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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센터도 갔었는데…봉천동 모자 비극 못 막은 ‘복지의 벽’
글로 | 2019.08.19 | 조회 567 | 추천 1 댓글 0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망사건' 같은 사회안전망 밖에서 목숨을 잃는 취약층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전수조사 같은 땜질 처방만 반복한다면, 가난과 고립으로 인한 비극은 또 발생할 것이다.” 
 

19일 이름을 밝히길 꺼린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최근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긴 서울 관악구 봉천동 북한이탈주민 모자 사망 사건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부검 결과가 나오지 않아 명확한 사인은 알 수 없지만, 숨진 한아무개(42)씨와 여섯 살배기 아들은 굶주림 때문에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 한씨는 월 최저금액으로 책정된 건강보험료를 17개월간 내지 못했고, 임대아파트 월세와 공과금도 1년 가까이 밀린 상태였다. 이날 <한겨레> 인터뷰에 응한 사회복지 공무원, 복지기관 관계자, 빈민지원 단체 활동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왜 국가에 적극적으로 구조 요청을 하지 못하는지 되짚어보는 것이 절실하다고 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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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부터 서울시는 사회복지 공무원을 2배 가량 늘려, 직접 주민들을 만나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사업을 진행해왔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찾동 사업을 전국 읍면동으로 확대한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를 기반으로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에 건보료 및 공공주택 임대료 체납 정보 등 수집 정보를 더욱 늘려 위기가구를 세밀하게 선별하고 지자체 시행 집중조사를 늘려 ‘어떻게든 취약층을 찾아내겠다’는 취지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사건 이후 내놓은 조처도 비슷하다. 16일 복지부는 봉천동 사건과 유사한 어려움을 겪는 취약층을 발굴·지원하기 위한 긴급 실태조사를 광역자치단체에 요청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눈 여겨 볼 지점은 숨진 한씨가 지난해 주민센터에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고, 주민센터가 한씨 집 앞까지 찾아간 적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왜 한씨 모자는 사회안전망에 들어갈 수 없었을까. 

■ 주민센터로 찾아갔지만…

고인의 탈북을 도운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 무렵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한씨에게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해보라고 조언했고, 이러한 조언에 따라 한씨가 주민센터를 찾았다고 전했다. 주민센터에 갔다 나오던 길에 한씨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 확인서가 필요하다더라’며 답답함을 토로했고, 이에 화가나 관악구청에 항의 전화를 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관악구청 관계자는 “담당자는 고인에게 이혼 확인서를 요구한 적이 없다고 한다. 시스템에 입력된 내용을 보니, 지난해 10월 방문해 아동수당·가정양육수당(소득과 관계없이 가정에서 영유아를 돌보는 가구에 지원) 신청을 했고 12월엔 아동수당과 가정양육수당 입급 계좌 변경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당시 아동수당 신청서엔 ‘이혼 관계인 경우 표기하고 확인서 등 증빙서류 제출 필요’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이러한 안내가 와전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한씨가 자신의 사정을 주민센터에서 얼마나 자세히 설명했는지, 또 담당 공무원이 얼마나 쉬운 언어로 상담을 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아동수당 신청 과정에서 한씨네 가구 소득인정액(재산 및 소득합산)이 없는 것이 확인됐지만 다른 복지 제도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 소득인정액은 복지 지원이 아닌 아동수당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인지를 가늠하는 정보로만 활용됐다. 아동수당 도입 당시 소득 하위 90% 가정 아이들에게만 지급하기로 한 까닭에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골라내는 데 행정력이 집중된 상황이었다. 

지난 4월엔 주민센터가 한씨 집을 찾아간 적도 있었다. 서울시는 아동이 위기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닌지 살피기 위해 양육수당을 받는 가정 방문상담을 진행한다. 이에 따라 한씨 집을 찾아갔으나, 집 안에 아무도 없어 현관문에 연락 달라는 안내문을 붙이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아동을 살피보겠다는 방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으나, 한번 더 찾아간다든가 하는 후속 조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복지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

한씨가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다면 그 과정은 수월했을까? 아들과 자신의 부양의무자인 남편이 실제로 부양을 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는 서류 제출을 요구받았거나, 실제 이혼 상황이 맞는지(서류상 이혼은 올해 1월)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 부정수급을 막겠다며 위장이혼인지 아닌지 등을 엄격히 따지기 때문이다. 빈민지원 단체 활동가들을 취약층이 사회보장 제도에 접근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최후의 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 각 급여 수급자로 인정받는 절차는 가시밭길이다. 

