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남을 속여 돈을 벌 궁리만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기 범죄는 모두 27만여 건이 발생했습니다. 돈 벌려고 남을 속이는 일이 매일 730건 넘게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사기 공화국'이라는 오명과 함께 속지 않는 법을 다룬 책까지 나올 정도지만 이를 비웃듯 사기 수법은 날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 부산, 인천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동산 사기도 교도소에서 연을 맺은 사기꾼들이 범행을 고안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사기 전과가 많은 두 남녀였는데 펜팔을 주고받다 출소 후 범행을 함께 한 걸로 전해졌습니다. 목표는 은행, 대출을 노렸습니다. 돈을 마구 빌려 집을 사들였습니다. 돈을 빌리는 데도, 전입 신고 제도에도 허점이 있다는 것을 간파한 것입니다.
● 대출 규제 '8.2 대책'…허위 전세대출로 뚫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3개월 만인 2017년 8월 2일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시장에 내놨습니다. 대출을 어렵게 해서 쉽게 집을 사지 못하게 하는 정책이었습니다.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 내에서는 주택 담보 대출을 세대당 1건만 받을 수 있게 했고 금액도 40% 정도로 제한했습니다. 기존 주택 담보 대출이 없는 무주택 소유자가 6억 원이 넘는 집을 사려면 집 값의 60%는 갖고 있어야 집을 살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부산 지역에서 사기를 벌이다 경찰에 붙잡힌 일당은 이런 규제를 무력화해 맘껏 돈을 빌렸습니다. 무려 100억 원 정도의 대출을 받았는데 사들인 집도 30채가 넘습니다.
일당은 먼저 전세 자금 대출을 이용했습니다. 실제 구매 과정을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부산의 2억 1천만 원짜리 오피스텔. 일당은 계약금 9천만 원만 주고 잔금은 전세 자금 대출을 받아 주겠다며 매도인과 거래를 맺었습니다. 하지만 전세 자금 대출을 받는 사람은 일당과 범행을 공모한 상태였습니다. 전세 계약서에 이상이 없고 확정일자만 받으면 은행이 대출을 실행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 1억 2천만 원의 전세금은 은행이 매도인에 바로 송금시켜줬고 일당은 정상적으로 소유권을 넘겨받았습니다.
돈을 챙기는 건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일당은 공모한 전세 세입자를 전출시켰습니다. 다른 금융기관을 찾아가 주택 담보 대출을 받기 위해서였지요. 전세 자금 대출은 해당 집이 아닌 세입자에게 실행되는 것이어서 전출해버리면 다른 금융기관에서는 해당 집에 전세 대출이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집 한 채를 두고 두 개의 대출을 실행한 셈입니다. 1억 6천만 원 정도의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았는데 이런 식으로 해당 부산의 오피스텔에서만 네 채를 사들였습니다. 9천만 원으로 8억 원 상당의 집들을 사고도 3억 원 정도는 현금으로 챙긴 겁니다.
집 한 채를 두고 여러 번 돈을 빌리기 위해 소유주를 계속 변경한 사례도 있습니다.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가 그런 경우인데 2억 원 정도의 전세 자금 대출을 받아 집을 사들인 뒤 소유주를 네 번이나 바꿨습니다. 양도세를 내지 않기 위해 차익은 거의 없이 매매 계약서를 맺었는데 1.1% 정도의 취등록세만 내고 개인과 3곳의 금융기관으로부터 7억 원이 넘는 돈을 빌렸습니다. 모두 1년도 안 돼 벌어진 일입니다.
● 멀쩡한 세입자도 전출시켜…전입신고 허점 노렸다
일당의 수법은 간단했습니다. 허위 전세 계약으로 대출을 받고 세입자를 전출시켜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은 것입니다. 실제 대개의 경우는 전세 세입자가 사전에 공모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범행에 가담하지도 않았는데 전출돼버린 경우가 5건이나 있었습니다. 그냥 주민센터를 찾아가서 먼 친척이라고 소개 한 뒤 "이제 같이 살게 될 텐데 세대주 변경을 하러 왔다"고 해서 세대주가 된 뒤 전출해버린 것입니다.
현행 전입신고 제도는 세대주가 변경될 경우 기존 세대주와 세대원의 확인이 필요하지만 서명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신분증이나 도장도 필요 없기 때문에 일당은 손쉽게 세대주가 돼 전출해버렸습니다. 세대주가 전출하면 세대원도 함께 이동하기 때문에 주택 담보 대출이 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전입 신고 제도의 확인이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처벌 규정이 있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대주가 변경되거나 전출될 경우 기존 세대주나 세대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해주는 서비스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 "경매 넘어가도 손해는 없다"…범행 계속되는 이유
부산에서 경찰에 붙잡힌 일당은 공인중개사 등을 포함해 모두 40명 정도 규모입니다. 주범은 매매 계약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임대인과 임차인 역할을 할 사람을 내세워 범행을 계속했습니다. 임대인, 임차인 역할을 한 사람에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아야 1천만 원 정도의 수고비를 지급했는데 억 대의 대출을 받은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습니다. 게다가 대출 이자를 못 갚아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도 손해 볼 일은 없었습니다.
실제 아파트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여러 채가 대출 상환을 못 해 경매에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경매에 넘어가도 우선권은 주택 담보 대출을 실행한 금융기관이 갖게 돼 전세 자금 대출을 실행한 은행은 돈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은행에 보증을 해 준 손해보험사가 책임을 전부 떠안았습니다. 일당은 자신들이 받은 주택 담보 대출을 고스란히 챙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 주범은 "사들인 집이 한 채에 수천만 원씩만 올라도 수십 채를 사들였기 때문에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고 또 실패하더라도 자기들이 책임지는 것은 전혀 없기 때문에 범행을 계속했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부동산 사기가 범죄임을 아는 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전세 대출로 집을 사고 세입자가 전출한 사이 주택담보 대출을 받고 또 대출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조사를 시작할 수 있는 건데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실제 똑같은 수법의 범행이 서울과 경기, 인천에서도 벌어지고 있어 경찰은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택에 대한 대출 현황을 금융권이 공유할 수 있게 하면 이런 범행은 쉽게 막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기꾼들은 허점을 찾으려 계속 노력하겠지만 일단 확인된 허점은 빨리 바로 잡아야 합니다.
장훈경 기자(rock@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