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씨요!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값을 치르려 할 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건넬 때, 표준말로는 '여기 있습니다' 정도의 말이 쓰이지만, 전라도에서 늘 하는 말은 '예씨요'이다. 표준말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태로 '옜다', '옜네', '옜소', '옜습니다' 등이 있는데, 이 말들은 모두 '예'에 '있다', '있네', '있소', '있습니다' 등이 결합한 것이다.
여기서 '예'는 '여기'의 준말로서, '저기'가 '제'로, '거기'가 '게'로 줄어드는 현상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전라도 말의 '예씨요'도 '예'와 '있씨요'로 분석할 수 있을텐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있씨요'이다.
'있씨요'의 '-씨요'는 전라도 말에서 명령을 나타내는 어미이다. '요리 잔 오씨요'라든가 '그만 주무시씨요' 등에서 보이는 '-씨요'는 모두 상대에 대해 어떤 행위를 할 것을 요청하는 명령법의 어미인 것이다. 이 '-씨요'는 원래 '-읍시오'에서 /ㅂ/이 탈락되어 생겨난 것인데, 기원만을 따지자면 '어서 옵쇼'에서 보이는 '-읍쇼'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명령을 뜻하는 어미로 쓰이는 '-씨요'가 '있씨요'에서는 결코 명령으로 쓰이지는 않고 있다. 표준말의 '옜다'나 '옜소' 등에 보이는 '-다'나 '-소'는 상대에 대한 행위를 요청하는 표현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서술의 의미만을 가진다.
풀이하자면 '여기 있다'나 '여기 있소'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라도 말의 '예씨요'도 '여기 있소' 정도의 뜻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이런 용법은 명령법이 아니라 서술법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에 대해 어떤 행동을 요청하지도 않는 전형적 서술법 상황에서 왜 명령법 어미가 쓰인 것일까. 혹시 '예씨요'를 말하는 사람이 '돈 여기 있소'라고 말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내 돈 받으씨요'라는 명령의 속뜻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말은 서술법이지만 마음 속 뜻은 명령법이니 말과 마음 사이에 혼동이 생겨날 만도 하다.
그래서 '예 있소'라고 말하려다가 '내 돈 받으씨요'라는 의미가 겹치면셔 두 문장의 합성형인 '예 있으씨요', 즉 '예씨요'로 발음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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