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이 넘은 이 여자. 내 마누라다. 인생 말년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처지가 <을>에서 <갑>으로 뛰어 올랐다고 말끝마다 꼬장한 폼을 잡으며 으스대는 여자다. 사실은 우리 부부사이에 <갑>과 <을>은 애초부터 없었는데도 굳이 자기는 평생을 <을>로 살아왔다고 억지를 부리며 남편인 나에게 눈을 흘기는 여자다.
각설하고, 내 마누라, 이 여자는 평생 수영으로 다져진 몸매에 맞게 아직도 새파랗게 젊은 여자아이들의 캐주얼웨어를 즐겨 입는다. 스키니진, 또는 미니스커트, 치렁치렁한 갈색머리, 컬러풀한 구두. 도무지 몸 전체 어느 한군데라도 칠순 넘은 할미의 자태를 찾아볼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할 땐 퍽이나 신기한 여자임에 틀림없다. <나는 팔불출 맞다. 이 일을 어쩌나? 쯧쯧... 못난이 할배>
그러나 오늘 저녁밥상에서 흘낏 쳐다본 마누라의 얼굴에선 여기저기 굵고 가는 주름살들이 내 동공이 좁다할 만큼 커다랗게 클로즈업되어 왔다.
“왜 빤히 내 얼굴울 쳐다 봐? 나, 늙었다고?” “내가 쳐다보긴~ 뭘...” 나는 이내 꼬리를 내렸지만 가슴은 콩닥 뛰었다. “그러기에 나이 한 살 더 먹기 전에 성형한다고 했었잖아. 난 몰라 몰라잉~!”
이 여자, 칠순이 훨씬 넘은 할미 맞아? 시쳇말로 떠돌아다니는 ‘할미 공주! 할미 공주’ 하더니 바로 내 마누라가 이렇게도 철없는 ‘할미 공주’일 줄이야. 나는 밥숟갈을 가만히 내려놓은 후 거실 창문을 열고 베란다에 나가 꽉 막혔던 한숨을 토해냈다.
여자는 대체로 한번 버킷리스트를 정하면 나이 먹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나보다. 대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