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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눌러 옷 벗겼다"는데..법원은 왜 죄 아니라고 했을까 서현마미 | 2019.09.24 | 조회 394 | 추천 0 댓글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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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죄 패러다임을 바꾸자] 부산고등법원(창원제1형사부)은 지난 4월 조카를 3회 강간, 1회 강제추행한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기소된 ㄱ씨에게 일부 유죄를 인정했던 1심 판결을 뒤엎고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전통적인 ‘최협의설’에 따른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면서 피해자가 “‘맨투맨티를 슥 벗기고 스키니진을 확 벗기고’라는 진술에 대해 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했”고 “양손을 잡거나 몸으로 눌러” 옷을 벗겼다는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한 상태에서 맨투맨티나 스키니진을 벗겼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진술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피해자가 객관적으로는 반항하거나 도망을 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피해자가) 주관적으로 더 큰 일이 일어날까봐 무섭게 생각하고 당황스러워 그렇게 못했다”며 강간죄가 성립되기 어렵다고 봤다.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간이 아니란 논리다. 현재 형법 297조는 강간죄를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를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때 판단기준은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강간 혐의를 인정하는 이른바 ‘최협의설’을 따른다. 부산고등법원의 판결처럼, ‘최협의설’에 따른 판결은 성폭력 상황에서 피해자의 저항 여부와 그 정도를 따져묻게 된다. 하지만 이런 기준이 판결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비슷한 내용의 사건이지만, ‘유죄’가 나온 판결도 있다. 대전고등법원(제1형사부)은 지난 3월 “피고인의 말과 행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반항을 하게 되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생기게 하는 말과 행동으로, 이로 인해 피해자는 항거가 불가능하거나 또는 현저히 곤란한 심리적 상태에서 피고인이 성관계를 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못했다”며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성폭력 상황에서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반항을 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함께 고려한 것이다. 이처럼 직접적인 폭행·협박의 존재와 저항 여부를 엄격하게 따지는 판결과 물리적·직접적 저항이 어려운 전후 맥락을 함께 보는 판결이 혼재한다. 예컨대 서울고등법원(춘천제1형사부)은 지난 5월 “피고인이 마지막으로 피해자를 폭행한 때로부터 약 28분, 피해자를 폭행할 것처럼 위협한 때로부터 약 15분이 지난 시점에 피해자와 성관계를 했”고 “위협 이후 약 15분 동안 피고인과 피해자가 손을 잡고 포옹을 하거나 입을 맞추는 모습이 확인”되기 때문에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서울중앙지법(제29형사부)은 지난 1월 “피해자가 피고인의 신체 접촉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 함께 촬영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성범죄 피해를 당한 후 가해자와 단둘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향후 겪게 될 수 있는 추가적인 피해나 더 큰 유형력의 행사를 우려하고 이를 모면하기 위해 가해자를 자극하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전문가들은 법원의 이런 비일관성이 성폭력 범죄에 대한 현실인식과 법체계의 괴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봤다.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을 대리해왔던 최주영 변호사는 “각각의 사건에 따라 상세한 여러 요건들이 고려가 됐을 것”이라면서도 “많은 재판부가 사회적인 분위기에 맞춰서 어느 지점, 어느 요소까지 고려해야 되나 고민하고 흔들리는 지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환 변호사는 “‘최협의설에 따른 폭행 또는 협박’이란 기준은 변하지 않은 채 판례가 비난받다 보니 내부적으로 해석 기준을 완화한 것”이라며 “동의 여부부터 (최협의설에 기반한) 저항 여부까지 모두 ‘최협의’란 이름으로 다 포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의 판단기준을 좀 더 명확히 하고 법적인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동의 여부’라는 기준을 추가로 도입하는 ‘비동의 간음죄’ 도입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최 변호사는 “지난해부터 재판부의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공론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사실 ‘성인지 감수성’은 사회적·문화적인 변화를 법이 따라가지 못해 인용되는 단어로 적절한 법률 용어는 아니다”라며 “오히려 이런 변화를 반영해 ‘비동의 간음죄’가 법적으로 도입된다면 재판부로서도 판단 잣대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부에 따라 판단 결론이 달라지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강간죄’(준강간·유사강간 포함) 관련 판결을 살펴보면,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이미 유죄 판단 근거로 고려하는 양상을 보인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제29형사부)은 “피고인의 집까지 스스로 따라갔다는 사정만으로는 피해자가 피고인과의 성관계를 허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고, 대전고등법원(제1형사부)은 “합의 아래 성관계를 하였다면 피해자가 피고인의 연락을 피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피고인과 피해자의 성관계는 합의 아래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며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광주고등법원(전주제1형사부)도 지난 5월 “강제로 간음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힘으로 제압하는 것 외에 다른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지는 않았다”면서도 “(피고인은)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부의사를 표시하였음에도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원심의 형량이 너무 무겁다는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물리적 제압 외에 구타 등은 없었어도 감형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성폭력 가해자들이 변호의 근거로 삼는 ‘호감’도 강간죄 성립을 피해갈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판결도 이어졌다. 서울북부지법(제13형사부)은 올해 3월 “상대방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그 상대방과의 성행위까지 허락하는 것은 아니고 범죄행위 직전에 피해자가 호의적 태도를 보였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범죄가 성립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 혐의로 역고소한 사건에선 재판부가 명시적으로 ‘비동의 간음죄’를 언급한 판결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월 성폭력 피해자인 피고인이 “상대 ㄴ에게 명시적이고 직접적으로 성관계에 합의하는 의사를 표시한 적이 없”음에도 성관계가 진행된 것을 두고 “피고인은 진정한 동의 없는 강제적인 성관계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어 “ㄴ이 강간치상 등의 혐의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받기는 했으나 그와 같은 사실만으로는 피고인과의 성관계가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단정할 수 없고, 현행법상 강간죄에 포섭되지 않는 이른바 ‘비동의 간음’에 해당할 가능성도 있”다며 무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변호사는 “지금도 재판부의 80~90%는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근거로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된다고 해서 처벌 범위가 지금과 견줘 극적으로 늘어난다고 보긴 어렵다. 도리어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보호법익의 본질에 맞게 판단 기준이 좀 더 명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형정원)도 강간죄 처벌의 공백 지점을 줄이기 위해 ‘비동의 간음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형정원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최근) 합리적인 관점에서 피해자의 저항이 제압될 수 있거나 저항할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해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강간죄의 폭행협박 최협의설은 상당히 완화된 상황”이라면서도 “저항 행위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에 대해 법원별로 해석의 편차가 크고 비일관적이어서 처벌의 예견 가능성 등 법적 안정성에 문제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또 형정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판단 요소와 기준이 명료하게 제시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비동의’ 요건을 도입할 경우 세부 요소를 세밀하게 검토함으로써 판단 요소를 분명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협의설 (현행법) ‘폭행 또는 협박으로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을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삼는다. 이러한 판단 기준은 피해자의 ‘신체적 취약성’에만 초점을 두면서 위력의 존재, 권력관계의 불균형 등 다른 방식의 취약성 때문에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을 처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만든다. ▶비동의 간음죄 (개정안) 강간죄 판단 기준을 현행 ‘폭행 또는 협박’에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상대방의 동의 없이’처럼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규정하자는 내용으로 현재 국회에는 이런 조문 변경을 요구하는 형법 개정안이 10건 발의돼 있다. 국제형사재판소, 유럽인권재판소 등도 ‘동의의 부재’를 강간 성립 여부 판단의 초점으로 본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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