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 제가 당했는데”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 피고인 고유정(36)이 경찰에 긴급체포된 순간부터 오히려 자신이 당했다며 우발적 살인임을 주장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한 정황이 드러났다. 계획적 범행을 자신하는 검찰과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28일 세계일보가 입수한 고유정 체포 당시 모습이 찍힌 영상을 보면 고유정은 지난 6월 1일 오전 10시 32분 충북 청주시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잠복 중이던 제주동부경찰서 형사팀 등에 의해 전 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고유정은 경찰이 ‘살인죄로 긴급체포합니다’라며 미란다 원칙 고지와 함께 수갑을 채우자 “왜 (이러세)요? 그런 적 없는데. 제가 당했는데” 라며 어리둥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고유정은 종이상자를 들고 있었다. 고유정은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 차에 올라 탈 때엔 현 남편을 찾기도 했다. | 고유정이 지난 6월 1일 충북 청주시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잠복 중이던 제주동부경찰서 형사팀 등에 의해 전 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한 혐의로 긴급 체포되고 있다. 동영상 화면 캡처 |
고유정은 "지금 집에 남편 있는데 불러도 돼요?"라고 물었다.
긴급체포 당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호송차에 오른 뒤 검거조로 함께 급파된 여경이 ‘전 남편을 죽인 게 맞느냐’고 묻자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내가 죽였다’며 담담하게 범행을 시인했다. 경찰은 고유정을 데리고 아파트에 올라가 남편에게 고씨의 피의 사실을 알렸다. 고유정은 남편에게 울면서 ‘미안해 성폭행을 당할 뻔해서 우발적으로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주거지 압수수색을 통해 고유정 차량 트렁크와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함에서 살인과 시신을 훼손하는데 사용한 범행도구 일부를 찾아냈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그의 치밀한 계획이 일주일만에 물거품이 되고 만 순간이었다.
경찰은 고유정이 전 남편과 함께 있었던 제주도 한 펜션에서 발견한 혈흔이 실종된 강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회신에 따라 고씨를 살인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강씨 실종신고 이후 나흘만이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범행하고 경찰의 수사망을 빠져나가려 했던 고유정은 살인과 사체손괴·은닉 혐의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다.
고유정 측은 지난 23일 제주지법에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수박을 썰고 있는데 전 남편이 성폭행을 시도하자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고유정이 범행도구 인터넷 검색, 수면제(졸피뎀) 구입, 고도의 평정심을 갖고 펜션 업주와 통화한 점, 몸에 난 상처가 타인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감정 결과, 성폭행을 당한 것처럼 꾸민 문자 메시지 내역 등을 볼 때 계획적 범행임을 자신하고 있다. 고유정은 5월 18일 제주에 가기 전 10일부터 16일 사이에 자신의 휴대전화 2개와 PC에서 졸피뎀, 혈흔, 뼈의 강도, 뼈의 무게, 제주 바다 쓰레기, 호신용 전기충격기, 니코틴 치사량, 수갑, 키즈펜션 CCTV 등을 검색했다.
피고인 고유정이 출석하는 첫 정식재판은 오는 8월 12일 제주지법에서 열린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