로를 보며 연예인을 꿈꿀수도 있고, TV 드라마를 보며 그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직업을 동경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보편적으로 겪는 되는 경험이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모든 직업에 대한 경험을 가지지 못하며 우연한 기회에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꿈을 만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자신의 재능을 진정으로 발휘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한 경험을 하지 못할 수 도 있다.
셋째, 설령 좋아하는 일을 목표로 할 지라도 자신의 능력이 받쳐주지 않을 수 있다. 의사가 되고 싶어 그 직업을 목표로 잡았지만 생각처럼 공부를 잘 해내지 못한다면? 또는 이것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를 경우에도 문제가 된다.
넷째, 생산적인 어떠한 일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계속 겹치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지만)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모두가 여행가가 될 수는 없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모든 사람이 가수가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아이러니들로 부터 우리는 결국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전공 서열화에 따라 성적순으로 입학하는게 옳음을 말해주는가? 아니다. 우리는 진로선택에 있어 사람은 자신이 가장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해야한다. 즉 자신이 그분야에서 최고가 아니고 돈을 많이 못번다고 할 지라도 자신이 비교우위에 있는 것을 해야한다. 그래야 나라 전체 로서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가장 행복하다. 이러한 것을 알기 위해 어릴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단순한 공부가 아닌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게 해야한다.
흔히 어른들은 장사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느냐 또는 운동선수로 성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 또는 주식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등 성공확률이 낮은 직업을 가지려 하지 말고 안전하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판검사나 의사가 되는게 낫지 않겠냐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러한 직업 즉 공부를 잘하여야 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공부하는 것 조차 확률적으로 성공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많은 학생들이 중고등학교에서 의대나 법대를 가고 싶어 하지만 그 숫자는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즉 김연아도 우리나라 여러피겨 선수중에 한명이고 박태환도 한국의 수많은 수영선수 중에 한명이지만 성공했다. 그리고 워렌 버핏, 코스톨라니는 주식으로, 샘 월튼은 유통업으로 성공했다. 이러한 성공의 바탕은 복권과 같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잘하는 것을 올바로 찾아서 한것 때문이다. 의사가 되고 판검사가 된 사람들은 공부를 잘했던 사람이고, 김연아, 박태환 같은 운동선수들 역시 각자 자기가 잘하는 분야를 잘 찾아간 사람일 뿐이다. 단지, 공부는 일종의 옵션중 디폴트 같은 것이다. 무언가 선택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보면 자연스럽게 공부라는 길을 걷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람은 누구나 사람들이 선망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려 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물론 자신의 능력 또는 자식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무작정 어떤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단순히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피겨를 매우 좋아하는 아이가 있을때, 피겨로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인 상황에서, 잘하긴 잘하지만 성공 할 정도는 아니라고 할 때는 다른 가능성을 먼저 살펴보고 더 나은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피겨를 계속해야 한다. 즉, 설령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의 최고가 될 수 없다 하더라도 가장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역에서 나타나는 비교우위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한번은 아버지와 이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딸이 김연아 처럼 피겨를 좋아하고 능력도 있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 정도라 할 지라도 의대를 보내 공부를 시키겠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다양한 경험을 거친후에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어른들은 세상을 살아보니 이런게 역시 제일 낫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생긴 것 같다.
지금까지 논의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가장 잘 한다는 가정하에 이야기 해오고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보다는 잘하는 것을 해야한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은 바뀌기 쉽지만 잘 하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러한 개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특정 직업으로 부가 지나치게 몰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정의론의 한 분야에서 따로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의 정부의 개입은 사회주의적이며 개인주의와는 반대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구분조차 제대로 못하며 그것이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는 지는 알지 못한채 그저 "저거 나쁜거 아냐?"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일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미 사회주의화 되어있다.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같은 것은 물론 이며 그 밖의 다양한 정책들도 마찬가지다. 여하튼 이것이 올바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리라 본다.
#사진6#
뒷 배경이 정말 장관이다. 캡쳐는 왠지 포토샵 같이 나왔네
영화의 마지막에 란초는 결국 성공한다. 그의 말대로 재능을 따라가다 보면 성공은 뒤따라 올까? 얼마전에 대화에서 성공하는데엔 꾸준히 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갔었다. 아마 그 지속성을 유지시켜 주는 힘의 근원은 성공에 대한 욕망이나 그 일을 좋아함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먼 훗날, (제레미 리프킨의 책 제목이기도 한), 기계에 의한 "노동의 종말"이 오게 된다면 그 땐 정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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