빈곤사회연대와 한국도시연구소가 기초생활수급자 8명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기반으로 발간한 올해 3월 발간한 연구보고서 ‘공공부조의 신청 및 이용과정에서 나타나는 빈곤의 형벌화 조치연구’에 따르면 수급 신청을 위해선 신분확인 서류, 부양의무자를 포함한 금융정보 등 제공 동의서를 필수적으로 읍면동 주민센터에 제출해야 하며, 서류 접수 뒤 시군구 통합조사관리팀이 소득·재산조사 및 방문조사를 진행한다. 그런데 이러한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서류와 증빙을 요구 받거나 죄인 취급·냉대를 받는 불쾌한 경험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 역시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다. 한 새터민은 “따뜻한 공무원들도 있지만 세금 축내는 사람으로 취급당한 적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학력이 높지 않고 나이가 많은 경우엔 필요한 서류 준비에 어려움을 겪다 수급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올해 관악구청은 수급 신청자로부터 가족관계해체사유서(부양의무자가 실제 부양하지 못함을 설명하는 서류)를 받으면서, 서류 내용이 사실이 아닐 경우 법적 책임 함께 지겠다는 내용에 보증인 사인을 받게 했다. 이러한 서류 양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으나, 관악구에선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복지부 검토 이후 이러한 서류 양식 사용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빈민지원 단체들은 복지 사각지대를 유발하는 핵심 문제로 무엇보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꼽는다. 소득·재산 수준이 수급 기준에 부합할 정도로 가난하더라도 일정 이상의 소득·재산을 가진 1촌 직계혈족(부모·자녀) 및 그 배우자가 있으면 생계급여·의료급여를 받을 수 없도록 한 제도이다. 지난해 10월 주거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고, 올해 1월부터 부양의무자 가구에 노인·중증장애인이 있을 경우에만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기준은 다소 완화된 상태긴 하다. 복잡한 복지 제도는 일선 공무원들의 업무 부담도 가중시킨다 익명을 요구한 사회복지 공무원은 “부양의무자의 부양 능력 있음·미약·없음을 선별하는 과정 자체에 행정 인력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더구나 해마다 수급자 뿐 아니라 부양의무자 재산·소득 변화를 매번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급한 사람 손에 신청서만 쥐어주는 행정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복지 행정은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으로 생계 유지가 곤란한 저소득층에게 필요한 복지를 신속히 지원하기 위한 긴급복지 지원제도에서도 엿보인다. 서울시의 한 자치구 주거복지센터장은 “최근 교정 시설에서 막 출소해 찜질방에서 살던 분이 주민센터를 찾아갔는데, 기초생활수급 신청서만 손에 쥐어주고 돌려보냈다더라. 주민센터에 긴급복지 지원을 왜 안하냐고 물어보니 서울형 긴급복지 지원(위기 상황이나 법적·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 지원)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래서 국가 긴급복지 지원이 있지 않느냐고 하니 그제서야 처리가 이루어지더라”며 “거처가 없어 급하게 찾아간 분에게 대응을 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 예산 문제인지 아니면 인력 문제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보장이 이루어지는 최일선은 읍면동 주민센터로, 이러한 기관은 행정안전부 소속이다. 적극적인 복지 행정을 위해선 주민센터가 지역주민의 어려움을 살필 수 있는 기관으로 탈바꿈해야 하지만, 업무 처리 방식은 옛 동사무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사람들이 주민센터에 찾아갔을 때 우호적 분위기를 경험하거나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게 되면 위기 상황에 닥쳤을 때 보다 적극적인 구조요청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현재 인력수와 중앙부처 통제 시스템, 내용은 부실함에도 가짓수만 많은 한정된 복지 자원으로는 이러한 문화를 다지는 데 한계가 크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공무원)가 법·제도 밖에서 일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위기 상황에 능동적인 대응을 하도록 일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대폭 확대돼야 한다. 또 공무원들이나 지역 사회가 공통적으로 발견한 제도적 한계, 사각지대 문제를 정부 정책에 반영해 실질적인 개선을 이끌어내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 이웃 연결망은 성과 사업으로 구축되지 않는다

한씨는 지난해 10월 봉천동에 전입신고를 한 이후 지역사회나, 새터민 네트워크와도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두영 관악주거복지센터장은 “고인이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본인 돈이라는 것조차 몰랐던 것 같다. 이웃과 교류가 있었다면 이런 정보라도 접할 수 있었을 테고 그렇게 쓸쓸히 숨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고인이 살던 임대아파트 단지의 복지 자원은 지역아동센터 하나 뿐이다. 센터 직원들은 적은 인원으로 아이들 돌보기도 버겁다. 주민센터 공무원들도 처리해야 할 민원이 너무 많은 게 보인다. 행정만으론 한계가 있어 임대아파트 내부에서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란 논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 역시 이러한 민간 협력을 강화해 위기가구 발굴·지원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주민들간 자율적인 교류가 활발히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민간 의견을 존중해 정책에 반영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다. 공동체 문화를 되살리는 건, 단시간에 일구기 어려운 일이지만 형식적인 모임만 한번 해도 예산이 투입된 사업 성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 복지가 권리로 자리매김 돼야

헌법에 따라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복지는 권리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사회복지 공무원들이나 현장 활동가들 말을 들어보면, 정말 도움이 필요한 경우인데도 복지 신청을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은 복지 대상자들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지 못한 인생 실패자나 낙오자로 여기는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주 과정에서 겪는 여러가지 폭력적인 상황을 경험하는 탈북 여성들의 경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상당히 어려워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비롯한 복지 제도가 누구든지 힘들 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로 사람들에게 인식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어 취약층 낙인만 강화하는 모양새이다. 취약층의 사회보장 접근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제거하는 방안에 대한 지금부터라도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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